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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몽 - 구로사와 아키라

Rashomon (1950)

by 인문학애호가

"라쇼몽"은 1950년에 명장 "쿠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발표한 약 1시간 20분짜리 흑백영화 입니다. 원작은 1915년에 발표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동명의 소설입니다만, 제목만 가져왔고, 내용은 같은 작가의 1922년작 "덧문"이라는 소설입니다. 즉, "아키라" 감독이 두 작품을 잘 섞어 자신만의 대본을 완성하였고, 영화화 한 것입니다. 일본어로 "라쇼몽"이라고 읽는 원작 "나생문"은 "이 세상에 펼쳐진 인생을 담고 있는 문"이라는 의미로 사건이 벌어지는 곳이 결국 우리 인생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때는 일본의 헤이안 (Heian) 시대, 즉 794 - 1185년까지의 기간이고, 장소는 당시 전란이 극에 달하여 민생이 매우 고달펐던 교토입니다. "라쇼몽"은 이 교토에 세워진 실존하는 일종의 거대한 "기와식 문" 으로 위의 포스터에서 보듯이 절반쯤 무너져 있어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를 보여줍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어마어마한 비가 내리고 이 "라쇼몽"에 나무꾼과 스님 한 명이 비를 피하고 있습니다. 이 때 떠돌이 부랑자 한 명이 역시 비를 피하러 들어와서 두 사람에게 얼마전 있었던 끔찍한 살인사건에 대하여 알면 좀 말해달라고 합니다. 그 살인이란 사무라이 1명이 가슴을 칼에 찔린 사건을 말합니다. 이 사건에 대하여 나무꾼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1) 나무꾼의 진술 : 도끼를 어깨에 둘러메고 나무를 하러 숲속으로 들어가다가 여자가 쓰는 흰색 갓과 사무라이 모자를 발견히고, 이어서 시체를 한 구 발견합니다. 이 때 카메라는 나무쑨을 비췄다가, 나무꾼의 입장이 되어 하늘을 비췄다가, 숲속을 비추는 등 자유자재로 움직입니다. 시체를 발견한 나무꾼은 곧바로 "관아"로 가서 이 사실을 보고합니다.


(2) 스님의 진술 : 숲속을 지나가다가 앞에서 마주오는 말에 올라탄 여인과 그 말을 끌고가는 사무라이 1명이 스쳐 지나갑니다. 그러면서 관아에서 그 사무라이가 죽을 줄은 자신은 몰랐다고 합니다.


(3) 산적 "다조마루"와 그를 체포한 포졸의 진술 : 포졸이 물가를 거닐다가 말에서 떨어져 아파하는 유명한 산적 "다조마루"를 체포합니다. 여기서 "다조마루"의 진술이 나옵니다. 자신은 숲 속의 나무에 기대어 졸고 있었는데 여자를 말에 태우고 그 옆에서 끌고가는 사무라이를 만났다. 둘은 부부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자가 맘에 들었다. 그래서 달려가서 사무라이에게 자신이 소지한 칼과 같은 비싼 물건을 발견하여 묘지에 묻었다고 하면서 가보자고 합니다. 그러나 여자에게서 어느 정도 떨어졌다고 판단하고는 사무라이와 싸워 그를 밧줄로 묶어 버립니다. 그리고 여자에게로 와서 겁탈을 합니다. 그런데 여자가 너무나 격렬하게 덤벼듭니다. 힘으로 제압하고 겁탈을 한 후에 떠나려고 하니 여자가 달려듭니다. 자신은 이미 두 남자를 허락했으니 한 사람은 죽어야 한다면서 남편과 산적을 싸움 붙입니다. 그리고 산적이 남편을 죽이고 여자를 찾지만 이미 도망간 상태입니다.


(4) 스님의 진술 : 관아에 여자가 끌려왔는데 "산적"과 싸울 수 있어보이지는 않더라. 연략해 보였다. 여자가 진술합니다. 겁탈 당하고 정신차려보니 "산적"이 남편을 조롱하다가 떠나 버렸다. 여자는 남편을 풀어주고 몸을 더럽힌 자신을 죽여달라고 단도를 들이대다가 기절했는데 깨어보니 자신의 단도가 남편의 가슴에 박혀 있었다.


(5) 스님의 진술 : 무당이 관아에 와서 죽은 "사무라이"의 영혼을 자신이 받아들여 사무라이 대신 진술을 합니다. 여자는 겁탈을 당하고 자신을 겁탈한 "산적"에게 빠져버렸다. 그리고 "산적"과 도망가려다가 산적을 꼬드겨 남편을 살려두면 안된다고 한다. 산적은 이 배은망덕한 여자에게 증오심을 느끼고 쓰러뜨린 후, 남편에게 어떻게 할까 하며 물어봅니다. 그러다가 여자가 도망가고 쫒아가다 놓친 산적은 남편을 풀어주고 칼을 줍니다. 남편은 이 칼로 자살을 택합니다.


(6) 나무꾼의 최종 진술 : 자신이 이 사건을 보았는데 엮이기 싫어 거짓을 말했다고 합니다. 여자를 겁탈한 산적은 자신의 아내가 되라고 요청합니다. 그러자 갑자기 단도를 들고 밧줄로 묶인 남편에게 가서 밧줄을 풀어주며 산적과 대결을 하고 자신은 이긴 사람의 아내가 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편과 산적 모두 의외로 싸움을 안하고 자리를 벗어나려고 합니다. 이걸 아내가 막습니다. 적어도 사내대장부라면 싸워서 자신을 차지해야 하지 않느냐. 남자 둘은 마지못해 싸움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역시 산적이 남편을 먼저 찔러 죽입니다. 산적은 여자에게 이제 자신에게 오라고 하지만 여자는 도망칩니다.


이렇게 나무꾼과 스님의 목격담이 끝났을 때, 라쇼몽의 후방에서 아기 울음 소리가 들립니다. 부랑자는 먼저 달려가 아이를 감싸고 있던 옷가지를 챙겨 도망가 버립니다. 이것을 본 나무꾼은 아기를 자기가 키우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스님은 그를 통하여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합니다. 이윽고 "라쇼몽"에 내리던 소나기가 그칩니다.


이 여섯가지 진술 중에서 과연 어떤 것이 사실일까요. 진실은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6가지 진술 모두 거짓일까요. 알 수 없습니다. 감독은 어떤 사건에 대한 인간의 진술은 기억력의 한계와 판단의 주관성, 그리고 사건과 자신의 관련성 여부 때문에 결코 진실일 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보면 모두 관아에 와서 진술을 하는데 단 한 번도 그 진술을 듣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고,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진술을 하고 있습니다. 즉, 이 6가지 진술에 대한 관객의 판단은 무엇인가, 관객은 진술만 듣고 이 사건의 진실을 추측할 수 있겠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사람의 진술만 가지고 내리는 판단이 얼마나 신뢰하기 어려운가, 인간은 정말 진실을 말 할 수 있는 존재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또한 "라쇼몽"이라는 제목으로부터, 진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곳이 바로 우리 인생이고, 인간사 역시도 이렇게 진실보다는 꾸며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겨우 8명 등장하는 짧은 영화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은 무려 75년이나 지난 오늘날에도 이 영화가 높게 평가되는 이유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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