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행복" 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저 역시 그랬어요. 아니, 그런 줄 알았습니다.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된 사실은 제가 입으로는 행복을 원했지만, 마음으로는 행복을 밀어내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은 행복하고 싶다면서 행복하지 않은 것에 집중하는 이중적인 저의 모습을 통해서였습니다.
행복하지 않은 이야기, 행복하지 않은 사람에게 마음을 쓰는 나를 보면서 '왜 내가 행복하지 않는 것에 이렇게 집중하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걸 부정 패턴에 얽힌 사고방식 때문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생각의 부정 패턴을 고치려고 애를 썼습니다.
쉽지 않더라고요.
자꾸 노력할수록 이걸 고치지 못하는 나에게 지치고 내가 미워졌습니다.
답을 찾지 못하니 고민은 사라지지 않고 마음에 남아 계속 나를 힘들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정 패턴의 원인이 두려움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행복한 일상에 닥치는 예기치 못한 일들, 불행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 일들이 주는 충격과 혼란을 저는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은연중에 '행복을 마음껏 누리지 않으면 갑자기 불행이 와도 이렇게 힘들지 않겠구나'라고 생각을 했던 어느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더라고요.
또 하나 남은 마음의 걸림돌이 있었습니다.
그건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이었습니다.
과거 저의 부모님은 집안의 짐을 많이 지고 사셨습니다.
어린 제 눈에는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면서 힘들게 사시는 부모님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 저걸 딱 잘라 거절을 안 하시는지, 왜 저렇게 힘든 역할을 다 떠맡고 계시는지 화가 날 때도 있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부모의 힘든 삶은 자식에게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힘든 부모를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 도움을 드리고 싶지만 그 역할이 너무 작다는 걸 알게 되면서 자식은 열심히 하면서도 그 짐을 덜어드리지 못하는 미안함을 갖게 됩니다.
저의 경우는 그랬습니다.
그게 상처가 된 줄 모른 채 신나게 사회생활을 즐기고 집에 가던 어느 날 문득 집에 계신 부모님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좋은 것을 보고, 좋은 일이 있으면 가족이 가장 먼저 생각나잖아요.
그런데 저는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갑자기 행복한 내가 미안해졌습니다.
'엄마 아빠는 지금 힘들게 살고 있는데, 내가 이러면 안 되지...'
그렇게 한껏 들뜬 마음을 내려놓고 차분하게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런 자잘한 경험들이 쌓여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저는 행복을 적당히 느끼려고 했습니다.
행복은 저에게 불안하고, 미안한 것이었으니까요.
제가 원하는 것이지만 거부해야 할 것이기도 하니까요.
마음이 좀 편해지고 난 지금은 감각과 느낌으로 최대한 행복한 순간을 마음에 담으려고 그 순간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이 장면과 이 소리와 이 느낌을 꾹꾹 마음에 눌러 담자는 생각으로 집중하다 보니 일상의 소중했던 순간이 여전히 기억에 남아 저를 즐겁게 해줍니다.
마치 상처가 계속 나를 힘들게 하는 것처럼 좋은 기억도 내 안에 남으면 계속 나를 즐겁게 해주더라고요.
일상은 좋고 나쁜 일들이 함께 있습니다.
생각을 바꾸거나 관점을 바꿔서 쉽게 덜어버릴 수 있는 순간들을 훌훌 덜어내버리고, 지금 나를 웃게 하는 그 일(상황, 물건 등)에 온전히 마음을 집중해 보세요.
촛불 하나가 어둠을 밝히듯 지금 내가 담는 즐거움이 내 마음을 가볍게 해줄 거예요.
그렇게 함께, 행복을 향해 한 발 다가가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