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 왕가위

In the mood for love (2001)

by 인문학애호가

이 영화는 단연코 "왕가위"감독의 최고 걸작이며, 영화사에서도 손꼽히는 명작입니다. 특히 영화 전반에 걸쳐 "미장센의 홍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모든 장면의 구도에 감독의 손길이 들어가 있습니다. 거기에 "왕가위"감독 작품의 또다른 특징인 "기막힌 음악"이 또 한 몫을 합니다. 이 영화에는 4곡의 배경음악이 나옵니다. 영화의 전반을 지배하는 첼로와 현의 스타카토로 연주되는 "Yumeji의 테마"와 주인공 둘의 연애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냇 킹 콜"의 "Aquellos Ojos Verdes", "Te Qiero Dijiste", 둘이 헤어질 즈음에 등장하는 "Quizas, Quizas, Quizas"입니다. 이 음악들의 사용이 놀라운 것은 이 음악들이 단순한 배경음악을 넘어 "미장센"의 한 구성으로 녹아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정말로 절묘하게 음악을 선곡했고, 절묘한 위치에 배치해서 역시 "왕가위"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때는 1962년 홍콩. 영화가 시작되면 좁아터진 아파트의 두 방에 두 쌍의 부부가 이사를 옵니다. 한 쌍은 "첸"부인과 남편이고, 다른 한 쌍은 "차우"와 아내입니다. 두 집안이 동시에 한 아파트의 한 층에 이사를 오게되면 그 이사짐은 어쩔수 없이 섞이게 되어 있습니다. 이 두 커플은 바로 이 시점부터 서로 엉키기 시작한 것입니다. 특히 두 집안 이사에 배우자가 참여할 상황이 되지 못하여 둘 다 혼자서 이사를 하고 있습니다. "첸"부인의 이사가 끝나고 남편을 맞이하러 계단을 내려가면서 "차우"의 아내가 스쳐 지나갑니다. 즉, "차우"의 상대가 "첸"부인에서 아내로 바뀝니다. "차우"의 직업은 기자, "첸"부인은 비서입니다. "차우"의 아내는 직장 때문에 매일 늦고, "첸"부인의 남편은 허구헌날 해외출장 입니다. 이 때 "첸"부인 남편이 사다준 일제 밥솥이 화제가 되어 서로 하나씩 사다달라고 하고, "차우"도 한 대 요청하고 물건을 받으면서 얼마냐고 묻는데 이미 "차우"의 아내가 결재를 했다는 겁니다. 어떻게?


"첸"부인을 맘에 둔 동료 "펭"과 대화를 나누는 "차우"

"차우" : 정신 차려요. 그녀는 유부녀에요.

"펭" : 유부녀면 어때. 서로 맘만 맞으면 되지. 자네도 단속 잘 해. 혹시 모른다고.

"차우" : 우린 안그래요.


어느날 남편이 또다시 해외출장을 가서 신문을 찾던 "첸"부인은 드디어 "차우"의 방에 처음으로 들어옵니다. 다음날 늦으니 먼저 자라는 말을 아내에게서 들은 "차우"는 저녁을 사주려다가 아내가 이미 퇴근했다는 말을 듣습니다. 즉, "첸"의 남편과 "차우"의 아내는 바람이 난 상태입니다. 그리고 "첸"부인의 직장 상사도 사실은 바람이 난 상태입니다. 수시로 애인을 만나고 "첸"부인에게 둘러대게 시킵니다. 이렇게 "첸"부인의 주변에는 바람난 사람들 뿐입니다.


배우자가 항상 없어 늘 외로운 두 주인공이 드디어 다방에서 같이 커피를 마십니다. 은근한 감정의 수싸움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배경음악도 우울한 "Yumeji의 테마"에서 "냇 킹 콜"의 감미로운 노래로 바뀝니다. 서로 자신의 배우자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금새 둘은 공감대를 찾아냅니다. "배우자가 상대편의 배우자와 바람이 났다." 서로 배우자가 바람이 난 걸 확인한 상태인데 배경에는 "냇 킹 콜"의 가장 감미로운 노래가 나옵니다. 양심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윽고 같이 어둠속으로 걸어가는 뒷 모습을 담아내고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미장센이 등장합니다. "첸"부인은 "차우"와 자신의 남편을 계속 비교하며 둘이 출발이 똑같음을 말합니다. 즉, 내 배우자도 연애할 때는 당신처럼 하더라. 그러더니 저렇게 바람이 났다. 당신도 그럴거 아닌가? "오늘 낮에 왜 전화했어요?" "오늘 낮에는 왜 전화 안했어요?"


이제 둘은 서로 무협소설을 같이 써보기로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둘이 "차우"의 방에서 무협소설을 쓰고 있는데, 집 주인이 만취가 되어 들어옵니다. 그리고 집주인이 거실에서 이웃과 오랫동안 마작을 합니다. 이제 "첸"부인은 방 밖으로 나갈 수가 없게되고, 오랜 시간 둘은 어쩔 수 없이 같이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시간동안에도 둘의 배우자는 집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일본에 같이 있기 때문에.


"첸"부인 :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 같아요.

"차우" : 우리야 결백해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하죠.

"첸"부인 : 절대 잘못돼선 안돼요.


둘은 시스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인이 잠이 들어 가까스로 방밖으로 나오는데 "첸"부인은 자신이 출근했다가 들어오는 척하려고 슬리퍼를 "차우"의 방에 두고 대신 "차우" 아내의 하이힐을 신고 나옵니다. "차우"는 계속 "첸"부인에게 이런 저런 제안을 하고, "첸"부인은 그 자리에서는 거부하지만 결국은 "차우"가 원하는대로 됩니다. "차우"는 결국 호텔방을 잡고 그곳에서 무협소설을 쓰면서 "첸"부인이 오기를 기다리고 소원대로 됩니다. 이제 남의 눈치를 안보고 둘이 같이 있으면 배경음악도 "냇 킹 콜"의 노래가 나와야 하는데 반대로 "Yumeji의 주제"가 나옵니다. 이 둘의 연애가 결국 불장난에 그치고 말것처럼.


이제 "첸"부인은 남편과 갈라서고자 남편의 고백을 받아내기 위해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하는지 "차우"와 연습을 해봅니다. 그러나 남편역할의 "차우"가 애인이 있다고 말하자, "첸"부인은 그 상황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괴로워 합니다. 결국 "첸"부인은 집주인의 의심을 받고 사장의 의심도 받으면서 조심하기 시작합니다. 소나기가 내리던 날, "차우"는 자신이 싱가폴로 떠날 것임을, 더이상 "첸"부인이 주위에서 의심받게 할 수 없다면서 "이별 연습"을 하자고 합니다. 결국 둘은 마지막 밤을 보내고, 일본에 있는 "첸"부인의 남편이 방송국에 신청한 곡 "화양연화"가 나옵니다. 그리고 둘 사이에 큰 벽이 생기고 자신들의 공간은 다시 좁아집니다.


"차우" : 나요. 만약 티켓이 한 장 더 있다면 나와 같이 가겠소?

"냇 킹 콜"의 "Quizas, Quizas, Quizas (Perhaps, Perhaps, Perhaps)"가 나옵니다. "어쩌면"... 텅 빈 호텔로 찾아온 "첸"부인

"첸"부인 : 나에요. 내게 자리가 있다면, 내게로 올 건가요?


1년 후, 결국 "첸"부인은 "차우"를 만나러 싱가폴에 오지만 그의 빈 방에서 담배 1개를 피우고, 그가 가지고 다니는 자신의 슬리퍼를 신어보면서도 결국 그를 만나지 않고 돌아옵니다. 슬리퍼는 그냥 둔채로

동료인 "펭"과 술을 마시던 "차우"는 이런 말을 합니다.

"차우" : 뭔가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다면 산에 가서 나무를 하나 찾아 거기에 구멍을 파고는 자기 비밀을 속삭이곤 진흑으로 봉했다더군, 비밀은 영원히 가슴에 묻고...


3년후 "첸"부인이 원래 있던 숙소로 찾아오는데 옷의 형태와 머리카락의 형태가 모두 바뀌었습니다. 집주인은 집을 처분하고 미국으로 가려고 하고, "차우"가 살았던 방을 바라보던 "첸"부인은 차오르는 슬픔을 가까스로 참아냅니다.(이 장면에서 장만옥의 표정 연기는 정말 놀랍습니다.) 결국 "첸"부인이 그 집에서 딸과 둘이서 살고 있고, 오랜만에 찾아온 "차우"는 기대감에 미소를 짓지만, 만나지는 않습니다. "차우"는 캄보디아로 가는데, 이 때 프랑스의 드 골 대통령이 캄보디아를 방문합니다. 캄보디아의 사원을 둘러보던 "차우"는 벽사이에 생긴 구멍에 입을 대고 한참을 있다가 그 구멍을 진흙으로 봉합니다.

영화에서 두 커플 모두 단 한 번도 배우자의 얼굴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즉, "첸"부인과 "차우"의 관계에만 집중하고 그들의 배우자와의 비교 자체를 차단하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배우들의 옆모습을 매우 많이 클로즈업 합니다. 얼굴은 그 사람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힌트를 제공하는데 옆모습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대화를 나누는 두 주인공의 얼굴을 읽을 수가 없습니다. 즉, 그들의 대화는 모두 진심이어야 합니다.


영화에서 집이건, 골목이건 두 주인공은 거의 같은 공간을 사용하며 그 공간은 대부분 매우 좁습니다. 둘이 서로 교차하는 골목길도 매우 좁고 좌우는 벽으로 막혀 있습니다. 즉, 두 주인공은 활동영역이 매우 좁은,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둘의 이런 고립은 모두 배우자 때문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두 주인공이 연애를 시작하면서 화면은 확장되고 더이상은 좁은 공간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에서 장만옥은 수도 없이 많이 옷을 갈아입고 등장하는데 색상도 다르고, 무늬도 다르지만, 형태는 똑같습니다. "차우"역시 와이셔츠에 넥타이만 입고 나옵니다. 대체로 다른 등장 인물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것은 이들이 모두 사회 불문율이라는 시스템에 갖혀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봅니다. 다양하게 시도할 수는 있으나 시스템을 벗어날 수는 없다.


"첸"부인이 "차우"가 있는 호텔로 올 때 빨간색 코트를 입습니다. 시스템을 벗어나려는 노력입니다.


감독이 프랑스 드 골 대통령의 캄보디아 장면을 넣었는데 이것은 프랑스는 식민지였던 캄보디아를 독립국가로 인정했는데 영국이 자신들의 식민지였던 홍콩을 캄보디아처럼 독립시키지 않고 중국에 반환하는 것을 비판하는 장면입니다.


이 영화에서 장만옥이 보여주는 연기는 정말로 놀랍습니다. 조금도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실로 정교하고 섬세한 연기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단연코 그녀 연기의 정점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영화에서 말하는 사랑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함께 있다고 느끼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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