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ve new world (1932)
올더스헉슬리 (Aldous Huxley)의 명작 “멋진 신세계 (Brave New World)”는 조지 오웰의 “1984”와 더불어 “디스토피아” 문학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작품입니다. “멋진 신세계”라는 말은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 등장하는 단어로 지극히 문명화 된 세계에 첫 발을 디딘 야만인 “존”이 문명사회를 일컫는 말 입니다.
때는 먼 미래. 여기서 기준은 예수 탄생을 기준으로 한 기원후가 아니라 자동차왕 헨리 포드의 탄생이 기준입니다. 세상은 인구가 대충 20억쯤 되고, 문명화 된 세상과 야만의 세상, 딱 두 세상만 있습니다. 문명화 된 세상은 성씨가 1만개, 즉 서로 다른 얼굴이 1만개 뿐이고 온천지 쌍둥이 뿐인, 태생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탄생된 인간들이 “희로애락” 중 “로”와 “애”를 배제하고 오직 “희” 와 “락”으로만 살아가고 있고, “로”와 “애”의 감정이 생기면 “소마”라는 약으로 원천 차단합니다. 또한 철저하게 계급이 나뉘어져 있습니다. 즉, 철저하게 규격화된 인간이 사는 세상입니다. 특히 인간의 다툼의 가장 큰 원인인 남녀 관계는 “모든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속한다”는, 즉 아무나와 언제든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만들어 감정에 의한 다툼 자체가 차단되어 있습니다. 이곳에 살다가 사고로 야만의 세계에 빠진 린다라는 여성과 그녀와 야만인 사이에서 나온 “존”이 문명 사회로 초대 되면서 벌어지는 갈등이 이 소설의 줄거리 입니다.
책을 읽다보면 우리는 현재 이 두 문명, 즉 야만의 세상과 문명화 된 “멋진 신세계”의 중간 어디쯤에 있다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다만 헉슬리의 시대에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없었기 때문에 인류가 책을 읽는 능력을 빼앗기는게 아니라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라는 걸 알지는 못했을 겁니다만, 결국 인류는 더이상 책을 읽지 않으며 오직 “쾌락”만을 추구한다라는 측면에서는 일맥상통 합니다. 마지막 16장, 17장쯤에 이르면 “존”과 이 문명세상의 통제관인 “무스타파 몬드”와의 인간 세상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이 벌어지는데, “존”은 거의 이 통제관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나라면 이런 대화에서 얼마나 버틸수 있을까?”라고 잠시 생각해보면 저도 역시 얼마 못버틸 것 같습니다. 그만큼 무스타파 몬드의 인간에 대한 통찰은 매우 정확하며 빈틈이 없게 느껴집니다. 마지막 18장에서 결국 “존”은 문명인에 의하여 희생됩니다만, 헉슬리는 그 희생을 그대로 두지않고, 인간미를 마지막으로 기사회생 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비록 그것이 꼭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어도 말이지요. 올더스 헉슬리나 오스카 와일드나 영국인 작가에게 “셰익스피어”는 “신” 입니다. “멋진 신셰계”의 구석구석에 셰익스피어의 거의 모든 작품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살아 있었다면 정말 행복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때는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었는데, 두번째 보니 정말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지 알겠습니다. 진정한 걸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