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 미야자키 하야오

The boy and the heron (2023)

by 인문학애호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최신작이자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수상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소년과 왜가리)"를 보았습니다. 미야자키의 애니메이션중에서 가장 흥행에 실패하였고, 호불호가 심하게 갈렸으며 도무지 무슨 얘기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던 작품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본 미야자키의 애니메이션은 대부분 보자마자 바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었이다라고 말 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여러번을 반복 시청해도 잘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지극히 철학적이면서도 그 내용을 이해시키려는 어떠한 조치도 없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은 1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마히토"라는 소년입니다. 때는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여 태평양전쟁이 발발한지 2년쯤 지난 어느 시점의 도쿄. 중앙 병원에 대규모 화재가 발생하고 이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 "히사코"가 사망하게 되면서 아버지와 같이 지방으로 이사를 갑니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비행기 캐노피를 만드는 군수공장을 운영할 예정이고, 역앞에 어머니의 여동생 "나츠코"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모뻘인 "나츠코"는 아버지의 새 부인이 될 예정으로 임신한 상태입니다. 당연히 "마히토"는 인정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사간 집에는 7명의 할머니 하인이 지키고 있습니다. "마히토"가 집에 들어가려는데 어디선가 날아든 회색 왜가리가 갑자기 스쳐지나갑니다. 새로운 집에 잘 적응을 못하고 전학간 학교에서도 학생들과 싸우고, 집에 오다가 홧김에 돌맹이로 자신의 머리를 가격하여 상처를 냅니다.


그런데 집주변을 돌아다니던 "마히토"는 이상한 탑을 하나 발견하게 되고 궁금증을 품게 됩니다. 가장 이상한 건 창 밖에서 그 회색 왜가리가 끊임없이 "마히토"와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다가 "마히토"는 연못위의 왜가리를 발견하고 목검으로 공격하지만 오히려 왜가리와 갑작스레 나타난 물고기 떼, 개구리 떼의 공격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때 "마히토"를 찾아나선 "나츠코"가 쏜 화살 한 방에 모두 사라지고 구출됩니다. 어느날 왜가리를 처단하기 위하여 활과 화살을 만들던 "마히토"는 왜가리의 깃털을 하나 구하여 화살에 묶으려고 책상위에서 작업을 하다가 실수로 책 더미를 떨어뜨립니다. 그리고 그 책 중에서 어머니가 남긴 "너는 어떻게 살거니?"라는 책을 집습니다.


어느날 임신한 "나츠코"가 숲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목격한 "마히토"는 그 뒤를 할머니 중의 한 명인 "키리코"와 같이 쫒아갑니다. 그리고 발견한 탑의 입구. 그 안에서 결국 회색 왜가리를 마주하게 되고, 이 왜가리는 다리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사람으로 바뀝니다. 이제 이 탑의 바닥이 꺼지면서 왜가리, 마히토, 그리고 키리코는 모두 지하세계로 떨어집니다. 지하세계에 도달한 마히토는 돌무덤 앞에서 엄청난 수의 펠리칸의 공격을 받게 되고, 그 자리를 지나가던 젊은 시절의 선머슴 같은 또다른 "키리코"에게 구조됩니다. 할머니 "키리코"와 같은 인물입니다. 그런데 할머니 "키리코"는 사라지고 오히려 이 젊은 "키리코"의 집에 목각인형의 형태로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할머니와 할아버지 하인도 목각인형 형태로 있습니다.


이곳에서 밤이 되어 마당의 화장실로 나간 "마히토"는 "와라와라"라는 동그랗고 귀엽게 생긴 흰 색의 생명체 무리가 하늘로 떼지어 올라가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펠리컨 떼가 나타나 "와라와라"를 먹어치우려 하고, 역시 갑자기 나타난 "히미"라는 소녀의 불 공격으로 도망갑니다. (거의 "마히토"나이인 "히미"는 사실은 병원에서 죽은 그의 어머니 "히사코" 입니다.) 그리고 불 공격에서 도망치다가 화장실 옆으로 추락한 늙은 펠리컨에게 자신을 끝내달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이 때 회색 왜가리가 뒤따라 오고 둘은 임신한 "나츠코"를 찾아 길을 떠납니다. 이 때 선머슴 "키리코"가 할머니 "키리코"의 목각인형을 선물로 줍니다. 왜가리는 "나츠코"가 앵무새 무리에게 붙잡혀 있다고 하고 같이 구하러 앵무새성(결국 탑입니다)으로 잠입합니다. 그러나 앵무새 무리에게 들켜 잡아먹히기 직전 "히미"가 다시 나타나 화염으로 앵쿠새를 퇴치하고 "마히토"와 같이 그녀의 집으로 같이 갑니다.


이제 "마히토"는 다시 "나츠코"를 찾으러 앵무새성으로 갑니다. 이곳에서 "마히토"는 결국 임신한 어른 "나츠코"를 만나게 되고, 처음으로 그녀를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이어 "마히토"와 "히미"는 누워있는 "나츠코" 주변의 흰색 천조각의 공격을 받아 기절하게 되고, 얼마후 깨어난 "마히토"는 삼각형 형태의 문을 통과하여 "탑"의 주인인 그의 증조부를 만나게 되고, 13개의 돌조각을 조심스레 쌓고 있던 증조부는 "마히토"에게 하늘에 둥둥 떠있는, 내부에 폭발 잠재력을 지닌 거대한 돌덩어리를 보여주고 자신의 힘과 모든것이 이 돌덩어리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순간 잠에서 깬 "마히토"는 자신의 앞에서 앵무새가 칼을 갈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어 왜가리가 다시 나타나서 "마히토"를 구하고 둘은 앵무새왕이 "히미"를 증조부에게 바치러 떠나는 행사를 마주합니다. 그 뒤를 왜가리와 쫒던 "마히토"는 결국 따돌려지고, "히미"는 증조부에게 바쳐집니다. 증조부는 앵부새왕에게 "마히토"를 자신의 후계자로 했으면 좋겠다고 하고 앵무새왕은 떠납니다. 잠에서 깬 "히미"에게 증조부는 "마히토"는 좋은 아이이니 보내줘야 할 것 같다고 합니다. 무너진 계단 더미에서 다시 일어난 "마히토"는 삼각문을 다시 찾아내고 왜가리와 그곳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멀리서 뛰어오는 "히미"를 만난 후 이번에는 진짜로 증조부를 만나러 갑니다. 증조부는 자신이 쌓아올리고 있는 돌들이 아직 "악의"로 물들지 않았다면서 이 영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얘기를 합니다.


"나는 그것들을 찾기 위해 먼 시간과 공간을 여행했다."

"너만의 탑을 세워. 악의가 없는 왕국."

"풍요롭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그러나 "마히토"는 자신의 머리에 난 상처를 보여주면서 이것은 내가 악의를 가지고 만든 것이니 자신은 돌에 손을 댈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증조부는

"넌 다시 살인과 도둑질이 난무하는 어리석은 세상으로 돌아가겠다고?"

"곧 불길에 휩싸일 것이다."

그러자 "마히토"는 자신은 친구들을 만들것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증조부는 다시

"친구들을 만들어. 네 세상으로 돌아가. 하지만 먼저 돌을 쌓아라"

"시간이 없어.", "나는 더이상 탑을 세울 수 없어" 라고 합니다.


순간 앵무새왕이 나타나서 화를 내면서 "제국의 운명을 겨우 돌에게 맡기겠는가"하면서 칼로 돌이 놓여진 책상을 두동강냅니다. 이제 탑은 무너지고, 이어 공중에 떠있는 거대한 돌덩어리도 파괴되며 세계가 모두 무너져 내립니다. 이 때 왜가리가 "마히토"와 "히미"를 구하여 탑으로 돌아오는데 탑도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마히토"는 "나츠코"와 "키리코"를 만나고 "히미"는 "마히토"에게 내가 너의 엄마가 될 것이야라고 하면서 "키리코"와 다른 문으로 나갑니다. 이제 "마히토"는 "나츠코"와 탑을 탈출하여 밖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그 때 주머니에 있던 "키리코" 목각인형이 원래의 할머니로 변합니다. 이어 아버지가 구하러 탑으로 올라오고, 모두 구조되어 집으로 갑니다. 그리고 2년 후에 전쟁이 끝난후 모두 도쿄로 돌아갑니다.


줄거리는 대충 이렇게 요약이 됩니다. 정말로 은유와 상징이 가득한 철학 애니메이션 입니다. 아마도 미야자키 감독은 흥행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뭔가 메시지를 전달하고픈 마음에 은퇴후 복귀 했으며, 이 영화를 만들었을 겁니다. 난해하지만 증조부의 대사를 통하여 감독이 말하려는 몇 가지는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돌조각으로 만든 탑 : 세상의 균형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언제든 무너질 수 있으니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는 의미로 봅니다.

그것들을 찾기 위해 먼 시간과 공간을 여행했다 : 현재의 평화는 정말로 오랜 세월이 걸린 것이다.

곧 불길에 휩싸일 것이다 : 평화는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멸망할 것이다.

친구를 만들어 하지만 먼저 돌을 쌓아라 : 사람 사이에 신뢰가 우선 되어야 한다.

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주목할 만한 것은 "새" 입니다. 영화에 새가 정말로 많이 나옵니다. 모두 상징과 은유 입니다. 실제로 "왜가리"는 "사기꾼"을 상징하고, "펠리칸"은 자식을 위하여 목숨도 내놓는 새입니다. 그 새가 "와라와라"를 먹어치워야 합니다. 너무나 괴로운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앵무새". 영화에서 "앵무새"는 전체주의 혹은 군국주의를 상징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 언급된 책 "당신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작가 "겐자부로 요시노"의 성장 소설 입니다.

"마히토"가 탑에서 지나게 되는 삼각형의 "시간의 터널"은 베르길리우스의 대표작 "아이네이스"에서 아이네이스가 예언녀 시빌라의 동굴에 내려와서 안내해 달라고 하는 저승으로 가는 길과 똑같은 형태입니다. 즉, "시간의 터널" 저쪽은 이미 지나간 시대를 의미합니다. 결국 탑의 역할은 "지나간 시대"로 들어가는 입구 입니다.


그동안 미야자키 감독은 그의 애니메이션을 통하여 추억에 대하여, 가족에 대하여, 자연에 대하여, 인간성에 대하여 말해왔고, 이 영화를 통하여 이제 "시대"에 대하여 얘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살았던 시대, 2차대전이라는 인류 최대의 참사가 터진 시대, 그리고 비로소 평화가 왔지만 언제 다시 붕괴될 지 알 수 없는 시대. 그런 불확실한 시대를 우리가 어떻게 현명히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목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되지 않았을까요?

정말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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