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na Karenina (1997)
고전 문학에는 유명한 3대 불륜 소설이 있습니다.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D. 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 그리고 레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입니다. 안나 카레니나는 귀족 카레닌의 부인 입니다. 이 세 명의 불륜부인 중에서 "보바리 부인"은 남편이 완전 호구이기 때문에 그녀의 불륜이 더욱 악행으로 받아들여집니다만, "안나 카레니나"는 교활한 남편과 사회적인 제재, 그리고 쉽게 애정이 식어버린 남자로 인하여 심한 감정적 동요를 거쳐 자살하게 되므로 불쌍하고 측은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사랑한 남자가 자신에게 실증을 느끼고, 남자의 어머니는 정상적인 관계의 배우자를 제시하고, 사교계에는 더이상 발을 붙일 수 없어 완전히 사회적으로 고립된 여자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사실상 당시의 상황에서 "자살" 밖에는 없습니다. "안나 카레니나"는 그래서 "보바리 부인"과는 궤를 달리하는 작품입니다.
사실 문학작품을 그것도 "톨스토이"의 최고의 예술작품으로 평가되는 세기의 걸작을 영화로 옮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보바리 부인"의 3배만큼의 길이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2시간으로 축약하려면 많은 것을 덜어내야 합니다. 사실상 이야기만 가까스로 담아내고, 톨스토이가 보여주는 인생에 대한 뛰어난 "통찰"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걸작 "불멸의 연인"의 버나드 로즈 감독이 1997년에 발표한 "안나 카레니나"는 소피 마르소, 션 빈, 알프레드 몰리나라는 뛰어난 배우를 동원했음에도 관객에게 크게 어필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연출의 문제라기 보다는 각색의 문제입니다. 줄거리가 자주 끊기는 것도 아쉽고 극을 드라마틱하게 만들기 위하여 연출이 아니라 배우들의 연기에 기대고 있는 점도 아쉽습니다. 이 작품은 워낙 여배우에게 보물같은 배역이므로 당대의 유명한 여배우들이 도전을 하였고, 그레타 가르보, 비비언 리, 소피 마르소, 키이라 나이틀리 같은 정상급 배우들이 주연을 하였지만, 영화상은 대체로 의상상에 그치고 작품상이나 여우주연상은 받지 못했습니다. 사실 작품상 받을 만하다고 생각되는 "전쟁과 평화"도 아직까지 수상하지 못했습니다. 원작이 세기의 걸작일수록 그에 걸맞는 영화화는 참으로 만들기 어렵습니다.
러시아 작가의 작품의 영화화가 어려운 또하나의 이유는 이름 때문입니다. 이름이 대체로 매우 길고, 애칭은 왜 그렇게 원래 이름과 다르게 생겼으며, 수시로 이름과 애칭을 섞어 쓰기 때문에 이름과 등장인물이 매칭이 잘 안됩니다. 이 문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같은 작품에서 정말로 심한데, 그 때문인지 극적인 줄거리에도 불구하고 아직 영화로는 제작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안나 카레니나"는 덜 심한 편으로 안나 카레니나의 나이 많은 남편은 정부의 고위 관료로 "알렉세이 카레닌", 그녀에게 한 눈에 반해버리고 그녀를 결국 자살하게 만드는 남자는 "알렉세이 브론스키", 그녀의 오빠인 "스테판 오블론스키", 그의 아내인 "다리야 오블론스카야", 안나의 아들인 "세료자 카레닌", 안나에게 눈이 멀어 자신을 떠나가버린 블론스키에게 마음을 두었던 "예카테리나 세르바츠카야 (키티)", 블론스키에게 눈이 먼 키티에게 청혼했다가 퇴짜를 맞고 그럼에도 나중에 결국 결혼하게 되는 "콘스탄틴 레빈", 그의 형 "니콜라이 레빈" 정도만 기억하면 줄거리를 쉽게 따라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등장인물 각각에 많은 이야기를 부여하는 톨스토이의 스타일을 영화에 모두 담아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다보니 2시간 동안의 수박 겉핥기가 되기 마련입니다. 다만 워낙 장편 소설이라 작정하고 시간을 내야 하기 때문에 2시간내로 핵심을 전달해주는 영화화는 나름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포스터는 정말로 절묘하게 만들었는데, 안나 카레니나와 블론스키가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장소이자, 안나 카레니나가 자살을 하는 장소가 바로 기차역 입니다. 안나 카레니나가 기차에서 내리자 마자 철도 노동자 한 명이 실수로 기차에 깔려 죽게 되는데, 안나 카레니나는 이걸 불길한 징조로 생각하였고, 결국 그 징조대로 되었습니다.
원작에는 안나 카레니나가 블론스키의 딸을 낳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이 영화와 비비언 리가 주연을 맡은 1947년도 작품에서는 유산으로 처리하였습니다.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은 영화음악인데 바그너 지휘자로 유명한 "게오르그 솔티 경"이 지휘하는 차이콥스키의 음악입니다. 교향곡 6번 비창과 백조의 호수가 등장하는데 어느 영화음악 작곡가가 작곡을 하더라도 이렇게 작품에 딱 맞는 작곡은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특히 "비창" 교향곡이 너무나도 잘 어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