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이 알아주건 아니건, 남이 인정하건 아니건 내 마음이 아픈 건 나에게도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어떤 땐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상처가 되기도 하고요.
이렇게 복잡한 것이 우리 마음이지요.
어릴 때 저는 별로 아픈 적이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늘 아침 일찍 나가셨다가 저녁이 다 되어서야 돌아오셨으니 어린 저는 늘 부모님의 관심이 부족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제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숙제, 공부, 청소같이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열심히 했습니다.
부모님이 오시면 "아이고, 잘했다." 하고 등을 토닥여주실 때도 있었지만 "그래, 그래." 하고 대충 넘어가시거나 "그래, 알았다."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실 때도 있었어요.
부모님 반응 따라 제 마음도 달라졌지요.
세월이 지나 저도 부모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부모의 삶'이라는 걸 알아가면서 나의 부모님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어른이지만 저처럼 미숙하셨고, 부모가 되었지만 저처럼 서툰 부모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요.
하루하루해야 할 일과 신경 써야 할 것들에 몸도 마음도 여유가 없는 그런 상황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상대의 관점으로 나를 볼 수 있다는 건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시작이 되기도 하지만, 내 상처가 나아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많은 경우 상처는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기 전에 내 입장에서 느끼게 되는 감정이니까요.
상대의 입장을 알고 섭섭함이나 불쾌함이 풀렸을 때 우리는, 오해가 풀렸다고 합니다.
많은 문제들이 대화를 하다 보면 서로 이해가 되고 풀어지는 걸 보면 상처란 대부분 이런 오해에서 빚어지는 것 같아요.
물론,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저는 그 이유를 상대도 나도, 이런저런 이유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만한 여유가 없는 상태거나 아직 그럴만한 의식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역시 누군가를 다 이해하고 수용하지 못하는 것처럼 상대도 그럴 수 있음을, 나와 상대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사실 나는 몰랐지만 나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들도 있고, 생각지도 못했던 내 행동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요.
상처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싶다면 이렇게 해보세요.
1. 내가 지금 내 상처에만 집중하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2. 상대에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없었는지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
3. 여전히 이해가 안 되더라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었고 또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걸 생각해 본다.
이 과정은 상대만 나쁘고, 나는 아니라는 착각, 편향적 사고에서 벗어나 나도, 상대도 어쩔 수 없이 부족함을 지닌 존재라는 걸 알게 해 줍니다.
결국 내 생각과 시선이 넓어지는 것이지요.
그러니 나를 위해 내 상처를 통해 남을 이해해 보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는 상대를 탓하고 나를 불쌍히 여기는 자기 연민의 이유가 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는 타인을 이해할 수 있고 나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상처를 대할 때 아픔은 내가 성장하는 계기와 동력이 되고요.
어떻게 생각할지는 언제나 나의 선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