Night of the living dead (1968)
"좀비", 즉 살아 움직이는 시체라는 단어는 "부두교"에서 나온 것이지만, 이 컨셉을 영화로 옮긴 시조새는 1968년에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연출한 공포영화의 거장 "조지 로메로" 감독입니다. 지금 보면 다소 어설프기도 하고 별로 무섭지도 않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이 영화에는 이후에 발표되는 "좀비" 영화의 모든 컨셉이 담겨 있습니다. 썩은 몸, 머리에만 맞지 않는다면 총을 맞아도 끄떡없고, 술 마신듯 비틀거리며 걸어가며, 아무런 표정 없는 얼굴, 심지어는 시체를 먹고, "좀비"에게 물린 사람도 역시 "좀비"로 감염시킨다는 컨셉은 모두 이 영화가 그 시초 입니다. 즉, "조지 로메로"의 머리에서 나온 것 입니다. 이 영화 이후에 지극히 자극적이고, 신체 훼손은 아무것도 아닌 "하드 고어" 영화가 줄지어 나와 이제는 다소 식상해지기는 했지만, 원작이 보여주는 그 "심장을 조여오는 느낌"은 여전합니다. 이것은 관객의 심리를 움켜쥐고 이리 흔들고 저리 흔드는 감독의 능력입니다.
이 영화는 제작비 대비 큰 성공을 거두어 그 이후에 "시체들의 낮", "시체들의 새벽" 등으로 확장하였고, 컬러를 넣어 좀 더 강렬한 시각적 쇼크를 주려고도 하였으나 원작 만큼 흥행하지는 못했습니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은 1990년에 거의 복제품의 수준으로 똑같이 컬러로 리메이크 된 바 있습니다만, 감독이 원작에는 없던 인간성의 추락에 대한 비판적인 요소를 넣어 작품성을 다소 향상시켰고 흥행에도 성공하였습니다. 그래서 원작도 볼만하지만 이 1990년 리메이크 판을 추천합니다.
어느 시골의 묘지에 오빠와 여동생(바브라)이 아버지의 무덤을 방문하며 이 영화는 시작합니다. 밤 8시임에도 여전히 해가 떠 있기는 하지만 곧 12시가 됩니다. 오빠는 무덤 앞에 서있고, 여동생을 기도를 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낡은 양복을 입은 키 큰 아저씨 어슬렁거리며 다가옵니다. 오누이는 별 생각이 없이 바라보다가 갑자기 이 덩치 큰 사람이 바브라를 공격하고, 오빠가 달려들어 떼어 놓으려고 하다가 넘어져 묘지석에 머리를 부딪히고 그대로 기절합니다. 깜짝놀란 "바브라"는 차를 몰고 도망가다가 근처의 빈집으로 보이는 저택으로 도망쳐 들어갑니다. 그리고 2층으로 가는 계단에서 거의 다 썩은 여성의 머리를 발견하고 놀라 내려오다가 건장한 흑인(벤) 한 명이 집으로 도망쳐 들어오면서 마주 합니다. "바브라"는 넋이 나가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벤"에게 물어보지만 답은 하지않고 집안의 문과 창문을 널판지로 막으려고 정신 없이 돌아 다니고 있습니다. 이제 완전히 컴컴한 밤이 되었고, 창 틈으로 바라본 집 밖은 수 십명의 좀비로 가득합니다. 이 때, 지하실에서 남자(해리)와 젊은이(톰)가 올라옵니다. 처음에는 좀비인줄 알고 위협하지만 정상인이라는 것을 알고 어떻게 이 난관을 돌파할 것인가 얘기를 나누지만 지하실에서 올라온 "해리"와 의견이 자꾸만 어긋납니다. 그리고 지하실에는 그의 아내(헬렌)와 좀비에게 물린 채 누워있는 어린 딸, 그리고 톰의 애인인 주디가 있습니다. 그는 무조건 모두 지하실로 들어가고 숨어야 한다고 하지만, 지하실은 탈출구가 없으니 1층에서 기회를 노려야 한다고 벤이 우기고, 톰도 동조 합니다. 이제 좀비의 수가 계속 늘어만 가고, 라디오와 TV에서는 이 원인모를 살인사건이 방사능 때문이라고 하면서 총으로 좀비의 이마를 쏘아야 죽고, 죽으면 반드시 태워야 한다고 알려줍니다. 이제 모두 트럭을 이용하여 탈출할 계획을 세웁니다. 벤과 톰이 트럭에 기름을 넣으려고 뛰쳐나갈 때, 해리가 2층에서 화염병을 던지기로 합니다. 그런데 "주디"가 갑자기 자기도 같이 간다고 뛰쳐나갑니다. 그리고 정신없는 상황에서 기름을 차에 뿌리게 되고 불이 붙습니다. 그리고 "주디"의 옷이 차에 끼이게 되고, 결국 "톰"과 "주디"가 트럭 운전석에서 애를 쓰는 순간 트럭이 폭발하며 둘이 죽고, 시체는 좀비들에게 그 자리에서 뜯어 먹힙니다. 그 옆에 있던 "벤"은 어이가 없어하다가 다시 집안으로 뛰쳐들어오고, 이제 좀비들이 문을 부수고 집으로 들어오려고 합니다. "벤"은 총으로 대응을 하고, 겁을 먹은 "해리"가 총을 빼앗더니 자신은 가족과 지하에 있겠으니 들어오지 말라고 위협합니다. 결국 "벤"에게 다시 총을 뺏기고 복부에 한 방 맞고 지하로 내려갔다가 "좀비"로 변한 딸에게 잡아 먹힙니다. 그리고 바로 뒤에 나려온 엄마도 딸에게 살해 당합니다. "좀비"는 결국 현관 문을 부수고 묘지에서 쓰러졌던 오빠를 만난 "바브라"는 오빠와 좀비떼에 끌려 나갑니다. "벤" 혼자 남았습니다. 결국 지하실로 숨어들어 아침에 보안관과 저격수들이 자기를 구해주기를 기다리기로 합니다. 그리고 아침이 되었습니다. 좀비는 집 밖으로 모두 나가고 드디어 탈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총을 들고 밖으로 나가려고 현관에 도착한 순간 보안관이 쏜 총알이 "벤"의 머리를 관통하며 영화가 끝납니다.
좀비영화의 역사는 길고 깁니다. 그리고 너무나 많은 관련 영화가 쏟아져 나왔고, 우리나라에서도 "부산행"을 비롯하여 영화 및 드라마로 끊임 없이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있는 시체"라는 컨셉의 영화가 계속 나오는 이유는 물론 "공포 영화"의 한 장르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존재는 "인간"이며, 그 공포의 "인간"이 얼마나 위협적이고, 그로부터 탈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관객이 모두 공감하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조지 로메로"감독이 1968년에 이 영화를 발표하고나서 천천히 걸어가는 좀비가 뭐 그리 무섭겠느냐 하며 인기가 시들어갈 무렵 2004년에 "저스티스 리그"의 "잭 스나이더" 감독이 "조지 로메로" 감독의 "시체들의 새벽"을 리메이크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새벽의 저주"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는데, 드디어 이 영화에서 좀비들이 뛰기 시작합니다. 숨이차지 않기 때문에 인간을 압도하는 피지컬을 보이며 공포감을 한껏 끌어올려 원작보다 훌륭한 좀비 영화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 이후에 "좀비"는 더이상 걸어다니지 않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