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생각을 변화시킨다.>
2017년 10월 3일 씀
요즘 라디오를 켜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DJ의 음성 없이, 오직 음악들만이 연속해서 흘러나온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방송국 내부에서 파업을 하다 보니 그리 된 것이지만, 개인적인 취향 탓인지 오히려 나에게는 재잘재잘 말소리가 없어 좋다.
출근길, 오늘도 역시나 라디오를 켜니 기다렸다는 듯이 노랫말들이 흘러나왔다.
남성 발라드 곡이었는데, 노랫말은 언제나처럼 '비극'이고, 노래를 부르는 남자는 거의 울기 직전이다.
항상 그렇듯이 시시콜콜한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아내와의 대화는 많은 주제들을 오간다. 이를테면...
#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듣게 되는 대부분의 노랫말(특히 발라드)은 '비극'이라는 점,
# 비극도 여러 종류가 있을 테지만, 그중에서도 발라드 음악이 대체로 '비극의 오르가즘'을 노래하는 이유,
# 비극적 오르가즘과, 아이돌의 직관적 가사들이 언제부터인가 주류처럼 되어버린 가요나 드라마에서의 분위기는 대중들에게 일정 순간이나 한 시절 공감을 줄 수도 있지만, 공동의 매체에서 일색적인 모습만을 그려내는 이별의 모습은, 사랑을 하는 방식이나 이별 후 감정의 쏟아내는 행동학적 관념을 줄 세우듯 몰아갈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하는 점 (예컨대 '헤어짐'의 감정적 범주 안에는 차분한 그리움적 헤어짐의 감정도 있을 텐데, 오로지 흘러넘치는 감정을 억누르기 힘들 정도의 슬픔을 당연시하고 강요하는.. 뭐랄까, 감정이 폭발되어야만 경쟁에서 성공하는 '복면가왕'류?)
# 보컬들이 거의 구토할 정도로 감정을 쏟아내거나, 듣기 거북할 정도의 느끼한 창법은 사실 보컬의 문제가 아니라, 가사의 문제였을 수도 있겠다는 점
# 많은 사람들이 겪는 '헤어짐'은 흔한 노래 가사들처럼 세상이 무너질듯이 쏟아내고 있는 분위기와는 의외로 다르게, 이별 후 다음 날, 한 주, 한 달... 언제나처럼 똑같은 출근을 하며 일상의 평범을 견뎌낸다는 것
.... 등의 이야기를 나눴다. 그 짧은 시간 동안에...;;
당연하겠지만, 하나의 사랑은 시작에서 이별까지 감정의 기승전결이 있기 마련이다. 연인 간의 관계가 대단히 에로스적이었든 플라토닉적이든 형태는 켜켜이 다양하지만, 그 다양함 속에서도 결국 이별의 속성은 '헤어짐'이라는 것이고, 때문에 이별의 선언은 순간의 찰나이지만, 선언되기 전과는 달라져야 하는 것만은 분명하며, 이후부터는 다시 개인적 일상으로의 회귀가 시작되고 그 이질감을 견뎌내는 간극에서부터 이별 전과 후의 '시차'가 발생된다.
하지만 그 시차는 사람에 따라 길거나 짧고, 대처하는 방식도 제각각이기 때문에, 대중매체도 지금보다는 더 포괄적이고 다양한 감정선을 실어야 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는 것으로 대화의 결론이 내려졌다.
이별을 노래하겠다면, 이별의 감정적 포텐이 터지는 그 오르가즘의 순간만을 말하고 흐느끼는 것이 아닌, 조금 더 미시적이고 더욱 사소해진 가사로 이루어진 다양한 순간을 노래하는 음악이나 드라마가 더 많은 대중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2021년 10월 3일 씀
아마도 위 글을 쓸 때가... 방송국 파업하던 시절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 다시 이 글에 대해 생각해보면..
사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 사실만으로도 압도적이라서, 살아가며 우리에게 흘러드는 정보와 자극들은 크기에 관계없이 하나의 감각으로 들어오는 것 그 자체가 굉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내가 보거나 듣지 못한 것들은 결국엔 나의 경험이 될 수 없고 내 삶을 이루는 파편이 될 수 없기 때문에, 해당 사실이 아무리 큰 정보라 하더라도 나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단언될 수도 있다.
조금 더 풀어 말하면..
내가 지금 아무렇게나 누워 눈알을 돌리거나, 손가락을 까닥까닥 움직이는 것은, 정보적 차원에서는 매우 의미 없는 사소한 행위이겠지만, 그래도 분명하게 내 삶을 채운 하나의 경험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내가 모르고 지나친 엄청난 뉴스보다도 대단히 압도적일 수 있다.
요컨대 내가 듣거나 알거나 보거나 행위하지 않았던 것은 결국, 내 삶을 하나도 채우지 않은 것들이며, 그것이 아무리 큰 경험적 사실이라 하여도 자신과 전혀 관련이 없는 그저 누군가의 경험인 것이다.
연장하여 생각해보면, 연애의 시작부터 이별.., 그리고 이별 후의 삶까지의 경험은 한순간도 자신에게 압도적이지 않았던 적이 없었을 것이며, 그 압도적인 순간들 중 가장 그럴싸하고 스펙터클 했던 한 장면만을 꺼내어 노래하는 것도 굉장히 합리적이구나 라는 생각?
굳이 시시콜콜한 걸 내가 왜 쓰고 있지 하면서도, 이 하찮은 글을 쓰는 이 순간 역시 결국 나의 삶을 온전하게 채운 하나의 압도적 경험이 진행 중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