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감정 해석은 '셀프'로...>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를 본 적이 있다.
이 영화가 개봉된 시점은 아마도 일명 'Y2K' 시대가 갓 지난 시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덧 색 바랜 영화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내가 이 영화를 본 시점은 오히려 현재로부터 더 가깝다.
문득 영화의 주연이었던 '이은주'라는 배우에게 처음 어떤 매력을 느낀 건, 우연히 그의 다른 영화 '주홍 글씨' 중 한 장면을 보게 되면서부터 였는데, 그 영화에서 배우가 직접 열창하던 'Only When I Sleep' 부르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주홍 글씨'를 제대로 본 적은 없다. 다만 인터넷에 추출된 영상 클립 중 그가 노래를 열창하는 단 한 장면만을 본 것뿐이었다. 그 후로 나의 플레이리스트에는 언제나 'Only When I Sleep'이 한 열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그렇게 이 배우는 이유모를 특별함을 가진 배우로서 나에게 각인되어 왔다.
예상컨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 중 끊임없이 생성/소멸되는 크고 작은 감정들을 매 순간 하나하나 해석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어떤 '사소한 감각'으로부터 생성된 감정은 미처 해독되지 못하고 다시 자신 안으로 수렴되지 않을까?
같은 선상에서, 내가 그동안 그의 영화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음에도 '이은주'라는 배우에게 가지는 영문모를 끌림은 아마도 위에서 말한 사소한 감각으로부터 발생된 감정과 비슷한 느낌일까?
처음부터 그의 영화를 감명 깊게 봤다거나, 아니면 그가 나만의 이상형에 가까운 외모를 지닌 것도 아닌데..
그저 우연하게 남겨진 한 조각의 영상만을 보고 어떤 매력을 느끼게 된 건, 단지 감각적인 감정 이외에 다른 해석적 이유는 없던 것일까?
시간이 흘러, 내가 그에게 어떤 매력을 느끼게 되었던 이유를 나름 해석할 수 있게 된 시점은, 최근에서야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를 보게 되면서라고 할 수 있겠다.
이처럼 감정에 따라서는 '생성과 해석'이 언제나 동시에 이루어지지는 않는 듯하다.
생성과 동시에 미처 처리되지 못하고 자신 안에 침잠되었다가, 일정의 세월이 흘러 어떤 적절한 순간에 마치 회상처럼 떠올라 해독되고 번역되는 감정도 존재한다.
언젠가 사연 없는 슬픔으로 귀가하던 나날들이 있었다. 일상의 모든 사건과 정보는 내면에 구축된 '스키마'를 지나는 동안 슬픔으로 변주되었고, 주변의 펼쳐진 모든 세상은 외로움의 '디오라마'였다.
물론 그때도 그렇게 되어버린 이유는 몰랐다.(당시에는 이유가 없다고도 생각했었다.)
다만 그런 감정을 가져야 한다는 의무감만이 있었던 것 같다.
이제와 그 시절의 나를 반추하여 해석해 보기로는 아마도 영원할 것처럼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며 조금씩 누적된 사소한 감정들이 어떤 임계점에 이르러 비로소 니힐리즘의 성격을 띠며 방사되지 않았을까?라는 추정만 할 뿐이다.
그럼에도 하나의 결론을 내 보자면, 당시를 소고 했을 때 누적된 감정의 결이 다시 분화되는 과정, 즉 누적된 감정이 역치점에서부터 어떤 성향과 디테일을 가지는 과정이라고 나름 결론지어 볼 수 있는데, 일종의 혹자들처럼 흔한 '사춘기'라 규정해도 대동소이할 것으로 본다. (사춘기는 정말로 매우 중요하니까..)
하지만 '감정은 언제나 해석되기 마련'이라는 공식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적확하게는 '해석된다'기 보다, '해석한다'가 맞지 않을까.
매 순간마다 생성되는 감정을 해석하는 과정은 일종의 훈련 같은 것이라며 다소 강력히 생각하는 편인데, 배고픔과 수면욕, 식욕처럼 초자아적 수준의 감정들은 말 그대로 본능 단계에서 발생되는 감정으로 보기 때문에 별도의 해석조차 필요치 않을 것이지만, 서운함, 슬픔, 미안함, 외로움, 허전함, 허무함 등의 입체적인 경험이 함유된 감정들은 뇌의 자동화 시스템에 맡겨 해석되도록 방치하는 경우보다, 약간의 에너지를 들여 적극적으로 해석해 봄으로써 어떤 부산물이 획득될 여지가 있는 감정들이다.
그 부산물은 다윈의 진화론에서처럼 일종의 '획득 형질/후천적 형질'로 치환될 수 있을 것인데, 감정의 발생적 근원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길어 올릴 수 있는 어떤 자아 내면의 구조적 설계도, 즉 복합적 감정의 발생에 있어, 그것이 자신 안에서 어떤 경로와 제련 과정을 거쳐 외부에 표출되는가를 알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사람마다 평소 훈련량에 비례하여 감정이 생성과 동시에 해석하는 것도 어렵지 않게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되며, 자신의 감정을 순간마다 빠르고 정확히 해석함으로써 '자신'이라는 하나의 대상적 개체를 메타적으로 알아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며, 스스로의 감정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음은, 필요 이상의 감정 소모를 줄여줌과 동시에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까지 계발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