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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원래... [생각, 추억 글]

< 빛이 있으라>

by 춘고

2021년 1월 22일 씀


시간은 흐름을 멈추지 않고, 나이는 시간에 무기력하다.

매년 한 살씩 더해감과 동시에 늘어나는 것은 불편함 뿐인 듯하다.

누군가는 취향이 확고해지는 과정이라며 바꿔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뭐가됐든 그러하고, 이러다 늘그막엔 삶이 온통 불편함만으로 점철되어 버리지는 않을까 우려되기 시작한다.;


문득 수많은 불편함 중 골라서 말해보자면 이런 사람들이 있다.


습관처럼 말 앞에 ‘솔직히…’, ‘원래…’를 쓰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이런 사람들과의 대화는 불편하다.


그들이 나에게 어떤 해코지를 해서가 아니라, 대체로 그런 화술을 구사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높은 확률로 그와 나 사이에 어떤 벽으로 턱 막히는 기분이 들어서다.


이들 부류가 경험적으로 불편한 이유는 아마도 [그들과 나는 각자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 틀리더라.]

결국 나와 당신의 유니버스가 틀리다는 말과의 다름이 아닌데, 그렇게 다른 이계(異界)를 마주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아마도 내향적 성향?을 가진 나 같은 부류에게는 쉬운 게 아닌가 보다. (그냥 나는 쉬운 게 좋아..)


다른 이유로는, (어디까지나 이것도 순전히 개인의 경험적 판단이지만..)

이들 부류에게는 세상은 어려운 것이 아닌 듯하다.

물론 각자 자신만의 금전적인 목표에 대한 고민이나, 당연히 살면서 하나 이상씩 가지는 어려움은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부류가 사고하는 ‘세상의 해석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의 말을 듣다 보면, 그들에게 세상은 이미 자신의 내면에서 어느 정도 해석이 완료되어 보인다.

나로서는 그러한 "완결성"이 불편하다고 볼 수 있는데, 특히 ‘원래’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는 이에게 불편함을 더 많이 느끼는 편이다.


‘원래 세상은...', '원래 000은 그런 거야,’라는 말을 듣고 나면 그와 더 이상의 대화는 불가하다.

이미 사고를 끝낸 사람에게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고작 그들의 말에 공감 정도만 덧붙이는 것으로 대화는 종료된다.


어떤 점에서는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여전히 모르는 것들 투성인데 어떻게 그 어려운 것들을 정립하고, 정의하여 하산할 수 있었을까?


내가 복잡하게 사는 건지는 몰라도, 나에게 세상의 이치는 자신 안으로부터 꾸준한 물음과, 그것이 표현되는 언어로써 제련하는 긴 과정을 거쳐 받아들여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일상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단어일지라도, 그 단어가 사용되는 방식은 고작 내 안에서 검증되고 발화하는 것이라서, 당신과 나 사이에 동일한 음성으로 발음되는 동의어라도 그것은 각자에게 엄연히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단어나 언어의 쓰임에 있어서 가능하면 어원이나 역사적 의미를 찾아본다거나, 나로부터 발화된 언어를 수렴하는 상대방에 대한 공감까지의 과정을 포괄해야 하는 것이 나에게는 옳아 보인다.


그런저런 의미에서 ‘원래’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하는 부류와의 대화는 항상 어렵다고 느껴지더라...

‘원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순간 더 이상 사고와 대화를 멈추겠다는 의미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문득 한 번씩 드는 생각 중에, 과연 그들이 말하는 ‘원래'무엇으로부터 근원이고, 그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그들의 '원래'는 빅뱅 이전까지도 설명할 수 있을까?


설마 그 이전이 '빛이 있으라’는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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