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형보다는 메타인지가 필요한 때
글을 꽤 오래 못썻다.
최근에 뜻하지 않게 인연을 두 명이나 잃었기 때문이다.
한 명은 2년 정도 된 사이.
한 명은 2주 정도 된 사이.
사람이 살다보면 인연은 파도같은 것이라 들어왔다 나가는 것이라지만 나는 이 두 명이 준 상실이 유난히 가슴아팠다. 이 두 사람의 특징은 내가 바라던 대화가 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대화의 원리에 대해서 결론지었는데, 대화는 상대에게 자기의 의견을 밝히면서 서로 그것을 존중할 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한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자기와 다른 의견에 대해서 그것을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그 때부터 그 대화는 피곤해지며 마무리를 짓는데 많은 에너지를 써야하는 갈등으로 발전해버린다.
그래서 나는 대화의 원리를 아는 사람에게 큰 호감을 느끼고 이상형에서도 그게 가장 첫 번째로 리스트업되어 있다.
이 두 명과 나는 의견은 틀리더라도 상대를 어느 정도 존중할 줄 아는 대화가 가능했다. 친해질수록 대화의 주제가 민감해지기도 했지만 서로를 지나치게 할퀴는 일 없이 솔직하면서 단호하게, 하지만 사려깊은 토론을 주고 받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두 사람과 사이가 틀어지게 된 것은 뒷통수였다. 각자 다른 이유로 내 뒷통수를 시원하게 때리고 내 인생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그들의 대화스타일로 미루어봤을 때 솔직하고 거짓말하는 것에 굳이 에너지 쏟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들은 나를 기만했다.
상처를 심하게 받아 그 좋아하던 빵이나 단 것도 별로 먹지않고 잠도 잘 자지 못하며 나는 고립감과 생각에 침수되어 가는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 문득 그들의 공통점을 찾아냈다.
'어쩌다 이런 얘기까지 하고 있지?'
'너랑 있으면 별 소리 다하고 있네.'
나는 어떤 주제나 사람에게 관심이 있냐 없냐에 따라 대화의 질이 달라진다.
내가 관심이 조금이라도 가는 사람이 하는 말에 대해서는 나는 정확도가 높은 대답을 하기 위해 우선 핵심 키워드 위주로 경청한다. 그리고 반대로 그 사람도 충분히 내가 하는 말에 대해 생각하고 답변할 수 있도록 쉬운 예시를 섞어서 내 의견을 전달하는 편이다. 말을 조리있게 한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는 것에 거침 없는 편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겠다. 지인들의 말로는 이 때 내 눈이 엄청 반짝거린다고ㅋㅋ
그리고 대화가 잘 흘러갈 수 있도록 키워드 위주의 가지치기를 열심히 하는 편이다. 이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주제의 이야기가 나오게 되고, 처음 발화자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대화가 튀기도 한다. 나는 이런 대화의 방향성이나 의견의 다양성이 너무나 흥미롭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노잼이거나 너무 진지한 이야기더라도 굉장히 집중해서 듣는 편이다.
(물론 상대할 가치가 없는 무지성 논리는 가차없이 무시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였다.
그들을 나에게 재미있는 대화상대로 만든 것은.
내가 재미있게 들어주고, 흥미로운 답변을 유도하고, 내 얘기를 먼저 건네주니 자연스럽게 그런 대화가 되었던 것 뿐이었다.
내가 바래서 찾아냈다고 생각한 그들은 사실 나라는 리트머스 시험지에 의해 색이 재미있게 변한 물이었을 뿐이었다. 어디서 떠온 건지도 모를 그 물이 똥물인지 빗물인지 알수도 없는데 단순히 산성이냐 염기성이냐로 나누려고 했던 것이다.
그 두 사람이 나를 기만했다기보다(잘못을 한 것에는 틀림이 없지만) 원래 똥물이었는데 염기성 띤다고 색깔 예쁘다고 좋아했던 것 뿐이었...
자존감이 부족해 자기객관화를 하지못하고, 남에게 비친 나의 모습을 이상형으로 삼았던 것이다.
맙소사!
내가 바라던 이상향의 모습을 내가 가지고 있었구나.
나는 이 깨달음 이후로 빠른 속도로 일상을 회복해가고 있다.
메타인지(Metacognition)는 자기 성찰 능력이라는 뜻으로 내가 얼만큼 알고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으로 사고를 넓혀 문제 해결 계획을 세우는 방법 중의 일환이다.
나에게 벌어지는 일에 대하여 상처와 반성의 값어치가 있으려면 스스로에 대한 메타인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이번 일로 하여금 깨달았다.
나의 지인 중 한 명은 다이어그램으로 치면 넌 새로운 것을 수용하는, 남과의 교집합을 찾는 것에 대한 영역이 무척 넓은 편이라고 하더라. 그러다보니 남도 그럴거라고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것은 칭찬이자 나의 단점을 정확하게 짚어낸 말이었다. 내가 대화하는 스타일처럼 나는 좋게 말하면 솔직하고 포용력있는 사람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내가 진심이면 남도 진심으로 다가와줄 것이라고 믿는 나이브한 정신상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내 이런 성격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야 있었지만 상황 대입을 해볼 생각은 못하고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길까 무작정 상처만 받았던 수많은 세월이 있었다.
나나 상대의 잘못됨 보다는 모든 것은 작용과 반작용이니 새로운 것을 만나서 내 진심을 보이기 전에 충분한 검증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적어도 어디서 떠온 물인지)을 새기게 되었다.
내가 수준 높은 대화 상대인 덕분에 많은 사람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으며 그 사람 중 일부는 똥물일 수 있다는 것도.
단순한 자기비하나 남탓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결과였다.
어떤 사람과 내가 잘맞는다(이상형)고 생각하기보다 나를 알아야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왔을 때 그 사람에게 비치는 나의 모습(교집합)이 아닌 그 사람 자체를 볼 수 있는 것이라는 걸 알게된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나의 나이브함이나 상처를 단박에 버려내진 못해도, 조금씩 비워내고 자기객관화를 통해 나를 알아가는 일에 초점을 맞춰가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는 명상이나 운동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여러분에게도 나와 같은 상처가 있다면 거기서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 무엇인지 잠시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