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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 악의 탄생 - 크리스티안 두가이

Hitler : The Rise of Evil (2003)

by 인문학애호가

무려 5천만명을 희생시킨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600만명이나 되는 유대인을 학살했으며, 살해된 아이들만 해도 100만명이 훨씬 넘는, 한 인물에 의하여 이렇게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 경우는 역사상 비슷한 사례조차도 찾아보기 힘든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상 "히틀러"와 그가 세운 "제 3 제국" 만큼이나 많이 회자된 사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럴수 밖에 없는것이 "나치"가 몰락하면서 연합군이 획득한 문서 자료가 어마어마 합니다. 역사학자 수백명이 달려들어도 다 읽기 어려울 만큼 있고, 전부 공개된 것이 아닌데도 관련 서적이 끊임없이 새로 발간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물론 "히틀러"가 VIP급 고급 감옥에서 쓴 "Mein Kampf (나의 투쟁)"이 가장 유명할 것입니다.


"히틀러" 관련해서는 영화도 꽤 많이 나왔고, 하다못해 스필버그 연출의 "인디애나 존스 3"에도 히틀러가 등장합니다. 그렇지만 본격적인 작품으로는 "히틀러"와 관련된 영화중에서 2003년에 TV 드라마로 기획되어 상영된 "로버트 칼라일"주연의 "히틀러 : 악의 탄생"이 "히틀러"의 몰락을 다룬 영화 "Downfall"과 더불어 가장 유명할 것입니다. "히틀러 : 악의 탄생"은 그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여 오스트리아 출신인 그가 독일의 시민권을 획득하고, 어마어마한 집중력과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력한 의지력으로 독일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가 정권을 잡고 2차대전을 일으키면서 시작된 대량 학살은 영화 말미에 텍스트 정도로 간단히 언급이 되고 있습니다. 모두가 잘 아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와 같은 일을 저지른 희대의 악인이 어떤 과정을 통하여 그와 같은 혐오스러운 인격을 형성하였으며, 어떻게 정치력을 획득하였고, 이방인임에도 어떻게 독일 정계를 한 손에 쥐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많이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내용이 신선하고 흥미롭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게다가 "히틀러"를 연기하는 "로버트 칼라일"의 연기가 실로 압도적입니다. 그는 "히틀러"가 연설할 때의 각종 제스쳐와 포즈를 거의 똑같이 구현하여 "히틀러" 그 자체가 됩니다.


특히 가장 놀라운 것은 "히틀러의 야심" 마저 그대로 재현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하면, 영화가 분명히 "히틀러"라는 악인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까발리고 고발하려는 의도로 기획되었을 것인데, 영화는 오히려 그 반대로 정치인으로서의 "히틀러"를 기획의도와는 다르게 아주 매력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문제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히틀러"가 절대권력을 휘둘러 어마어마한 학살을 하기 바로 직전, 즉 총통이 되기 까지는 그는 악인이라기 보다는 정치인 입니다. 물론 지속적으로 "유대인"에 대한 혐오와 살기를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가 연설을 통하여 대중을 휘어잡는 모습의 재현은 놀랍게도 "매우 압도적" 입니다. "히틀러"의 연설에 대중이 압도되는 모습을 보면서, 그것이 단지 연기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됩니다. 1차대전에 대한 댓가로 "베르사이유 조약"을 통하여 엄청난 배상금을 물게 되었고, 당시 통화인 "마르크"화는 쓰레기 수준의 종잇장이 되었고, 국민의 삶이 처참하기 그지없을 때, "히틀러"라는 선동가의 말 한마디 한 마디는 배고픔을 잊게 할 정도로 강력한 처방이었을 것입니다. 이런것들이 영화에 가득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 제목은 "악의 탄생"인데, 그 "악"의 정체는 영화 말미에 텍스트 몇 자로만 표현이 됩니다.


아마 제작진도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영화에는 "괴벨스"도 등장하고, "히틀러"와 같이 동반 자살한 "에바 브라운"도 잠깐 등장합니다. 꽤 정성을 들여 제작하였고, 당시 정치적으로 무능하여 "히틀러"에게 정권을 바치는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 역할의 "피터 오툴"도 너무나 설득력 있습니다. 결국 전체적으로 영화를 상당히 잘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이게 아닌데..."하는 생각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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