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질병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크게 아플 일이 없었던 저의 우울증은 제가 제 마음을 돌보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이제는 우울증을 이겨냈다고 하지만 사실 우울감이란 감기와도 같은 것이어서 나아졌다가 또 우울해졌다가를 반복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울증은 완치가 없다."라는 말이 있기도 합니다.
저 역시 지금은 잘 지내고 있지만 좌절을 느끼거나 어려움을 느끼는 순간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다년간의 마음수련으로 나아진 것이라면 그런 힘든 순간들을 크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지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거나 이런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바꾸어 나만 힘들다는 오류에 빠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제 거의 자동적으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어려움은 있지만 우울에 빠지지는 않는 것입니다.
즉, 과거에 비해 회복탄력성이 뛰어나게 좋아졌습니다.
두 번째로 달라진 것은 이분법 사고에서 멀어졌다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좋은 것과 싫은 것, 좋은 사람과 싫은 사람,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에 대한 구분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그게 많이 사라졌습니다.
제가 많이 사라졌고 하는 이유는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싫은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을 좋게 보는 다른 사람들이 있고 그건 내가 모르는 그 사람의 다른 모습이 있다는 생각으로 제 안에서 일어나는 미움의 생각의 방향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늘 내가 무지하고 편협함이 있음을 잊지 않아야겠다고 반복해서 다짐하면서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저의 과거 역시 싫어했었습니다.
힘들었거든요.
모든 것이 그렇듯이 저의 과거도 좋을 때도 있었고, 힘들 때도 있고, 외롭고 슬플 때도 있는 그저 그런 평범하고 소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중에 유난히 힘들었던 그 일, 그 사건에만 매몰되어 그것만이 저의 과거였던 것처럼 스스로 고통 속에 머물렀습니다.
물론 그 안에 제가 회복하지 못한 상처가 있어서였습니다.
깊고 오래된 그 상처가 계속 건드려져서 나를 아프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오래된 상처는 한 번 나를 알아주고 안아준다고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몇 년을 수시로 떠오를 때마다 내가 나를 치유해가면서 충분히 보듬고 아파하고 안아주고 난 후에야 저는 제 아픈 과거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과거가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다고 그 시간도 나의 시간임을 인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는 그 일에 감정이 생기지 않고, 그 시간도 나의 일부이며, 그냥 내가 지나온 시간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저는 제 우울증이 회복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가 이 과거의 상처 치유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타인의 성공, 타인의 노력을 응원해 주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짜증 난 사람이 짜증을 부리지 않더라도 옆에 있으면 뭔가 불쾌하고 불편함을 느끼고, 즐거운 사람이 딱히 뭘 하지 않아도 옆에 있으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을 것입니다.
감정은 이렇게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전달이 되기도 합니다.
부정적인 감정도, 긍정적인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옆 사람에게로 확대되고, 퍼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내가 나를 돌보며 편안해지니 주변을 편안하게 대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주변 사람들이 편안해집니다.
내가 나를 믿고 나를 긍정하니 상대를 믿어주게 되고 상대방을 긍정하게 됩니다.
나를 대하는 감정이 남에게로 확대되는 것입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누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늘 나를 돌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를 돌보지 않았을 때의 고통을 알고, 나를 돌보았을 때의 행복도 모두 다 알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나에게 가르쳐 준 귀한 가르침을 절대로 잊고 싶지 않아서 매일매일 내 마음을 보살피자며 마음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외적인 운동은 게을리하지만 내적인 운동만큼은 소홀히 하지도 게으르게 하지도 않습니다.
네 번째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누군가의 위로, 인정을 기대던 것에서 많이 자유로워졌다는 점입니다.
내가 나를 위로해 주고, 알아주고 이해해 주니 내 마음이 푸근해져서 굳이 다른 사람의 위로를 기다리거나 바라지 않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나에게 힘을 주니까 그걸로도 충분히 힘이 나거든요.
셀프 소생이지요.
그렇다고 타인의 인정을 바라고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건 아닙니다.
이건 본능이라 수시로 예기치도 못한 상황에 불쑥 내 마음을 건드리고 올라옵니다.
어느 순간 그런 자극에 휩쓸리는 에고를 만나기도 하지만 이제는 그런 내 모습을 비교적 쉽게 알아차리게 됩니다.
이런 과정은 '또 그랬구나.'하면서 저의 에고를 달래줄 때 느끼는 씁쓸함도 있지만 한계를 받아들이기 쉬워지는 이점도 있습니다.
결국 완성은 없고 계속 이렇게 나아가야 한다는 걸 배우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또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달라진 점이라면 나 자신에 대한 긍정성, 애정입니다.
내가 내 마음을 보살피지 않을 때는 나를 잘 몰랐습니다.
에너지를 온통 남과 상황, 사건에 쏟아서 나를 돌아볼 여력이 없으니 내가 나를 알지 못한 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내가 나를 돌아보면서 나를 좋아하는 마음이 커졌습니다.
나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되고, 나를 인정하니 그런 내가 또 좋아지는 선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참 행복한 순환 구조지요.
부정의 고리도 반복되지만 긍정의 고리도 반복됩니다.
나를 보살피는 일은 나를 이 긍정의 고리에 빠지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나를 보살피면서 병에서 회복되고 삶에서 자유를 얻었으며, 나와는 끈끈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저에게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 저를 빛나게 해 준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를 돌보는 일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나의 상처를 낫게 해주고 내 삶을 되찾을 수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셀프 돌봄을 합니다.
여러분도 같이 하시면 어떨까요? 당신을 위한 셀프 돌봄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