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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쫓는 육신의 모방성 [잡생각]

[가끔은 손가락도 많은 것을 말해주기도 하지]

by 춘고

손가락을 다쳤다.

상처가 가볍다고는 할 수 없어서 몇 바늘 꿰맸는데, 덕분에 국소 마취도 했다.

‘마취’라는 기술은 직접 경험하진 않더라도 살면서 주변인이나 각종 매체들로부터 흔하게 접한다.

하지만 이번 부상을 계기로 직접 마취를 경험을 해보니, 이거.. 상당히 기묘한 느낌을 준다.


상처를 봉합하기 전, 의사가 마취 주사는 꽤 아플 거라고 경고했다.

그가 미리 말했두긴 했지만, 정말로 모순적이게도 마취 주사는 상당히 아팠다. (마취 주사인데 아프다니..)

불현듯 마취 주사가 효과를 발휘하는 역학이라는 건, 아마도 나중의 고통까지 선제적으로 끌어다 쓴 후, 얼마 간의 시간 동안 고통의 공위적 상태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취의 느낌은 일종의 잠식 같았다. 바늘이 들어간 발원지로부터 연기가 피어오르듯, 고통이 스르륵 퍼져나가며 잠식하는 느낌이 꽤 분명하게 들었고, 그 경계의 안과 밖의 상태적 구별성은 선명했다.


치료를 마치고 몇시간이나 지났음에도, 여전히 마취를 했던 손가락에 감각은 돌아오지 않았다.

무엇인가 잘못된 건가 싶기도 했지만, 인터넷에서 사례를 찾아보니 사람에 따라서는 마취가 오래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


둔탁한 손가락을 툭툭 건드려 보면서 느끼는 기분은 묘했다. 이것은 분명 내 손가락 임은 틀림없고, 불과 몇 시간 전 다쳐서 피를 흘릴 때만 해도 이 녀석은 나와 연결된 일부라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해내듯 분주히 통각을 생산하며 신호를 보내왔는데, 이제는 마치 자신을 모두 소모해 버린 나머지 스위치조차 꺼져버린 듯 나로부터 감각적으로 유리되어 있다.


이다지도 놓여 나 버린 듯한 손가락을 경험하며 또다시 이런 생각을 한다.

“이 육신 속에 내가 들어있는 느낌…”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나’라는 의식을 가진 실체적 존재는 육체와 별도로 구분되어 있고, 그 실체는 물성을 지닌 이 육체 안에 담겨있는 듯한 형국.

정말로 그런 거라면 이 육신은 온전한 내가 맞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것


분명 사람들은 상대를 바라보면서, 시신경에 인입되는 저 형상이 완전한 ‘저 녀석’일 거라고 확정할 것이다.

하지만 단지 타인에게 보이는 육신만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엔 매우 허술하고 허무한 듯한 예감이 든다.


가령 나의 신체를 분절하여 하나씩 늘어놓았을 때, 한 부위만 가리켜 ‘나’라고 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만약 이 손가락이 완전히 잘려 봉합 불가의 상황이 되어 땅에 묻게 되었을 때, 그리고 얼마 후 손가락은 분해되어 더 이상 흙과 구분성이 모호해질 때, 그럼에도 손가락이 여전히 ‘나/나의 일부’라고 규정할 수 있는가?

또한 손가락을 잃어버린 나는, 앞으로 나의 존재성을 95%만 가지고 살아가는 걸까?

두 팔과 두 다리.. 그렇게 점점 하나씩 잃다가 나중에는 50% 미만의 신체만 남게 된다면, 지분 상으로 그때부터는 나는 온전히 나라고 할 수 있는 자격이 유지되는가?


방식을 바꿔서, 머리와 몸이 따로 분리되었을 때, 사람들은 ‘심장을 지닌 몸’을 나로 규정할까? 아니면, ‘뇌를 가진 머리’를 나로 규정할까? (개인적으로는 왠지 머리 쪽이 나를 더 증명할 것 같기도 하지만..)

머리가 더 중요하다면, 머리가 나일까? 그다음은 머리에서 뇌를 제거해 버리면…?


하지만 세상은 이러한 단순 계산만으로 나를 규정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이 신체 어딘가를 제거해도, 외부 세상과 나의 내면 모두에서 나의 존재성은 손상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의식을 가질 수 있는 신체부위가 여전히 남아 있는가’의 여부는 존재성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중요도를 가진 것 같기도 하다.


결국 내가 이러한 생각들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단편적 진리는 고작, 이 육신이라는 물체는 분명 완벽한 ‘나’라고 첨예하게 규정짓기에는 무리가 있는, 일종의 ‘나’라는 존재성을 한없이 쫓는 ‘나의 모방물’이 아닐까..라는 것?


하여, 손가락 마취를 계기로 다시 한번 의식과 신체의 구분성을 상기했을 때, 수많은 인류가 믿는 ‘사후세계’라는 개념도 그다지 믿지 못할 만한 것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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