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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해방일지 #3, 불완전 완전체 [리뷰]

<'음주성' 감상문>

by 춘고
[가짜로 해도 채워지나?]
[이쁘다, 멋지다.. 아무말이나 막 할 수 있잖아]

<말하는 순간 진짜가 될 텐데?, 모든 말이 그렇던데>
<해봐요, 한번, 아무 말이나..>




<완전함>, 그 '채움'의 완전함에 대하여..


<완전하다>라는 말을 바꿔 말하면, 불완전의 부재일까?

채워지기 위해서 추앙받거나, 채우기 위해 추앙한다.

스스로 채워지지 못한 불완전을 안다는 건, 그것은 완전한 채워짐을 아는 것에 기반되지 않을까?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앎의 인식이, 스스로 어떤 '완전함'을 알고 있음을 근거로 현재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채워짐', 다시 말해서 '완전함'의 근원은 불완전이 되고,

따라서 불완전은 완전의 모태일까?


또한 완전함은 모든 '빠짐없음'을 말하는 것이 되고,

빠지는 것이 없음의 의미는, '불완전'조차 완전함 안에 귀속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완전은 불완전을 담지하므로, 완전함이 성립될 수 있을까?


마치 한 삶의 궤적을 거시적으로 볼 때 탄생과 죽음, 즉 시작과 끝으로써 종결된 완전함이 되지만.

모순적으로 완전한 삶에는 사라짐/부재의 속성으로서 불완전의 근원인 '죽음'을 포함하므로, 완전함의 모순이 된다.


'죽음'을 불완전으로 규정할 수 있는 예증은,

완전함을 말하는 종교는 '죽음'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그 불완전의 중간 어딘가에 안착하였고,

종교는 불완전의 기반에 세워져 완전한 사후세계를 말함으로써 신의 완전함을 대변한다.


우리는 불완전을 인식함으로써 완전함을 인지하고, 완전함은 불완전에서 분리된 ‘불완전 완전체’다

'완전함'은 여기에서부터 인식되어야 한다.




우리는 불완전의 근거를 완전함에서 찾지만, 언젠가는 궁극의 완벽함을 볼 수 있을까.


살다 보니 '열등감'에서부터 완전함을 인식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타인이 가졌을 때.. 타인이 가진, 내가 없는 그것만 가질 수 있게 된다면 완전해질 것 같은.. 그런 것.


그렇게 언젠가부터 자신 안에서 완전함을 아는 것처럼 인식되어 있지만,

사실은 우리 안의 완전함이 '불완전 완전체'였음을 애써 부정하며,

'불완전 완전체'로부터 부족함을 근거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부족함을 마치 '기시감'처럼 인식할 것이므로..

결국 완벽한, 완전한 삶을 살아내는 것이 아닌, 부족하지 않는 삶을 견뎌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존재하지 않을 '완전함'이라는 고도에 결코 이를 수 없고,

언제나 '완전함'은 가없이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삶은 항상 가없이 내딛는 것이 되고,

현실은 언제나 그 너머 있을 것만 같은 완전한 '사후세계'를 그리워할 것이며, '사후세계'에서는 실체성을 가진 완전한 현실을 그리워할 것이다.


차라리 삶은 그 완전한 것이 있음을 그저 믿거나, '르상티망'적인 원한 속에 완전한 무언가가 존재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시감 속에서 실천되고 있음을...


만약 언젠가 '완전함'이라는 것에 이를 수 있게 되어..

불완전함에서 완전함을 찾지 아니하고, 완전함에서 불완전을 잊을 수 있을 때 비로소..


호접몽을 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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