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좋은 콩이로소이다
우리 외할머니가 나를 보며 습관처럼 하는 말이 있다.
새끼는 부모를 창세기(창자)까지 닮는다더니.
부모는 일반적으로 자식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를 꺼려 한다. 이것은 생물학적으로도 당연한 일이며 나의 부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 부모님이 일선에서, 그리고 우리를 부양하는데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 것은 내가 자취를 한지 꼬박 8년이 흐른 시점이었다. 그 전까지는 그들을 여유롭게 바라보고 있을 시간을 갖기 힘들었다.
아이들은 혼자 큰 줄 안다더니 정말 나는 혼자 존재하게된 사람처럼 내 습관이나 생각의 발원이 어딘지 궁금해하지 않았다가 최근에야 하나 둘씩 깨닫게 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찾아낸 내 습관의 발원지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다른 말로 하면 ‘습관인 줄 알았는데 유전’이었던 것!
(꽤 재미있다)
가. 나는 눈 앞에 짝다리를 짚고 서 있는 친구를 보면 좀처럼 지나치지 못하고 뒤로 가 바로 서있는 다리에 내 다리를 찔러넣어 친구를 놀래킨다. 애정이 깊을수록 이런 식의 장난을 꼭 빼먹지 않는다.
=아빠 (본인 장례식에는 활짝 웃는 사진과 함께 신나는 노래를 틀어달라는 부탁을 종종 할만큼 우리 아빠는 재미있는 인생을 지향한다. 그런 아빠가 장난치기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단연 나.)
나. 나는 무엇인가에 꽂히면 그게 질려서 쳐다도 보기 싫어질때까지 맛보고 뜯고 즐긴다. 보통 한 달 정도 주기로 새로운 것이 등장했다가 퇴장한다. 서울로 출퇴근 하던 시절 회사 앞 편의점에서 아침으로 급하게 사 먹었던 메론크림빵이 어찌나 맛있는지 한 달 내내 아침이나 간식으로 먹었더니 내가 물리는 건 둘째치고 친구들이 질색을 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이유같지 않은 이유-레옹’을 반복해서 내내 듣고 있는 중이다.
=엄마 ( 호주에 가기 전에 잠시 본가로 들어갔더니 외할머니가 엄마가 해달라고 했다며 세 달 내내 기름기없는 수육에 가지반찬을 내오시는 것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엄마는 그걸 끼니때마다 한그릇씩을 꼬박 다 먹었다.)
다. 누군가 말을 하지 않으면 먼저 말을 건다. 어색한 침묵은 좀처럼 참을 수 없다.
= 아빠 (엄마는 침묵을 세상에서 가장 잘 이용하는 사람 중 하나인 반면 아빠는 누가 봐도 호인이지만 가끔 하지 않아도 될 말실수를 종종 한다. 나쁜 의도가 아니라는건 가족이나 친지만 알 뿐.. )
라. 여행지 옷차림은 예쁨보다는 실용성이 우선이다. 예쁜 것을 신경쓰다보면 여행에서 즐겨야할 것들을 놓칠 수 있기 때문에. 덕분에 처음 가보는 여행지에서 로컬주민으로 오해받아 지리나 맛집 질문을 종종 받곤 한다.
=엄마 (그녀는 4박 5일 유럽 출장 겸 여행 가방으로 고작 기내용 캐리어 하나를 선택하는 사람이다.)
피는 못 속인다.
씨도둑질은 못한다.
우리 조상님들은 이런 속담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재미있는 사건사고를 겪었을까 생각해보면 절로 한숨어린 웃음이 터진다.
내가 그랬듯이 내 부모님의 저런 습관도 그들의 부모로부터, 그들은 또 그들의 부모로부터 뻗어져 나왔을 것이다.
누군가는 부모와 닮았다는 말이 혹은 하는 행동이 비슷하는 말이 썩 유쾌하지 않을 수 있다.
누구에게나 가정사가 있는 법이고 나 또한 내가 결핍을 느끼고 있는 것에 대해 부모님을 원망을 할 때가 많았다.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며 어린 아이들에게 부모의 부재가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는지 알게 되면서 그런 감정이 점점 거세지곤 했다. 최근에 그것이 살짝 누그러지게 된 것은 단순히 세월 탓이 아니다.
내 부모에게서 그들의 부모가 보였던 것이 그 이유다.
사춘기 시절 나를 외롭게 했던 내 엄마는 중학생때 집을 떠나 공장일(엄마는 이 일을 계기로 천식을 갖게 되었다고)을 하며 사춘기를 보냈다. 외할머니는 그것에 대해 그 당시의 생계란 그런 것이었다고 답변했다. 사업을 해서 팔자를 고쳐보려 했지만 좀처럼 운이 따라주질 않았던지 여러 번 실패를 겪은 우리 아빠의 어머니인 할머니는 큰아버지가 월남전쟁에서 불편한 다리와 함께 돌아와 열심히 일해 겨우 모은 돈 천만원(서울에 집 한 채 샀을 돈이었다고)을 결혼 전에 드리고 갔더니 그걸로 사업을 하시다 결국 다 잃으셨다고 한다. 사업하실 만한 분이 아니었다는게 가족들의 중론…
부모의 아둔함까지 닮아버리는 이 무서운 유전을 피해가지 못한 내 부모가 나와 비슷한 나이에 얼마나 많이 고뇌하고 상처를 받았을지에 생각이 미치니 그들에게 애증과 연민이 느껴졌다. 나이가 들어가는 나의 부모도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나를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겪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애증이 그냥 애정보다 더 무섭다)’
이런 생각 끝에서 한 편으로는 내 스스로가 좀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진화와 관련하여 가장 우세한 이야기 혹은 당연한 진리처럼 여겨지는 것은 ‘우성인자가 우선적으로 유전된다.’는 것이다. 내 부모님의 유전자는 가지고 있는 것 중에 최선을 골라내어 나를 만들었다. 개천에서 용나는 것은 아니더라도 콩을 심어놓은 밭에서 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콩으로.
경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인간이라면 모두 이 같은 필연을 거친다.
모르지, 과학기술이 더 발전된다면 영화 <가타카>처럼 열성유전자는 배제시켜버리는 일이 가능해질지도. 그럼 지금과 같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 혹은 사랑이 가능해질까 하는 의문이 좀 들지만.
나는 왜 이럴까.
나는 왜 살아갈까.
나는 왜 이렇게 실수를 반복할까.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자기의문은 이 것을 뒷받침할만 근거와 힘이 없는 경우 자괴감으로 연결되곤 한다. 내가 어린 날 자존감을 깎아 먹었던 과정이다.
왜 나를 낳았어? 원치도 않았는데!
내가 어린 날 말은 못하고 마음 속으로 가장 많이 삭혔던 원망이다.
내 부모는 나처럼 필연의 굴레에 갖힌 콩이었다는 것을 알고나니 원망을 들어낸 자리에 공간이 생긴다. 그 빈 곳으로 바람이 불어온다. 들판 위의 꽃처럼 기분 좋게 흔들리며 하루하루를 잘 살아가야지, 나는 가장 좋은 콩이니까. 내가 하는 모든 선택은 가장 좋은 콩으로써 내리는 것이니까. 난 짱이야!
등산이나 여행을 가서 갈림길을 마주 하면 나는 보통 일말의 망설임 후에 가보지 않은, 흥미로운 길을 선택한다. 어쩌면 이 또한 나의 먼 선조에게서 물려 받은 것이리라 생각하니 머릿 속에 태초의 모습을 한 인간 하나가 수풀 앞에서 고민하다 입꼬리를 올리며 닦이지 않은 길로 나아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여담으로 우리 엄마는 본인의 작은 키에 대해 아직까지도 외할머니에게 불평을 하곤 한다. 엄마가 닮고 싶었던 외할아버지의 큰 키(그 옛날에 180은 되셨다고 … 우리 아빠도 172 정도인데!)는 엄마의 딸인 내가 물려받았는지 나는 엄마와 거의 머리 하나만큼 키 차이가 난다. 그렇게 우리 엄마는 본인이 가지지 못한 것까지 줌으로써 나를 최고의 콩으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