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들을 밀어내는 이유
나는 정말 매우 호기심이 많다. 떵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속이 시원하고 인간 사는 이야기에도 관심이 많다. 그러한 맥락으로 볼 때 나는 나 자신이 궁금해서 많이 생각해 보고 때로는 분석하기도 한다. 오늘은 나의 분석 글이다.
살다 보면 여러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나기도 한다. 첫째 딸은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 되는데 유치원 때 같은 반이었던 한 학년 많은 필리핀 친구의 반으로 배정이 되었다. 아이 학교는 몬테소리 프로그램이어서 1-3학년까지 섞여서 반을 이루는데 세 학년이 섞인 만큼 반도 많다. 그중에 랜덤 하게 배정이 되는 시스템이라 기대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우리 첫째 아이는 ‘절친’의 반으로 배정된 것이다. 이 소식을 듣고 아이들과 그 필리핀 가족은 환호했다. 얼마나 감사하고 감동적인 우연인가 싶지만 나의 마음 한구석에는 알 수 없는 부담과 불편함이 생겼다.
그 필리핀 가정은 우리 가정과 짧은 시간이었지만 깊게 관계를 맺고 가족처럼 서로 돕고 보듬어주며 정을 나누는 중이다. 아이를 일찍 낳은 나에게는 아이 친구의 엄마가 나와 나이 차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코드가 맞아서 만나면 수다 떨고 위로하고 하곤 했다. 그녀는 너무도 과분하게 나를 아껴주고 친구처럼 동생처럼 챙겨주고 응원하는 나의 “친구”이다.
그런 “친구”와 더 가까워졌는데 나는 왜 불편해졌을까?
나는 남편과 대화하며 이유를 찾으려 노력했다. “영어를 써야 하니 불편하다? “ 한 때는 영어만 쓰고 살아도 문제없겠다 했던 (남편왈 바나나 - 겉은 아시안, 속은 백인처럼 사는 사람에 대한 조롱) 사람이었기에 사실 그것은 큰 이유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다음 생각해 본 것은 그 친구는 나이를 넘어서서 나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고 좋아해 주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여서 그럴 수도 있다. 남편 말로는 나의 “fan” 팬이라고 할 정도로, 색깔이 강한 나를 매력적으로 생각하고 항상 먼저 연락해 주고 만나고 싶어 하고 기다려주는 성격을 가진 친구이다. 그럼 왜 나를 좋아해 주고 배려해 주는 나의 팬이자 친구를 왜 더 가까이 함이 불편한 걸까?
이쯤에서 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해보겠다.
교회에서 학부모로서 자원해서 맡게 된 어떤 활동에 대한 교육이 있어서 오늘 아침 일찍부터 점심까지 교육을 받고 왔다. 그 교육 과정 중에 트라우마를 가진 아이들을 좋은 어른으로써 돌보는 방법에 대해서 강의도 들었다. 그 강의에 따르면 6명 중 한 명은 여러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상태라고 보고 아이들을 관찰해야 한다고 했다.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는 트라우마는 우리의 예상보다 다양한 종류이고 그 트라우마로 인해 신체의 신경 시스템이 반응하게 되는 신체적 반응이라는 것이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성인도 다양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아간다. 강의를 들으며 나의 트라우마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가족 즉 부모님과 동생에 대한 다양한 트라우마가 있다. 가족과 함께 있으면 많은 경우에서 트라우마 증상이 나타나는데, ’ 마음이 괴로워서 내가 안 하던 행동과 말들을 하며 그 상황을 벗어나려 하는 나의 모습‘을 내가 관찰한다. 대부분 극단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분노하고 도망가기도 하는데 지나고 보면 내가 봐도 왜 그랬을까 하는 과한 반응들이었다. 나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면서도 감정 조절이 그렇게 힘든 편은 아니다. 남편도 내가 가족들과 함께 있으면 이상해진다고 한다. 극단적인 말로 가족들을 상처 주고 누군가를 저주하고 나 자신을 구겨진 쓰레기로 만드는 그런 모습 말이다.
특이하게도 이처럼 가족에게서 생긴 트라우마는, 아주 가끔 어떤 공통된 특징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할 때 나타난다. 그 공통된 특징은 “나에게 진심을 다해 애정을 주고 믿어주는 사람들 “이라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진심을 다해 사랑해 주고 믿어준다라는 느낌을 자라면서 느껴본 적이 없다. 여러모로 독특한 부모님 아래서 자라며 인정받지 못하고 독한 평가에만 노출되다 보니 내가 무능력하고 미숙해도 나를 믿어주고 사랑한다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나는 마음의 길을 잃게 되는 것 같다. 오히려 차갑고 냉정한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안전하다고 느껴진다.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라며 정말 감사하고 좋은 어른들이 계셨다. 나에게 교회라는 곳은 사랑과 섬김으로 본이 되는 공동체이다. 작은 사회이다 보니 그 속에서도 이상한 사람, 실망스러운 사람 등등 많지만 아이들을 섬기며 관심을 가져주고 나의 삶과 느끼는 생각들에 귀를 기울여주는 어른들이 때마다 한분씩 계셨다. 그분들 덕분에 좀 덜 방황하고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다. 내 성격이 유난스럽고 욕심이 많은 건지 모르겠지만, 가정에서의 관심과 사랑은 충분하지 않다고 느꼈고, 그런 결핍들을 채워주는 어른들에 의해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던 것 같다.
그런 좋은 분들과 함께 있을 때 나의 마음에는 어떠한 패턴이 있었다.
-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다.
- 시간이 지나며 나에게 더 관심을 줄수록 불편해진다.
- 피해 다닌다. 심지어 눈 마주침조차 견딜 수가 없다. 내가 발가벗겨지는 기분으로 공포스럽다.
- 조금 더 시간이 흐르고 나서 갑자기 안전하다고 느낀다.
- 나는 그분들을 싫어했음이 아니라 오히려 좋아해서 가까이 지내는 것이 두려웠음을 깨닫는다.
- 미안한 마음이 가득 찬다. 후회가 된다.
- 그러고 나면 이별할 때가 온다. (학년이 올라가서 더 이상 그 공동체에 속하지 않는다던지, 그분들의 사정으로 이사를 떠난다던지..)
나의 이런 트라우마 반응은 내가 봐도 환장할 노릇이다. 좋은 사람들을 너무 좋아해서 밀어낸다?!
더 가까이 다가오는 게 이렇게 공포스러울 일인가?!
그 공포에 대한 반응은 신체적 반응으로 나타났기에 내가 제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나의 필리핀 친구는 아무 잘못이 없다. 그냥 나를 좋아해 주고 아껴주는 것뿐이다. 학교도 아무 잘못이 없다. 랜덤 시스템으로 배정한 것뿐이다.
그럼 나는?..
오늘 들은 강의에 따르면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트라우마를 가진 아이에게 말해줘야 한다고 한다.
나도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좋은 사람들을 밀어내는 이 바보 같은 모습도 내 잘못이 아니라고… 나는 사실 그들과 함께 따뜻한 관계로 살고 싶은데 나도 모르게 무서운 마음이 드는 것뿐이라고..
내가 그들을 실망시킬까 두려운 마음은 그들을 멀리 밀어내려 했다. 나는 가족에게조차 내 부모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한 못 미더운 미운오리 새끼였기에, 남들이 나에 대해 더 알게 되면 내 부족함이 그들을 떠나가게 만들 것 같았다.
그 좋은 분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안전하게 느낄 때까지만 기다려주면 어느샌가 나도 진정이 되고 다시 돌아올 거라고..
관계의 악순환을 반복하며 고찰한 나의 트라우마 이야기인데, 사실 극복은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다.
트라우마 반응이라는 것은 정말 말 그대로 “공포” 반응이다. 나와 비슷하게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공포를 느끼며 자책하고 후회하는 사람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그냥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또 이겨낼 방법을 찾아보자고 격려하고 싶다.
이겨낸다면 후속으로 글을 써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