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여운 것들 - 요르고스 란티모스

Poor things (2023)

by 인문학애호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가여운 것들(Poor Things)는 2024년도 아카데미 시상식의 강력한 작품상 후보였습니다. 스코틀랜드 작가인 앨러스데어 그레이(Alasdair Gray)가 1992년에 발표한 동명의 원작을 영화화 한 것입니다. 이 영화를 보기전에는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오펜하이머"가 당연히 작품상을 수상할 것으로 예상했었습니다만, 강력한 복병이 바로 이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의 현대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은 사람의 신체를 이리저리 대충 짜맞춰서 괴물을 탄생시켰습니다만, "가여운 것들"에서는 투신자살한 임신한 여성의 뱃속에 있는 태아의 뇌를 뇌사 상태의 엄마의 뇌에 이식하여 살려냅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의 창조자이자 아버지(윌렘 데포)가 프랑켄슈타인의 외모입니다. 즉, 이 영화는 프랑켄슈타인에서 유래한 영화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요, 프랑켄슈타인의 외모가 괴물인 반면(영화에서는 괴물이지만 원작에서는 그냥 평범한 남자입니다), "가여운 것들"의 피조물은 정상적인 외모를 가진 여성입니다. 그것도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성인 여성입니다. 문제는 뇌는 아이의 것인데 외모는 성인 여성이라는 점 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유아를 대할 때는 그냥 잠깐 귀여워서 바라보는게 전부 입니다만 외모가 성인 여성이고 유아의 뇌가 들어있다는 것을 모른다면 정상적인 성인 여성으로 대할 것입니다. 즉, 일반적인 유아가 태어나서부터 겪게 되는 인간과의 접촉 시간이나 교감이 아니라 성인 여성을 대하는 인간과의 접촉 및 교감을 겪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 외모의 문제에서 발생하는 심각성을 인식하고 창조자는 피조물을 집안에서만 성장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 여성의 뇌가 유아기를 벗어나면서 자신의 존재를 인식을 하게 되고,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창조자와의 갈등이 발생하며, 결국 집을 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산전수전(남성과의 관계가 대다수인)을 다 겪고 정상적인 성인 여성이 되어 집으로 돌아옵니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남성이었습니다. 매우 공격적이면서도 스스로 지력을 발달시켜 책도 읽고 인간에 대하여 고민도 하게 됩니다만, "가여운 것들"의 주인공인 벨라 백스터는 여성입니다. 여성이 사회에 뛰어들어 온갖 고충을 겪게될 때 대체로 그 산전수전의 원인 제공자는 남자입니다. 그래서 주인공이 집을 가출하여 사회에 뛰어들면서 마주하는 한심천만한 인간은 모두 남성입니다. 영화 제목이 "가여운 것"이 아닌 "가여운 것들 (Poor Things)"로 복수 형태인 것은 한심하고 어리석은 남성이거나 남성에 의하여 만들어진 세상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영화는 실로 예술 그 자체 입니다. 원색의 화면에 판타지가 가득합니다. 전차는 가느다란 전기줄에 매달려 다니고, 서로 다른 종간의 머리가 이식된 동물이 흔하게 나오며, 모든 방의 천장의 형태도 다양한 패턴으로 구성됩니다.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수시로 등장하는 것은 꼭 데이빗 크로넨버그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를 보는듯 합니다. 장면 하나하나가 너무나 훌륭하여 보면서 눈이 호강하고 있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주연을 맡은 "엠마 스톤"은 아마도 이 작품이 그녀의 최고 작품이자 대표작이 될 것입니다. 벨라 백스터가 유아의 뇌를 가진 상태부터 사춘기를 거쳐 성인 여성이 되는 과정의 변화를 놀랍게 표현합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다른 여배우는 상상도 할 수 업습니다. 동시에 감독의 연출도 매우 빼어납니다. 화면 하나하나 정말 집요하게 놀라운 미장센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2시간 30분짜리 거대한 예술작품 입니다. 아카데미가 역사물이 아닌 예술성에 표를 줬다면 작품상은 "가여운 것들"이었을 것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미드소마 - 아리 애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