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는 아주 가까운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도 저처럼 결혼을 해 딸을 하나 낳았습니다.
그런데 몸이 회복되지도 않았던 그때, 친구는 갓난 아이를 데리고 이혼을 선택했습니다.
복잡한 마음으로 주변의 억측도 감당해가면서 이혼한 친구는 이제 훌쩍 자란 딸과 친구처럼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저 역시 삶의 목표가 이혼이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땐, 내 힘든 삶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이혼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이 그렇게 길을 정하면 눈은 오직 마음에 맞는 것만 보게 되고, 생각은 그 마음에 맞는 생각만 하게 되더라고요.
남편의 모든 것이 싫었습니다.
함께 사는 것은 물론이고, 걷는 소리, 숨 쉬는 소리까지 모든 게 견딜 수 없는 자극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이혼해야만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혼이 답이 아니더라고요.
답은 서로가 상대에게 더 주의를 기울이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미운 사람에게 억지로 잘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우울해졌으니까요.
미운 날은 미워하고,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날에 생각과 마음을 더 잘 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불만이 아니라 원하는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했어요.
변화는 쉽게 오지 않지만 안 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시간은 걸렸지만 결국 더 나아졌거든요.
예전엔 그 시간이 없었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그 시간이 있어서 서로의 소중함과 가족이 함께 하는 행복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되었고, 더 나은 부모가 되는 것에 마음 모을 수 있었으니까요.
마음이 바뀌면 보지 못했던 것들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남편이 가족을 챙기는 마음이 보이더라고요.
늘 남편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이 가족을 덜 사랑했던 게 아니라 그 사랑을 볼 줄 아는 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집안보다 남의 일을 더 챙기는 것 같은 남편이 지나치다고 생각했었는데, 남편 입장에서는 자신의 노력을 당연시하는 제가 지나친 사람이었겠다는 것도요.
아마 제가 이혼했더라면 남편의 이런 모습은 저에게 없는 모습이 될 수도 있었을 거예요.
아이가 아빠와 쌓는 행복의 시간도 아주 조금이 되었을 것입니다.
노력하면 달라질 수 있더라고요.
미움과 불만과 짜증이 가득했던 우리가 매일 웃게 되고, 말을 피하던 우리가 더 많은 생각을 나누게 되고, 사소한 일상에서 따뜻한 시선을 더 많이 나눌 수 있는 것처럼요.
그렇다고 제 삶이 친구의 삶보다 낫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친구는 딸과 해외여행도 즐기며 아주 자유롭게 살고 있거든요.
친구가 아이와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 된 준비의 시간이, 저희에게는 서로 달라지고 노력할 수 있는 약과 같은 시간이 된 거라는 그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옳고 그름도 없고, 낫고 못함도 없지요.
지금 자기의 삶에 만족하는 그거면 충분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