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시절 봉사활동을 통해 만난 동갑내기 남자 사람이 있었습니다.
책을 좋아하고 시를 좋아하는 그 아이가 술을 좋아하고 어울리는 것에 관심 많았던 저에게는 별종 같았습니다.
지금은 순하고 맑았던 그 친구의 마음 외에는 별로 기억나는 게 없지만 겨울이면 늘 그 친구가 쓴 시의 제목이 떠오릅니다.
"꽃은 두 번 피어난다."
이 제목이 제 마음을 붙잡았습니다.
내용은 꽃은 꽃봉오리를 틔어 내 피어나기도 했지만 한겨울 눈을 고스란히 맞으며 또 피어나기도 한다는 것이었는데, 저에게는 없는 신선한 시선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기억에 남아 매년 겨울이면 저를 찾아옵니다.
지난겨울 온 가족이 차를 타고 가는 길에 함박눈을 맞은 나무를 보고 남편도 아이에게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00야, 저것 봐. 나무에 꽃이 핀 것 같다."
"아, 그러네. 눈 꽃."
요즘 저는 꽃이 아닌 사람에 대해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두 번 태어나는구나.'라고요.
처음 한 번은 부모님의 품을 통해 태어납니다.
세상을 배우고, 홀로서는 법을 그 품에서 배웠지요.
그다음은 내 삶을 통해 진정한 '나'를 찾아가면서 다시 태어납니다.
이건 하나의 사건이라기보다는 과정이지요.
과거에 나에게 생겨난 많은 틀과 아픔들을 다시 보고 지우면서 내가 되어가는, 원래의 나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요.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나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지요.
우리는 매 순간을 그렇게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나의 역할을 나답게 해나가는 것이지요.
저를 예로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저는 늘 가족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에 나에 대한 사랑이 없다는 건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나의 불안에서 나온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의존적인 내 성격에서 나온다는 것도요.
그걸 깨닫고 지금은 좀 다르게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들도 자신의 삶을 짊어질 수 있는 지혜와 의지가 있는 사람들임을 인정하는 마음으로 사랑을 전합니다.
나 역시 의존하고 싶은 내 마음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으며 나를 더 사랑하고 있습니다.
굳이 삶의 양식을 바꾸지 않더라도 지금의 삶에서 나다움을 선택하는 것, 우리는 그렇게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순간순간 예전과 다른 선택이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기회인 것입니다.
부모님에 통해 태어났지만 성장과정을 통해 부모님과 다른 '나'라는 자아를 가진 고유한 '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를 돌보고 기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사회로부터 물려받은 그 가치를 인정하며 머무를 것인지 자꾸 배운 것과 다르게 가려는 내 마음을 따라가 볼 것인지의 선택 또한 내 몫입니다.
곰곰 생각해 보면 나는 내 인생을 걱정했지만, 정작 인생은 그걸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나'의 결정에 달려있었습니다.
그러니, 나를 위한 선택을 해보면 좋겠습니다.
나의 에고가 아닌 나를 위한 선택을요.
그렇게 우리 함께, 다시 태어나 보는 순간들을 쌓아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