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일하거나, 걷거나, 운전하거나, 아무 때나 쓰인 메모들의 파편
생각이 기억으로부터 소멸되기 전에 메모한 글들이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널려있다.
휴대폰 속 여러 개의 메모 어플마다, 오래전 싸질렀던 sns에, pc의 바탕화면에 두서없이 흩어놓은 메모장 파일들이...
그렇게 파편화 되어버린 글들은 어쩌다 한번 손에 걸려 읽노라면, 저 혼자서 느끼는 유치함과 부끄러움 유의 기분들이 어쩐지 콧구멍에서부터 피어오른다.(는 느낌이다.)
이런 생각들은 보통 일하거나, 걷거나, 운전하거나, 쉬는 와중에도 떠오르면 바로 메모해 두는데, 그렇게 쌓인 글조각들을 무질서하게 방치하자니 의미가 사라지는 것 같아 잡히는 대로 이곳에 하나씩 옮겨본다.
22년 4월 24일
- 계시적 로또
로또는 종종 일주일에 한 번씩 오천원 정도 도전하는데(나 오천원 / 아내 오천원, 총 만원) 항상 자동으로 하지 않고 이 두 손을 이용하여 직접 숫자를 고른다.
로또는 곧 '속도전'이라는 인식을 근원도 모른 채, 내 안으로부터 어떤 계시처럼 느끼고 있지만(뭔가 과거 그리스 시대의' 다이몬' 같은 것이랄까?) 나는 내 안으로부터 떨리듯 번져오는 이 계시를 믿는다.
-실현적 로또
일단 로또 omr카드(이 명칭이 맞나?)를 테이블에 올려두고 싸인펜을 오른손에 거머쥔다.
생각은 필요 없다. 오직 지면을 딛고 서 있는 나의 이 두 다리와 다소 유연한 척추, 오른쪽 겹갑골로부터 흘러나오는 전기적 신호로부터 전달되는 미세한 근육의 떨림을 그러모아 펜 끝에서 장렬하게 그리고 모조리 남김없이 발산하며, 동시에 가능한 빠르게 여섯 개의 숫자를 긋는다.
간혹 손이 눈보다도 빠르다 보면 일곱 번 체크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다소 주의해야 할 것이다.
-슈퍼에고적 로또, 35, 패배요인
요번에 알게 된 건데, 속도감을 지닌 채 숫자를 고르다 보니 일정한 패턴이 발생되더라.
어째서 나는 항상 35번을 체크하는가! 이 35에 담긴 슈퍼에고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런 식으로 매 회차마다 무작위로 고른 숫자임에도 저번 주와 비슷해지는 경향성을 발견하였는데, 이것은 빠른 속도감 속에 얻어진 내적 자아의 발현물일까?
그냥.. 그렇다고.
22년 4월 17일
인터넷의 발달은 대중의 다양성을 탄생시켰다고 보는 것이 맞을까?
원래 다양했던 인류가 하나의 아고라에 밀집되다 보니 일시적으로 다양성을 가진 것처럼 착시를 일으킨 게 아닐까?
통신의 발달로 인하여 인간은 문화적 동시성 얻었지만, 이는 어쩌면 개별의 차이가 제거되거나, 의미가 병합되어 서로 간의 구별점이 퇴화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매일 보는 sns에서 내가 본 게시물은 다른 사람들도 보게 되고, 하나의 유행이 발생하면 곧이어 인물과 배경만 바뀐 채로 집단 재현되고 모방된다.
그렇게 다양성은 감속되고, 그 흐름의 끝은 어쩌면 '의미 상실점'이 아닐까?
그냥 괜히 든 생각.
22년 5월 15일
열등감은 타인이 더 갖추었음을 인식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가지지 못했음을 인식하는 것일까.
세상을 조금만 돌아보면, 언제나 나보다 더 갖추거나 나은 자는 산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모두에게 열등의식을 갖지 않는다.
대체로 우리는 근방의 아는 사람에게 열등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하나의 존재를 알아가는 것은 또 하나 새로운 열등감의 탄생이 될 수 있으며,
혹자는 그러한 열등감으로부터 자신의 동력을 얻기도 한다.
나의 안정된 이성적 기반은 타인보다 상위에 있다고 느낄 때 더욱 견고해지며, 그런 점에서 나는 타인으로부터 규정되고, 타인에 의해 안정하다.
15년 7월 23일
"얻어먹는 커피는 셔틀을 해주는 거다"라는 신념으로 커피셔틀을 나섰다.
사야 할 커피는 3잔
나 - 아메리카노
물주 - 아메리카노
실장(못난 놈) - 라떼 (역시 조금 더 비싼 거만 처먹는다.)
주문하니 사장언니가 아메리카노 2잔을 먼저 만들어 주신다.
아메리카노 2잔이 먼저 완성되고,
사장언니가 라떼를 만들려고 준비할 때..
추가 주문을 넣었다.
"라떼는 맛없게 만들어 주세요~"
그렇게 만들어진 라떼를 그의 책상 위에 친절히 올려두었다.
- 21년 7월 23일에 다시 위의 기록을 본 후...
그 누군가 '무드셀라 증후군'이라고들 했던가?
막상 저 시절엔 저 '실장(feat. 실장 마누라)'이 참으로 꼴 보기 싫었건만.
이젠 아련하네? 오오~ 기억 불완전성이여, 추억의 보정력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