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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참 어려워. [개인적 생각]

<그의 '출마 선언'은 나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by 춘고


사회라는 게, 정치라는 게 참 그래.

자신과 같은 길을 걷는 동행자가 되면 한없이 든든하고 무엇인가 이룰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보폭이 달라지고 새롭게 다가오는 갈림길에서 선택이 어긋나게 되었을 때 그 순간부터는 견제되어야 하고 상대의 입장을 부정하며 본인의 뜻을 대중 앞에 더 펼쳐야 하는 어떤 비극..


어제 뉴스를 보니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뉴스가 있더라.

결국 당 대표에 출마 선언을 하겠다는 뉴스였어.

이것에 관하여 요즘 꽤 말이 많았지? 가시적으로 권리당원의 자격이 불충분함에도 자신은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며 마찰이 생기는...

여기에 몇 가지 드는 생각이 있어서 생각도 정리할 겸 조금 적어두려고 해.


우선 그가 말한 소위 586 세대의 용퇴론

사실 이건 그동안의 현실정치에 지쳐가는 많은 부류들이 나름 공감하는 부분이 있기는 한 것 같아.

무언가 새로운 힘, 작금의 구태의연하고 매너리즘적인 정치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내고 싶어 하는 열망을 가졌던 많은 사람들.. 나 역시도 마음 한 구석에 그런 바람을 가지고 있기도 해.


하지만 바람과는 관계없이 현실적으로 이 어젠다의 실현은 어려워 보여.

우선 박지현 본인의 근간, 즉 자신의 존재적 가치가 부정된다고 볼 수 있어.

자신을 정치적 입문과 발탁에 있어 이재명 의원의 선택이 주요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그런 자신을 선택한 사람이 용퇴론에 포함되는 계층이지.

즉 용퇴론이 성립되려면 과거의 정치가 옳지 못했다는 근간이 세워져야 하는데.. 자신이 현재 정치판에 서 있는 존재적 근간이 거기에 발을 딛고 있어 보이거든, 즉 박지현이 어떤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안목이 용퇴론 층에서부터 감지하고 발탁해낸 것인데..

스스로가 말한 586 용퇴론이 성립돼버리면, 스스로 발탁된 정당성을 부정하는 꼴이 되지 않을까?

과거 세대의 정치적 판단이 옳지 못하여 용퇴를 해야 한다면, 자신을 발탁한 과거 세대의 안목이 틀렸다는 논리도 동시에 성립이 되니까.


그리고 나이를 구분하여 층을 나누는 것. 이것은 사실 위험해

우리가 어떤 층위를 구분하고 양분하는 것, 성별을 구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겠지.

성별의 구분에 의한 불공정에서부터 발생되는 문제처럼, 나이를 구분하는 것도 마찬가지의 폭력성이 발생할 것이고, 더구나 나이는 성별보다 모호해서 586 이전 세대와 이후 세대를 나눌 때, 바로 직전의 12월 생일 경우에는? 불과 한 달? 아니면 단지 몇 달 차이로 어떤 층위가 구분되는 것도 정상적이지 않아 보이고. 그 지점에서부터 폭력성이 특별하게 가시화되어 퍼져나가는 지점이겠지.


게다가 하나의 폭력적 방식이 성립될 때는, 다른 폭력성도 명분과 정당성을 얻게 되는 것을 우리는 수많은 역사에서 확인했었지. 그러니까 일종의 대가인 셈이지

프랑스혁명 이후 '로베스 피에르' 비롯한 인물들의 주도로 공포정치가 행해진 역사적 사실은 그저 우연이 아닌 어떤 폭력적 방식을 사용한 대가라고 할 수 있는 것처럼..

전한과 후한 사이에 존재했던 신나라의 '왕망' 역시 농민들에게 득이 되는 토지개혁을 하며 급진적인 정책을 펴려 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농민을 더 힘들게 하며 독이 되는 것처럼...


젊은 세대의 활력, 신선함, 명쾌한 결단력 등 현실정치에 지친 이들이 목말라하는 갈증은 맞지만, 그 새로운 바람이라는 이유로 한 세대가 강제로 떠밀려감으로써 파생되는 현실적 문제는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돼. 하나의 나라에는 한 세대만 살아가지 않으니까..


그리고 당 대표 출마자격에 대해서도 박지현 그 자신은 스스로 생각하는 어떤 예외적 이유가 있다고 하지만, 적어도 많은 사람들 눈에는 그것이 정당해 보이지 않다는 것이 문제겠지.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처럼, 본인 스스로는 정당할 것 같아도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말해주는 것은.. 그 자리에 어떻게든 오른다 해도 그다음이 문제가 되거든.


그리고 회사로 치면, 신입 사원이 사장을 하겠다는 그러한 상황이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납득되지 않을 부분이기도 하고..

게다가 그가 출마 선언을 하겠다는 그 정당이 대한민국의 제 1정당이라면?

이다지도 누구나 쉽게 생각될 수 없는 자리임이 분명하니 아무리 나이에 관한 선입견을 가지지 않으려 해도 사람들이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게 되는 것을 부정할 수 없어 보여.

무엇인가 바꿔보겠다는 그 마음, 그 패기는 물론 알겠지만...


간신이 충신을 쉽게 이길 수 있는 이유는 충신은 많은 사람들과 전체를 보며 일하지만, 간신은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일하니 여간해서는 충신이 간신을 이길 수가 없는 것처럼 충신처럼 제대로 된 길을 걷는다는 것은 쉽지 않지.


진보는 항상 권력을 어렵게 얻고, 보수는 항상 쉽게 권력을 차지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일 거야.

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그럼에도 반드시 어려운 길을 찾아서 가야만 하는 것들이 있어.

우리나라의 진보도, 보수가 했던 것처럼 언론플레이하고, 온갖 권모술수로써 권력을 잡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가면 안 되는 이유는 자신들의 근간이 흔들리기 때문이겠지.


예컨대 우리가 얼마 전 '신지예' 씨의 사태를 접하며 느낄 수 있는 것이 어려운 길을 걸어야만 하는 것들, 어떤 성취를 위해 과정이 올바르지 못하면, 모든 근간부터 무너지는 사태를 목도했듯이..

페미니즘도 그중 하나겠지. 당장은 어렵더라도 길고, 천천히 올바르게 가야만 그 성과를 이루었을 때 본래의 목적에 맞는 의미가 생기는...


작금의 당 대표 관련 문제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여. 당장 많은 것을 고치고 바꿔나가고 싶겠지만, 스스로는 이유가 정당하더라도 타자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어떤 예외적이고 특혜적인 느낌을 가진 상태를 지우지 못하고 그 자리에 오르더라도 결과가 좋을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를 응원해

적어도 이번 출마 선언을 보며 그가 보여준 투지, 적어도 그 투지는 상명하복의 DNA를 가진 한국의 남성에게는 쉽게 찾아지지 않는 진귀한 성품이지 않을까?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쉽게 굴하지 않고, 그렇게 펼쳐나가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가질 수 없는 모습이지.

현재의 정치적 방향성을 떠나서 우리가 젊은이라는 존재에게 바라는 모습도 그런 것이지 않을까? 쉽게 포기하지 않고, 사회의 중압감에 굴하지 않는 그런 모습.


분명 아직 그는 정치 새내기이고 다듬어지지 않아서 어디로 튈지 예상할 수 없는.. 어른으로서는 그런 불확정성이 그에게 불안한 감정을 가지는 이유가 되겠지만, 적어도 그가 과거에 보여주었던 n번방 사건을 대하는 자세로부터 그를 길어 올릴 수 있었듯이,..

당장은 정치적 나이로는 많이 젊고, 부족한 경험에서 비롯된 미숙한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겠지만, 주변의 도움을 받아 다듬어진다면 사회에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는 젊은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분명히 아직 그가 보여준 모습은 미숙해 보이는 게 많지만, 그렇다고 그의 가진 의도 자체가 나쁘다고 판단할 시점이 맞을까? 그러니까... 그가 아직 미숙한 건지, 아니면 나쁜 건지 판단의 기로까지 도달되어 있으며, 게다가 나쁜 게 맞는 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해.

그가 지금까지 행했던 행동은 분명 내가 생각한 것과는 상당히 다르지만, 그렇다고 그가 불순한 의도를 가졌다고 판단되는 시점은 아니라고 생각해.

당장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고 하여, 내 의도와는 다른 방식으로 행동한다고 하여 26살 이제 갓 사회에 나와 무엇인가 호기롭게 해 보겠다는 청년을 정제되지 않는 말들을 사용하여 인터넷에 온갖 욕설과 비방을 퍼붓는 것은 어른으로서 바람직하지 않고, 또한 청년들에게 성장할 기회를 자체를 박탈하는 꼴이 되거나, 그리고 그 이상으로 사회 전체에 나쁜 영향을 주는 쪽은 오히려 이쪽이 아닐까?


어른이라는 거 참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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