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서라면 뭔들... [귀촌 기록 3화]

<그렇게 가능하게 되더라>

by 춘고

사실, 귀촌의 목적지를 남해로 결정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무릇 아내의 의견 함량이 높은데.., 대체로 이러하다.


1. 바다와 산과 들이 공존할 것

2. 가능하다면, 어쩌면 해녀도 되어볼 수도 있을 것.

3. 너무 고립되어서는 안 될 것

4. 그 목적이 '귀농'이 아닌, '귀촌'이기 때문에 취업의 선택 폭이 용이할 것


대략 이런 느낌의 시골을 찾다가, 우연하게 만나게 된 지인로부터 초대를 받고 놀러 가게 된 곳이 '남해'였다.

그렇게 처음 방문한 남해는 정말 신세계였다.




삼천포 대교를 건너 해안도로를 따라 보이는 남해의 풍광은 마치 전생에 풀지 못한 답을 마침내 현생에서 찾아낸 것처럼 '아! 바로 여기구나!'라는 울림이 계시처럼 내면에서부터 퍼져나갔고, 서울로 되돌아와 남해에 대해 공부해보니 위의 4가지 조건에도 딱 부합되는.., 모든 것이 일이관지 되는듯한 바로 그런 곳이었다.


그렇게 틈만 나면 '남해군청' 사이트에 들어가 일자리도 염탐하고, 새 집을 지을 때까지 임시로 거처할 집도 마찬가지로 군청 사이트를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추억의 '임시 거처'가 되어준 집, 아아... 지금 다시 봐도 한숨이...


1화에서도 언급했지만, '임시 거처'는 금전적 효율성의 극대화를 주 목적으로 정하여 집을 구하다 보니, 허름한 곳을 구하게 되었다. (막상 살아보니 더 허름하더라..;;)


그래도 어쨌든 당장 살 집을 구한 것 아닌가!

아무리 허름하더라도 살아야 되지 않겠는가?

'벽지도 새로 하고, 장판도 깔고 하면 좀 낫겠지..;'라는 생각으로 조금씩 시간을 내어 주말에 내려가 청소하고, 장판과 벽지도 새로 깔고, 집 뒷편에 두서없이 자란 대나무들도 베어내기로 했다.





금전적 효율이라는 장엄한 콘셉트에 맞춰 장판과 벽지는 직접 셀프로 하는 것이 인지상정, 장판 가게를 찾아 읍내로 나가보니 바로 보이는 곳이 있었다.

가게 안에는 인상 좋은 사장님이 계셨는데..

'제일 싼 걸로 주세요'라고 하니, 단전에서부터 측은지심이 들으셨는지 더 좋은 장판을 제일 싼 값으로 주시겠다 하셔서.. 이토록 감사할 수가! 세상은 아름다워라~

과연 그대들도 장판과 벽지를 새로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잠시 세상은 아름다웠지만, 현실은 역시 실전이었다.

기존의 장판을 들어내니 곰팡이가..,

기존의 벽지를 벗겨내니 그 이전의 벽지가 드러났고, 다시 그 벽지를 벗기니......

거기엔 반갑게도 또다시 곰팡이가...;;;


그럼에도 못 본 걸로 치자며 스스로 세뇌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마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듯..' 장판과 벽지는 어떻게든 마무리했지만...

문제는 싱크대였다.

아아.. 이토록 뻔한 싱크대 디자인이라는 것은, 전쟁 이후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의 유물이라는 반증이다.

만약 <TV쇼 진품명품>이 근처에서 촬영했다면, 고고학적 관점으로 내가 과연 이 싱크대를 들고 가지 않을 수 있었을까?

사실 외관까지는 그럭저럭 참아볼 만했다. 하지만 모든 문제는 항상 내부로부터 였듯, 싱크대를 열자마자 세상의 모든 눅진하고 끈적한 그 어떤 이계의 향기가.. 세상의 모든 콧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1화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집의 주인분께서 몸이 불편하시다 보니, 아주 오래전부터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싱크대였다.

결국 차마 고대의 싱크대를 사용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다 뜯어내기로 했지만,

새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라 적당한 수준에서 직접 만들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집을 새로 짓게 되면 가구나 간단한 인테리어는 직접 제작하기로 했으므로, 필수적인 공구는 미리 사 두기로 했고, 급한 대로 에어 컴프레셔와 에어 타카를 구입하여 직접 싱크대 제작에 착수했다.

급하게 구입한 에어 타카와, 에어 컴프레셔
이 녀석을 깨고 나면... 스텝 롤이 올라갈까?

싱크대를 뜯어내니 역시나, 녀석은 '끝판왕'이 맞더라.

당시 현장의 무참함을 차마 사진에 제대로 담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싸니까.."라는 영혼의 속삭임이 나의 멘탈을 간신히 붙잡을 수 있게 해 주었고, 나와 아내는 아무리 삶의 하루하루가 소중하더라도.. 오늘 하루만큼은 기억 속에서 삭제하기로 했다.

나무와 렌지 후드를 별도로 구입하여 조립하였다.

뜯어낸 싱크대의 빈자리를 대체할 새로운 녀석을 만들기 위해 목공소에서 나무를 구입하였고, 렌지후드 본체만 따로 구입하여 나무와 함께 조립하였다.


그리고 싱크대 본체는 싱크볼만 별도로 구입하여, 각재를 잘라 다리를 만들어 붙여서 제작하였다.

그래... 고대의 싱크대보다, 차라리 이게 더 낫잖아?
시트지를 붙이니 조금은 기분이 나아졌다.
조리대는 유리타일을 사서 붙였다. 참내..
문짝은 사치야...

조리대는 적어도 방수는 되어야 하기에, 유리타일을 사서, 시멘트로 매지 하여 마무리 지었고, 싱크대에게 문짝은 사치 아니던가? 그래서 방수천을 사서 붙였다.(응?)


서울에서는 가스렌지를 사용했었는데, 시골에 오니 가스 집에 가스통을 시켜야 하더라.

(아아 정말 추억이다. 가스통 주문한 기억이 어렸을 적이었던 것 같은데...? )

그래서 그냥 인덕션을 샀다. (정말 '승리의 인덕션'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현명한 선택이었다.)

덕션아.. 너는 존재만으로 승리란다. / 최종적 주방

그 외에도 많다.

신발장도 작아서 새로 만들어 붙였고,

프로이트 조차도 참을 수 없는 무의식적 분노의 '욕실거울'을 떼어다가, 아까 싱크대 만들고 남은 유리타일로 리폼하고..,

신발장이 너무 작아서 추가로 만들어 올렸다. 마찬가지로 문짝은 사치라서 블라인드를 달았다.
도저히 저 거울 만은 참을 수 없었다.

그렇게 최종 이삿날은 다가왔고,

대망의 2016년 11월 3일... 우리는 비로소 귀촌했다.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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