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한나 아렌트

Eichmann in Jerusalem (1963)

by 인문학애호가

이 책은 2차 대전의 대표적 전범인 아돌프 아이히만 (Adolf Eichmann)이 1961년에 예루살렘 법정에서 심판을 받는 현장에 미국의 “뉴요커”지가 아렌트를 리포터로 파견하였고, 재판 과정 및 관련된 각종 자료를 엮어 발간한 책입니다. 번역판 기준 약 400 페이지 입니다. 대체적인 내용은 2차대전때 나치가 유대인의 1/3을 몰살시키는 과정을 국가별로 정리하고, 히틀러로부터 시작하여 "하인리히 힘러",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를 거쳐 아이히만에게까지 어떻게 명령이 전달이 되고 "최종해결책(학살)"이 진행되었는지에 대하여 차분히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재판 자체 입니다. 정말 이상한 재판 입니다. 우선 아이히만은 당시에 아르헨티나에 은신하고 있었고, 아르헨티나 정부도 알고 있었으며, 독일정부의 허가를 받은 것도 아닌 상태로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에 의하여 불법 납치되어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즉, 아이히만을 법정에 세우게 된 방법 자체가 이미 국제법 위반입니다. 그런데 아이히만은 스스로 붙잡혔다고 진술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는 “지구상의 모든 반유대주의자들에게 대한 경고로 공개적인 교수형을 당하겠다”라고 제안합니다. 또한 이렇게도 말합니다. "저는 독일의 청년들로부터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제가 뭔가를 하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이 젊은이들은 무엇보다도 지난 전쟁에서 있었던 사건들에 대해, 그리고 자기의 아버지들이 한 일로부터 결백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당시의 이스라엘 수상인 다비드 벤구리온은 “우리는 세계만방이 알기를 원하며, 그들은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들은 물론 독일 입니다. 이에 대하여 당시의 독일 수상인 콘라드 아데나워는 “당황스러운 일이 생길 것"이라고 예견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벤구리온은 여기에 살을 더 붙여, “이 역사적 재판의 심판대에 서 있는 것은 한 개인이 아니고 나치 정부도 아니며 바로 역사 전체에 나타나는 반유대주의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아이히만은 초반에 유대인에게 상당히 우호적이어서 나중에 최고 학살자로 불리게 되는 사람이 유대인의 구출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는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그리고 학살의 현장에서도 아이히만은 대규모의 유대인의 수송에 주요 역할을 하지만, 살해의 현장에는 있지 않았었습니다. 그리고 가스실 살해도 아이히만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습니다. 결국 "아이히만"이라는 아무도 죽이지 않은 혹은 살해할 배짱조차 가지지 못한 대량 학살자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검찰은 개별 살인행위를 입증하려고 지속적으로 애를 썼습니다. 이러다보니 검찰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가 “괴물”이 아님을 알 수 있었고 한 편으로는 “광대”같은 인간이라고도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이히만이 최종 해결책을 정말로 최종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항상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은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사실 아이히만의 위에는 학살의 진짜 원흉인 하이드리히가 있었는데 이 자는 체코 유대인의 테러로 사망하게 됩니다. 아마 하이드리히가 살아서 멀쩡하게 체포되었다면 아이히만은 이렇게 주목받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이 정말로 원했던 아돌프 히틀러와 모든 학살의 설계자이자 게슈타포의 수장인 하인리히 힘러도 자살로 사라지고 결국 아이히만만 살아 남았습니다. 예루살렘은 독일에게 국제적으로 크게 한방을 먹일 빅 이벤트를 원했고 주모자가 모두 사망한 상태이므로 결국 아이히만을 납치하여 법정에 세우게 됩니다. 사실 아이히만은 히틀러에 대하여 “그 사람은 노력을 통해 독일 군대의 하사에서 거의 8,000만에 달하는 사람들의 총통의 자리에까지 도달했다"고 생각하며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아이히만의 변호인은 그를 “평범한 우편배달부”의 성품이라고 단언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아렌트는 이 재판을 당시 이스라엘 수상인 벤구리온이 전 세계에 뭔가를 가르쳐주어야 한다고 생각한 교훈을 담은 쇼라고 생각하고 있게 됩니다. 아이히만의 변호사는 당시 서독 정부에 아이히만을 본국으로 소환하라고 요청했으나, 서독이 받아들일 이유가 없습니다. 아이히만 혼자서 다 짊어지고 가면 되는 일이니까요.

또하나 황당한 것은 수백만의 유대인을 끌어모아 나치가 손쉽게 대규모의 유대인을 학살하게 도와준 장본인이 바로 유대인 지도자들로 구성된 "유대인위원회"라는 단체 입니다. 이 단체가 없었다면 적어도 희생자가 6백만에 달할리가 없었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대규모의 학살의 책임자를 재판한 예루할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이는 마치 이 마지막 순간에, 그가 인간의 사악함 속에서 이루어진 이 오랜 과정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교훈을 요약하고 있는 듯했다. 두려운 교훈. 즉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현실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이러한 무사유가 인간 속에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는 더 많은 대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사실상 예루살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었다."

마르틴 부버는 이 재판을 역사적 차원에서의 실수라고 불렀다. 이 일이 아이히만이 의도했던대로 독일에 있는 많은 젊은이들이 느끼는 죄책감을 없애는 데 도움을 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괴물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만들어졌을 뿐이다. 나는 오류의 희생자다. 그는 희생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의 변호인이 확인해주었다. 그것은 그가 다른 사람들의 행위를 대신해서 고통받아야 한다는 그의 깊은 확신 이었다. 이틀 후인 1961년 12월 15일 금요일 아침 9시에 사형이 선고되었다.

사형선고를 집행한 그 속도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자비의 청원이 거부되었다는 소식을 아이히만이 들은 지 두 시간도 채 되지 않아 형이 집행되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아마도 2년간이나 계속된 이 사건을 피고 측이 처형일에 현장에 있을 수 있도록 신청도 하기 전에 종결짓기를 원한 것 같았다.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한 가지 점을 분명하게 주장했다. “이 범죄는 일반적 살인 그 이상이면서 동시에 그 이하다.”

국가가 고용한 근대의 대량 살인자들이 재판받아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인류의 질서를 위반했기 때문이지 그들이 수백만 명을 죽였기 때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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