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비워야 채워진다

버리면서 알게 되는 것

by 채늘



나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날이면 집으로 와 부리나케 버릴 것을 찾아 헤맨다.

원체도 분리수거도 쌓아놓는 법이 없어 이사를 하면서 큰 마음먹고 샀던 비싸고 거대한 분리수거통은 그저 가구 중의 하나로 전락해있다. 그런 내가 스트레스가 심해져 가슴이 쿵쾅거리는 채로 집에 돌아오는 날이면 우리 집의 모든 물건들은 긴장 상태에 놓인다.

우선적으로 '쓰레기'를 정리하고 큰 봉투를 꺼내어 평소에 쓰지 않고 가지고만 있던 것들 중에 버릴 것,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분류해서 거칠게 담는다. 내가 원치 않는데도 내 가슴에 남아 응어리진 것들을 대하듯이 아주 거칠게.


멋 부리는 것을 좋아해 벽 한 면이 꼬박 옷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그것을 솎아내는 것도 버리는 재미 중 하나가 된다. 얼마 전에 엄마가 사은품으로 받았다며 챙겨준 새 머플러도 내 취향이 아니기 때문에 거침없이 봉투에 담는다. 의류수거함으로 가 누군가에게 사용될 것이라고 위안하며 새 물건을 버리는 것에 대한 죄책감은 머릿속에서 지워낸다. 2년 정도 입지 않은 니트 중에 디자인은 귀엽지만 보풀이 일어난 것이 눈에 띈다면 미련 없이 버리며 앞으로 저렴한 옷은 사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한다.


분갈이를 하며 소중하게 키웠지만 한국의 거친 계절 변화를 버티지 못하고 결국 뿌리가 죽어버린 화분도 아파트 화단 구석에 버리며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은 말을 조금 건네고 뒤돌아선다. 생명을 키우는 것에 대한 무거움을 화분의 무게 변화를 통해 느끼며 다짐한다. 지금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아이들은 더 신경 써줘야지. 돌보는 능력이 더 좋아질 때까지는 새로운 화분은 들이지 말아야지.


내가 샀던, 내 것으로 품었던 것들을 버리고 나면 이런 류의 깨달음을 얻곤 한다. 내가 하면 안 되는 것들,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나에게 필요하지 않았는데 사버려서 나의 '짐'이 되었던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빠져나가고 남는 공간, 여백이 얼마나 나에게 필요했는지 그제야 여실히 깨닫는다.


화장품 가게나 친구에게 받았던 화장품 샘플지들도 언제 받았는지 가물하다 싶으면 가차 없이 버려 버린다. 식염수 팩을 하고 난 화장솜도 그냥 버리는 게 좀처럼 아까워서 뭐라도 닦아내고 버리는 내가 이럴 때면 앨리스의 하트 여왕이 따로 없다.

"Off the head!"


그렇게 미친 듯이 집 안을 솎아내고 나서 만들어진 공간을 보고 나면 마음이 그렇게 편해진다. 그 여백이 나를 어루만지고 이제 괜찮다고, 비웠으니 가벼워졌을 것이라며 혹은 곧 다시 채워질 것이라며 위로하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낀다.


감정의 소용돌이가 완전히 해소되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뭔가를 버려내는, 끊어내는 행위는 확실히 도움이 된다는 것을 얼마 전에 친구의 위로를 받으면서 확신하게 되었다. 그 친구는 작년 이맘때쯤 중경도의 우울증을 겪으면서 약까지 먹었다가 자력으로 어느 정도 안정기를 찾았다. 다정한 성격 탓에 본인이 힘든데도 내가 겪고 있는 아픔을 들어주고 만져주는 그런 사람이다. 최근 나의 감정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다가 그 기저에 깔린 우울을 눈치챈 친구가 넌지시 물었다.

"혹시 쓰레기나 버려야 할 것들을 쌓아놓고 있지는 않지?"

본인이 한참 우울감에 빠져 있을 때 그랬다는 말을 더하며 너는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우울에 잠식되면 나의 의사와 반하는 행동을 하며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통해 감정과 행동을 일치시킴으로써 더더욱 우울로 빠져든다는 것이다. 내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안심하라고 나의 오래된 버릇을 알렸더니 친구는 한결 안심한 듯한 목소리로 모두 지나갈 것이라고 오래된 진리가 담긴 위로를 전했다.


뻔하지만 참으로 맞는 말이다, 이 습관 때문 에라도 나의 집 풍경은 매번 같지 않다. 계속해서 변하며 나의 감정을 혹은 나의 계절을 따라간다. 한 계절이 끝나면 곧 다른 계절이 찾아와 해처럼 나를 감싸 안겠지.

비워내면서 깨달은 것이다, 비워야 지나간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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