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ieur Verdoux (1947)
채플린의 영화중에 문제작이 아닌 영화가 없습니다만, 유성영화 시대에 "위대한 독재자" 다음으로 연출하고 주연을 맡은 1947년작 "살인광 시대 (무슈 베르두)"는 진정한 문제작 입니다. 당시는 미국에 "매카시즘"이 극에 달한 시점이고, 공산주의자로 몰렸던 채플린이 "두고 보자"하면서 만든 작품이 이 작품 입니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실화 입니다. 당시 프랑스에서 좀 잘산다 하는 미망인 10명과 아이 1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마 "푸른 수염" 사건이 줄거리 입니다. 이 이야기를 "오손 웰즈"가 채플린에게 의뢰했고, 채플린의 각색을 거쳐 작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주인공인 "앙리 베르두"는 병에 걸린 아내와 아들을 하나 둔 평범한 은행원입니다. 그런데 경기불황이 심해지고 35년이 넘게 근무한 은행에서 어느날 갑자기 해고를 당하게 됩니다. 은행에 다니면서 변변한 재산을 모으지 못한 그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하여 은행원으로서의 좋은 머리를 이상한 곳에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가명을 사용하여 정체를 숨기고 부유해 보이는 과부나 미혼녀에게 접근하여 "은행에 돈을 맡기는 것은 위험하다"고 꼬시면서 돈을 모두 인출하여 집에 가져오게 하고, 최종적으로 그녀들을 죽이고 그 돈을 가로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돈을 주식에 투자하여 이익을 극대화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그는 14명의 나이든 여인을 살해합니다. 그런데 당시에 결혼을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또다시 결혼을 하는 "중혼"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고, 더군다나 살인은 당연히 사형감이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3명의 여인이 그의 "목표"가 되어 있고, 지속적인 "출장"을 핑계로 이 세 명의 여인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첫번째 귀부인은 지나치게 적극적인 접근으로 실패하고, 두번째 여인은 살해를 하고 돈을 가로챕니다. 그러던 와중에 아내와 아들을 보려고 집에 들렀다가 약사인 친구에게서 사람을 심장마비로 죽이는 약물을 만드는 방법을 우연히 알게 됩니다.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던 베르두는 밤 늦게 그늘진 골목에서 젊은 여인을 만나게 되고, 이 여인을 집으로 데리고 오는데 성공했으나, 그녀가 절도로 3개월 복역을 마치고 출소한 무일푼의 여인이라는 사실에 살해하려던 계획을 접고 오히려 도와주게 됩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형사가 그를 방문하게 되고, 베르두는 아내와 아들을 한 번만 보겠다고 같이 기차를 탄 후에 와인에 약을 타서 형사를 심장마비로 살해합니다. 이어 세번째 여인에게서 돈을 갈취하려고 하는데, 이 여인이 운이 억세게 좋습니다. 결국 낚시배에 태워 바다에 수장시키려고 하였으나 도리어 자신이 빠져버리고 계획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다시 첫번째 귀부인에게 접근하려고 꾸준히 꽃다발을 보낸끝에 결국 감동을 시키고 결혼까지 추진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결혼식에 하필 세번째 여인이 하객으로 오는 바람에 베르두는 그 자리에서 도망을 치게 됩니다. 결국 "대공황"이 발발하고 모든 주식이 휴지조각이 되면서 거금을 투자했던 베르두의 주식도 쓸모없는 종잇장이 됩니다. 절망한 베르두는 길가를 헤메다가 자신이 도와준 젊은 여인을 다시 만나고, 그녀는 운좋게 부자와 결혼하여 귀부인이 된 상태입니다. 둘은 차를 같이 마시고 헤어지는데 하필이면 그곳에 베르두를 알아본 여인이 나타나고 경찰이 출동하며 베르두는 스스로 잡히다시피 합니다. 법원에서 그는 자신의 죄를 모두 인정하고 기꺼이 사형을 받아들입니다. 이 때 베르두의 입을 빌어 살벌한 명언이 나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앙드레 까뮈의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겹쳐보였습니다.
"세상이 싫어하는게 살인자 아닙니까?"
"오직 살인만을 위해 엄청난 무기들이 만들어지지 않았습니까?"
"그것들로 순진한 여자들과 어린이들을 산산조각 내지 않았습니까?", "아주 정교하게 행해졌죠."
"살인자로서 저는 아마추어 입니다."
변호인 : "당신은 사람을 죽이지 않았소!"
베르두 : "그건 사업이었습니다."
변호인 : "사업도 사업 나름이죠."
베르두 : "많은 기업들이 그렇게 시작했어요.", "전쟁도 일종의 사업이죠.", "한 둘을 죽이면 범죄자지만 대량학살을 하면 영웅이 되죠.", "중요한 건 숫자입니다."
유성영화이기는 하지만, 무성영화시절에 보여주었던 슬랩스틱도 나오고, 특히 은행원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초인적인 속도로 돈을 세는 장면도 나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장면도 더이상 우습지 않습니다. 또한 무성영화에서 슬랩스틱기술로 가득 채워졌던 화면에 그런 기술이 빠지니 군데군데 빈 곳이 나타납니다. 따라서 영화는 매우 느리고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무성영화로 세계적인 대스타가 되었던 그가 영화에 목소리를 입히는 순간 세상은 "다른 채플린"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던타임스"의 엔딩에서 여자친구와 희망을 가지고 먼길을 떠나고, "시티라이트"에서 눈수술을 통하여 그를 알아본 여인에게 행복의 미소를 지어주던 그 채플린은 더이상 이 세상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극도로 냉소적이고, 인생에 저주를 퍼붓고, 인간에 대한 조금의 애정도 없는 그런 배역을 연기하는 "채플린"이 남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