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까지 보고 난 느낌>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다 보니 그 좋아하던 게임도, 그림도.. 조금씩 멀어지는 것을 느낀다. (정신적, 체력적으로도) 막상 게임을 하더라도, 긴 호흡이 필요한 게임은 더더욱 멀어지고,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 역시 같은 맥락에 머문다.
드라마를 보는 것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섯 편, 열 편이 넘어가면 그 서사의 무게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단편적인 영화 정도만 찾아서 보고는 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최근에 기류를 잘 타서 드라마들을 여러 편 보게 되었다.
이것도 한번 흐름을 타니, 한 편의 드라마가 끝이 나면 또 다른 드라마를 찾게 되더라…
최근 나의 심금을 울렸던 ‘기상청 사람들’이 끝나고 마음 둘 곳이 없었는데, 다행히 바로 이어서 하는 드라마가 매우 맘에 든다.
<나의 해방 일지> 현재까지 단 1화 만을 봤을 뿐인데 이거 느낌이 좋다.
‘존재’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로우며, ‘존재’가 남겨지는 과정에서 내는 파생음을 담아내는 이야기로부터 내가 어떤 식의 위로를 받는 것은, 내가 존재 그 자체라는 것에 가진 확고한 취향일 수도 있겠다.
누가 뭐라 해도, 현대의 인류는 집단에 매몰되어 살아간다.
때로는 집단으로부터 이소하려 들기도 하지만, 결국 외연만을 돌고 돌아 제자리에 서 있으며, 어쩌면 그것은 존재로서 받아들여야 할 그 무엇일지도 모른다.
집단의 자기력은 모든 자아를 끌어당겨 통합하려 들고, 자아의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인류는 타인의 규격과 질서에 수렴되며, 타인이 자신을 규정해 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이 드라마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
드라마 속의 주요 인물들은 집단으로부터 유리된 공간 속에 거처한다, 때문에 언제나 집단에 스며들지 못한 분리불안적 본능 속에서 매일을 살아간다.
하나의 공간에는 그 공간의 크기에 대응되는 공간적 외로움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타인으로부터 격리된 자아의 외로움과 더불어 공간은 그 외로움에 화학적인 촉매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외로움에 던져진 사람들은 무리에 속하고자 하는 열망의 발현으로써 종종 공간적인 층위를 나누기도 하는데, 실제로 서울 안에서는 강을 기준으로 남과 북의 층위를 나누고, 서울은 서울과 경기도를 구분하며, 경기도에서는 수도권과 나머지 지방을 나눔으로써, 현재 자신이 위치한 좌표, 즉 집단으로부터의 거리를 측정한다.
이 드라마에서 다뤄지는 '공간'은 홀로 독립되지 못한 자아가 이미지적으로 가시화된 하나의 장치로서, 주인공들은 공간이 부여하는 외로움 만을 인식하지만,
사실은 집단에 속한 사람들 역시 공간적으로 분리된 주인공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공간에 관계없이 사람들은 타인과 유리된 자아의 불안함을 감추기 위한 방법으로써 화폐를 소비하여 자신의 본질을 차폐하거나, 무리 속에 숨어들어 은신하며 간신히 외로운 자아를 달랜다.
드라마의 제목처럼 아마도 이 드라마는 올바른 자립, 시공간에 크게 얽히지 않을 견고한 독립성에 대하여 말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의 방법적인 장치로서, 유리된 존재의 불안감을 종식시켜 줄 새로운 인연을 제시하거나, 항상 궤도를 같이 했던 가족들로부터 올바른 이소를 실천하여 자신만의 궤도를 갖는다거나, 또는 자신이 온전하게 자기 자신으로서 남을 어떤 특별한 방법을 발견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