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n Dreams (2025)
"인생은 결국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것"
금년 오스카상에서 "기차의 꿈"의 주연인 "조엘 에저튼"이 남우 주연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은 아무리 이 영화가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할지라도 명백한 실수입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잔잔하면서도 깊은 통찰을 보여주는 이 영화에서 "조엘 에저튼"이 매 순간 보여주는 표정의 변화는 인생의 허무함과 고독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제목에서 말하는 "기차"는 결국 한 방향으로만 질주하는 우리의 인생이며, 그 한 방향으로의 질주가 마지막에는 단지 꿈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라는 허무함이 영화의 곳곳에 담겨 있습니다.
이 영화는 소설가 "데니스 존슨"의 동명의 소설을 영화로 옮긴 것으로, 요즘은 보기 드문 느리고 또 느린, 그렇지만 아름다운 음악이 배경에 깔리는 매우 서정적인 영화 입니다. 영화의 템포가 느리면 느릴 수록 배우의 액션보다 표정연기에 집중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카메라도 주연배우의 얼굴에 집중하며 인생 전체를 조망해야 하므로 배우의 얼굴에 굴곡진 인생을 새겨넣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공이 있는 연기파 배우가 필요합니다.
여기 한 남자가 있습니다. 이름은 "로버트 그레이니어 (조엘 에저튼)". 그는 고아였기 때문에 생년월일도 몰랐습니다. 학교도 10대 초반까지 다니다 말고 그 뒤로 20년을 허송세월 했습니다. 그러다가 "글래디스 올딩 (펠리시티 존스)"라는 여인과 결혼을 하고 오두막을 짓고 신혼 생활을 합니다. 때는 미국에 철도가 한 창 건설중인 1910년대. 특별한 재주나 배운게 없던 그는 기차를 타고 이 동네, 저 동네 전전하면서 주로 거대한 나무를 베는 벌목장에서 일을 하며 돈을 모아서 집으로 돌아가곤 합니다. 이런 인생이 계속 반복 되면서 세월이 흘러갑니다. 다만 그는 매번 이렇게 집을 비우고 벌목장에 오래 머물다가 돌아왔을 때 아이가 좀 더 커져있는 것을 확인하며 자신이 그 성장과정을 계속 지켜보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 합니다. "로버트"는 다시 벌목장을 찾아 떠나고, 벌목장이 바뀌어도 늘 만나는 몇 몇의 동료를 반가워 하고, 그 동료 중에서 나이든 노인이 벌목장에서 인생을 마감하는 것을 묵묵히 바라보며 자신의 미래를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로버트"의 눈 앞에서 자신의 집이 있던 산자락에 거대한 화재가 발생하고 집도, 아내도, 아기도 모두 사라집니다. 망연자실한 그의 눈 앞에 수시로 그와 같이 있었던 사람들 (아내, 아이, 다리 아래로 떨어진 중국인 등)이 수시로 주마등처럼 지나쳐 갑니다. 그리고 결국 그는 다시 오두막을 짓습니다. 이제 그는 말과 마차를 하나 얻어서 동네의 교통수단 역할로 직업을 바꾸고 더이상 나무를 베지 않습니다. 어느날 그는 도심의 극장을 찾다가 그 곳에서 정말 오랜만에 거울속의 자신을 바라봅니다. 세월의 흔적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경비행기로 주변을 둘러보게 해주는 서비스를 만나게 되고 기꺼이 비행기에 올라탑니다. 1968년 11월 "로버트 그레이니어"는 이 세상에 왔을 때처럼 고요하게 잠자리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이 영화는 무엇보다 대사량이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카메라는 스크린이라는 화폭에 자연을 담아내고, 그 자연속에서 숨쉬는 사람을 담아내고, 단란한 가정에서 행복을 담아내며, "조엘 에저튼"의 얼굴에서 세월을 담아냅니다. 영화에서 수시로 화면에 보여주는 깊은 숲속과 거기에서 서로 부딛히며 담소를 나누고, 담배도 나눠 피고, 잠도 같이 자던 동료들, 그렇게 나무를 베고 돌아가면 자신을 기다리는 아내와 아이. 세상이 아무리 바뀌고,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우리에게는 형태만 바뀌었을 뿐 실체는 그대로인 삶이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그런 삶속에서 살고 있고, 그런 삶속에서 행복을 느끼다가 1910년대의 벌목공처럼 조용히 혼자 왔다가, 조용히 혼자 돌아갑니다. 그것이 바로 "기차의 꿈"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