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보여지는 것>
직업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그만 둔지도 이미 오래전이지만, 그래도 아주 가끔 취미 삼아서 창작적 느낌이 드물게 찾아올 때, 한 번씩 그려보고는 한다.
하지만 분명 그리고자 하는 욕망은 발현되는데..., 문제는 무엇을 그릴지 생각하는 게 귀찮아질 때가 있다.
바로 그럴 때, 예전 그림 다시 그리기를 한다.
아마도 이 그림의 첫 시작은...
2003년도였는지.. 04년도였는지 가물가물 하지만, 기억나는 건..,
군 시절, 선임들 눈치 보며 내무반 구석에 쭈그려 앉아 스케치했던 기억이 단편적으로 남아있고, 채색은 그 뒤로도 한참 시간이 흐른 제대 후 어느 날에 마무리했다. (그림 구석에 날짜 보니까 그것도 2006년이네..)
21세기의 시작점이 얼마 지나지 않은, 03년에 첫 스케치를 시작으로(뭐? 벌써 19년 전이라고?!),
몇 년 전 다시 그려보려다 도중에 귀찮아져 그만두고(아래 왼쪽 그림), 그 후로도 몇 년이나 지나,
지금으로부터 작년.. 21년도에서야 다시 시도하여 그려내었다.
다시 그리다 보면, 조금씩... 그때그때 느낌 오는 대로 의상이나 포즈 등을 바꿔나가는데, 그러다 보면 종종 처음 의도와는 다른, 전혀 새로운 그림이 되곤 한다... 가 아니라, 거의 그렇게 되더라.
결국엔 이 그림도, 최초 작업물에서 수정되고 고쳐진 것이 수준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새로 그린 것이나 크게 다르지 않게 되었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항상 끝에가서 <완성의 규정>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문득 지금 내가 닿아있는 완성의 정의를 잠깐 정리해보자면,
- 완성의 필수 요건은 언제나 <업로드, 즉 전시>
부끄러운 그림일지라도 이렇게 공개된 장소에 올리는 이유는, 언젠가부터 나의 규정 속 '완성'은 반드시 [공개된 장소에 전시되고, 관람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데, 어릴 적에는 자신의 그림이 타인에게 보여진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그림 조금 그렸다고 잘난 척 하는 것 같거나, 항상 더 잘 그리는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그런 고수들의 작품에 비해 언제나 내 그림은 보잘 것 없어 보였던 탓에, 자신의 그림이 보여지는게 편하지는 않았다.
그런 감정들 탓에 굳이 타인에게 그림이 보여져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항상 있었고,
그러다 언제였는지, 문득 깨닫게 된 시점이 있었는데,
창작물이라는 것은 창작자가 선택한 소통의 방식이라는 것.
결국 보여지지 않는 작업물은 타인과 소통되지 않음으로써 완성되지 않은, 어쩌면
그저 개인의 습작이나 일기 같은 것에 불과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작업물을 두고 <타인에게 보여진 작업물>은, <보여지기 전 작업물>과 분명한 차이점을 가진다는 사실을 나름 깨달은 후로, '전시'라는 과정도 완성에 다가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포함하게 되었다.
그림이나 창작물의 속성은 보여짐으로써, 관람자와의 교감과 소통(그것은 비판일 수도 있고, 불쾌함일 수도 있고, 즐거움이거나, 미적인 어떤 것일 수도 있다.)으로 수렴되고 나서야 비로소 완성이라는 최종 '캡스톤'을 올릴 수 있는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