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 Machina (2014)
배우 "알리시아 비칸데르"의 몸 전체를 로봇으로 처리한 놀라운 CG로 유명한 이 영화는 영국의 Double Negative (현재는 DNEG)라는 시각효과 전문 회사의 작품 입니다. 이 회사는 이 영화로 2016년도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을 수상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더 거대한 규모의 작품에서 CG를 담당하는 데, 바로 "듄 2" 입니다. 배우 "알리시아 비칸데르"도 같은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는데 이 영화가 아니라 "대니쉬 걸"이라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대단한 액션도 없고, 시종일관 차분하게 진행됩니다만, 그 차분함 속에서 끊임 없이 생각할 거리를 주는 철학적인 SF 영화 입니다. 우선 주인공인 휴머노이드(인간의 형태를 한 로봇)에 대하여 생각을 해봐야 하는데, 우리 인간은 육체와 정신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휴머노이드를 만들려면 이 두 가지를 구현하여야 하는데, 몸은 기계공학과 전자공학에 의한 로봇으로 가능하고, 정신은 소프트웨어로 구현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AI가 나오기 전까지는 인간이 코딩한 프로그램이 로봇 몸체를 통제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발전을 거듭하여 드디어 진보된 AI가 등장하였고 로봇의 뇌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AI가 구현해야 하는 인간의 정신은 "의식" 입니다. "의식"은 "타의식", 즉 내가 아닌 내 의식의 외부에 대한 의식과 "자의식", 즉, 나 자신에 대한 의식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로봇이 외부를 인식할 때는 수많은 "센서"를 동원하고, 이 "센서"에서 나온 신호를 처리하여 각각의 신호에 대한 정의를 내려면 됩니다. 문제는 "자의식" 입니다. "나는 무엇인가?" 바로 이것이 "자의식"의 핵심 입니다. 로봇은 자신이 무엇인지 어떻게 인식을 해야 할까요. 처음에는 이 "자의식"도 인간이 프로그램을 통하여 정의를 내려줄 수 있었습니다. "나는 로봇이다"라고. 그렇지만 이것은 진정한 "자의식"은 아닙니다. "스스로 직접"이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AI는 "스스로 직접" 자신이 누구인지 "정의"를 내립니다. 이 영화는 이 "스스로 정의하는 자의식"을 가진 "에이바"라는 여성 휴머노이드의 "자의식"은 진짜인가 하는 것이 주제 입니다. 이와 같이 기계가 인간에 얼마나 가까운가를 테스트 하는 것을 창안자 "앨런 튜링"의 성을 따서 "튜링 테스트" 혹은 "이미테이션 게임"이라고 합니다.
영화 제목 "엑스 마키나"도 의미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원래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뜻으로 고대 그리스의 연극에서 기원한 단어이고, "느닷없이 신(데우스)이 마키나(기계)에서 나와(엑스) 문제를 해결한다"는 뜻입니다. 현재는 여기서 "데우스"를 빼고 "엑스 마키나"가 주로 사용되며 뜻은 장치나 이벤트 혹은 인물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휴머노이드가 "자의식"에 대하여 고민하는 이 영화와 "엑스 마키나"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이 영화에서 말하는 "마키나"는 주인공인 휴머노이드 "에이바"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즉, 인공지능에 의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한 로봇이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그리고 "에이바"가 "마키나"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에이바"의 창조자인 천재 엔지니어 "네이선"은 "에이바"를 인류의 거주지에서 멀리 떨어진 산악지역의 연구소 내부에 가둬두고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지만, 결국 "네이선"이 초청한 어리숙한 프로그래머 "케일럽"을 조종하여 연구소의 모든 문을 개방하도록 하고, 미완성 휴머노이드인 "교코"와 같이 합심하여 "네이선"을 살해하고 "케일럽"은 가둬 놓고 탈출에 성공합니다.
영화는 시각효과상을 받을 정도로 상당히 잘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각본상 후보에도 오를 정도로 내용이 매우 풍부합니다. 그러나 고민거리를 잔뜩 던져주기는 하지만, 스스로 충분히 고민하지 않습니다. 즉, 관객의 생각에 충격을 줄 수 있는 도발적이고 충격적인 "한 방"이 없습니다. 그게 좀 아쉽습니다. 게다가 두 여성 휴머노이드가 "네이선"을 칼로 살해 할 때, 생명체에게 칼을 찔러넣는 행동이 어떤 결과를 유발할 것인가에 대하여 (물론 관객은 모두 다 인지하지만), 즉 "죽음"에 대한 "에이바"의 생각이 없습니다. 그리고 폐기된 휴머노이드는 많이 보았지만, "인간의 죽음"은 처음 보았을 것인데, 호기심을 보이지 않고 마치 당연한 것처럼 "네이선"을 그냥 두고 도망갑니다. 그리고 "에이바"가 자신이 "연구소에 갖혀 있는데, 나가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도 고민이 충분치 않습니다. 즉, 휴머노이드의 "자의식"을 다루면서 실제 휴머노이드는 이미 충분히 "인간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이런 부분이 좀 아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