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들이 떠올라 기분이 좋아질 때가 있습니다.
엊그제부터는 요양원 봉사 시절에 만난 할아버지 한 분이 자꾸 생각이 나더라고요.
제가 봉사를 다녔던 요양원은 시에서 운영하는 곳이었고, 그 지역에서 독거 중이신 어르신들을 모시는 곳이었는데, 대부분 자녀가 있는 분들이셨습니다.
시설 자체가 중증의 어르신들을 모실 수 있는 곳은 아니어서 어르신들은 약간의 차이는 있을 뿐 대부분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이셨습니다.
비교적 건강해 보이셨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억울함과 서러움이 깊으셨어요.
자식이 나를 버렸다는 슬픔, 과거도 힘들었던 내가 이제는 요양원 신세라는 좌절감, 내가 과거를 잘못 살아서 가족이 나를 등졌다는 죄책감 같은 감정들이 어르신들의 관계 안에 얽히고설켜있었습니다.
그래서 종종 다투셨어요. 불만도 많고 요구사항도 많으셨습니다.
몸보다 마음이 괴로운 분들이셨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할아버지 한 분은 조금 다르셨습니다.
젊은 시절 가족과 잘 지내지 못해 혼자되신 그분은 큰 키에 서글서글한 성격이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웃음에는 불만과 불평이 가득한 요양원 분위기를 한 번씩 날려주는 후련함이 있었습니다.
어느 주말, 요양원에 행사가 있어 봉사활동을 갔을 때였습니다.
성격도 급하고 움직임도 빨라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다 한숨 쉬는 저를 보신 할아버지께서 묘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허허. 내 것만 갖고 살겠구나."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내가 가진 그만큼으로만 살겠다고. 그러면 안 돼.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능력을 나누면서 살아야지."
뜨끔했습니다.
바쁘게 뛰느라 남이 하는 수고를 보지 못하고 나만 한다고 짜증 났던 옹졸한 마음이 다 들킨 것만 같았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나누고 있구먼... 에이 몰라, 봉사 왔잖아. 나눠야지, 그래, 나눠야지. 나누자!'
한참이 지난 요즘 문득 20대에 들었던 그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지금은 할아버지가 나누면서 살기 위해서 늘 너 자신을 잘 챙겨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지 않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라면서도 그랬습니다.
집과 학교에서 나눔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많이 들었지만, 정작 잘 나누어야 한다는 것과 그걸 위해서 내 것을 먼저 제대로 챙겨야 한다는 것은 배우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니 사실은, 들었다 해도 제가 그 의미를 이해할 수준이 못되었던 것 같습니다.
나를 잃은 삶의 공허함을 겪고 나서야 잘 나누기 위해, 따뜻함을 전하고 웃으며 함께 하기 위해 나눔보다 중요한 것은 '잘 준비된 나'라는 걸 깨달았으니까요.
친절도 봉사도 모두 내 안에서 나오는 것인데, 텅 빈 마음으로 친절을 나누고 봉사를 하러 다니니 공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모는 가장 가까이서 아이를 위하고 돌보는 존재이지만, 아이의 모든 것을 알고 해결해 줄 수는 없습니다.
결국 보이지 않는 자기의 마음, 그걸 돌볼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스스로 자신을 돌보는 셀프 돌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 셀프 돌봄을 통해 우울증이라는 깊은 수렁을 빠져나왔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나를 위해 해야 하는 셀프 돌봄이지만 남을 위한 돌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결국 그게보다 나은 사회라는 공동체를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셀프 돌봄으로 내가 행복해지고, 그런 나를 나눔으로 주변에 행복을 전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저는 오래전 할아버지가 주신 숙제의 답을 이제야 찾은 것 같습니다.
다시 뵌다면, 그럴 일 없겠지만 다시 뵌다면 할아버지 얼굴 마주하고 웃으며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잘 나누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바로 서는 것이었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