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 유권자를 지나 기후 시민 되기
110호부터 신설한 <생태위기> 코너는 인류가 마주한 가장 거대한 전환, 기후 및 생태위기에 관한 지속적인 관심과 보도를 위해 마련한 지면입니다. 이번 111호에서는 22대 총선과 국회라는 현안을 매개로 기후위기와 정치 참여에 대해 다룹니다. 김소희 국회의원,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장과의 인터뷰를 담았습니다.
매일 매일을 살다가도 인류의 미래를 습관처럼 비관한다. ‘다름 아닌 인간 때문에 인간은 결국 멸망할 거야.’ 텀블러를 챙기지 않았는데 목이 너무 마른 하루, 자기 의지로 산 테이크아웃 컵을 원망스럽게 바라보게 되는 그런 날들이 있다. 시민의 책무랍시고 다하는 일들이, 그저 감점을 피하려 아등바등 애쓰는 일에 불과한 것 같아 한숨 쉰다. 간혹 하루를 감점 없이 살아내더라도 미약한 뿌듯함보다는 절망감이 무겁다. 시민이란 때로, 위기가 닥쳤다는 세계 앞에서 그 칭호가 부끄러울 정도로 무력한 영락없는 개인처럼만 느껴진다.
오천만의 시민들이 살아가는 이곳 대한민국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1]을 달성할 것을 국가 비전으로 명시한 나라다. 2021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ㆍ녹색성장 기본법(약칭: 탄소중립기본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한국은 전 세계에서 열네 번째로 ‘2050 탄소중립’을 법제화한 국가가 되었다. 이는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 의해 제시된 목표다. 2015년 파리협정에서 협의된 바에 따라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1.5℃ 이내로 억제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2019년 대비 배출량을 43% 감축해야 하고, 2050년에는 넷-제로를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2050 탄소중립까지 놓인 길 가운데 2030년이라는 멀지 않은 중간 지점이 있다. 23년 최종 승인된 IPCC 6차 종합보고서는 앞으로의 10년이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고 못 박기도 했다.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 약속한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2018년 배출량 기준 40%다.[2]시기적으로도 규모적으로도 작은 목표가 아니다. 이제 무수한 개인들은 예정된 대전환 앞에 서 있다. 당장 6년 나아가 26년 뒤 우리 앞에 닥쳐올 미래, 변화란 정말 가능할까? 우리 삶은 변화에 참여할 준비가 되었나.
22대 기후총선, 기후 유권자와 기후 국회 남겼나
투표일은 매번 찾아온다. 뭘 가졌든 뭘 모르든 정직하게 한 사람당 한 표. 투표 기간에 투표장으로 향하는 일은 시민이 국가에 대해 할 수 있는 일들 중 꽤나 집약적인 힘을 발휘하는 일이다.
2024년 4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총선을 앞두고 떠오른 담론은 절박했다. 22대 국회 임기(2024~2028)가 기후위기 대응에 매우 결정적인 시기이므로, 이번 총선을 통한 ‘기후 국회’의 출범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표적으로 지난 2월 14일 ‘기후정치시민물결’은 ‘2024년이 한국 민주주의 사상 최초로 기후정치가 시작되는 원년이 되어야 한다’라며 ‘기후 원년 선언문’을 발표했다. 선포식에 참여한 여러 연구자와 예술인, 환경단체 활동가들은 22대 총선에서 모든 정당이 ‘기후 후보’와 ‘기후 공약’을 최우선 과제로 끌어올릴 것을 요구했다. 그뿐만 아니라 기후를 위해 12개 지역조직과35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뭉친 연대체 ‘기후비상행동’은 2월 26일 기자회견을 열어 전체 유권자의 1.5%를 기후 정치 세력으로 조직하는 ‘기후씨앗1.5%’ 사업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더 이상 정당들의 손에만 기후 의제를 맡겨둘 수 없으며, 기후 대응을 선거와 정치에서 중심 의제로 만들기 위해 이제는 직접 시민들의 힘과 목소리를 응집시킬 때라는 외침이었다.
한편 1월 22일 공개된 ‘2023 기후위기 국민인식조사’ 결과는 기후 선거에 작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민간 싱크탱크들이 모여 결성한 기후정치 중장기 프로젝트 기후정치바람[3]은 17개 광역시도에서 각 1000명씩, 총 1만 7000명의 국민을 대상으로 대규모 심층 여론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기후 의제에 대해 ▲알고, ▲민감하게 반응하며 ▲기후 의제를 중심으로 투표를 고려하는 ‘기후 유권자’라는 개념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분석 결과 전체 유권자 3명 중 1명(33.5%)이 기후 유권자로 밝혀졌고, 유권자 5명 중 3명(62.5%)이 기후 대응 공약이 마음에 든다면 “평소 정치적 견해와 달라도 투표를 진지하게 고민”하겠다고 응답했다. 기후 정책은 ‘표가 된다’라는 사실이 수치로써 확인된 사건이었으며, 이는 그 자체로 총선을 앞둔 정치인들에게 강력한 메시지였다.
이에 기후 의제라는 관점으로 바라본 22대 총선의 진행 양상은 여태까지와는 사뭇 달랐다. 거대 여야가 제시한 총선 10대 주요 공약에 기후 공약이 포함되었다. 더불어민주당은 3번째와 6번째, 국민의힘은 10번째 공약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할애했다. 녹색정의당은 정당 연합을 이루어 10대 공약 중 첫 번째 순서로 야심 찬 기후 대응을 약속했다. 정당마다 기후 전문가 출신의 인재들을 경쟁하듯 영입했고 저마다 기후 공약을 내놓았다. 이중 정당을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산업의 탄소중립 전환, ▲재생에너지 지원,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 상설화와 ▲정부 조직 재편 등의 공약이 제시되었다.
4월 10일 총선을 지나 300인의 후보들이 당선인이 되었다. 기후테크 전문매체 『그리니엄』은 총선 이후, 11인의 ‘눈여겨볼 만한 기후환경 분야 당선인’을 소개했다. 이중 더불어민주당 박지혜, 국민의힘 김소희, 조국혁신당 서왕진 등 초선 의원과 김성환, 이소영, 임이자 등 재선 의원들이 돋보인다. 조선일보 공익섹션 『더나은미래』는 “기후 유권자에 응답하는 22대 기후 당선자”라는 특집으로 원내 6개 정당의 국회의원 당선인 8인을 선정해 만나기도 했다.[4] 과연 22대 국회의 ‘기후 정치인’들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초당적 협력의 주축이 될 수 있을까.
개원 스무날 전인 5월 1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된 “기후유권자와 22대 기후국회, 연결과 확장” 심포지엄은 그 가능성을 엿보는 자리였다. 행사는 기후정치바람 및 김성환 의원, 김용태, 박지혜, 서왕진, 윤종오 당선인에 의해 주최되었으며 최재천 생명다양성재단 이사장,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소장 등 기후 전문가들이 연단에 섰다. 이날 제1소회의실에는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와 좌석을 빼곡히 채웠다. 참석자들은 기후 유권자와 기후 정책에 대한 앞으로의 과제를 논했고, 네 명의 당선인들은 기후 대응에 대한 각자의 정견을 발표했다. 정당마다 정치적 견해가 다를지라도, 기후 의제에서만큼은 보편적인 공감대를 가지고 힘을 합칠 수 있으리라고 시사하는 듯했다. 5월 30일 제22대 국회 임기가 시작되며 기후 당선인들은 국회의원이 되어 의사당을 밟았다. 이제 기후 국회는 진행형의 과제가 됐다.
물론 못다 이룬 숙제들이 있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향신문』과의 좌담[5]에서 “정당들마다 기후에 대한 이해도와 접근법에 본질적 차이가 있음에도 아무런 논쟁이 발생하지 않”았다며 22대 총선의 한계를 언급했다. 공공의 역할과 녹색시장 중 어느 편을 강조하는지, 원전을 녹색 에너지로 보는지 등 기후 정책의 쟁점에 대한 더욱 심도 있는 토론이 앞으로 필요하다. 많은 이들이 기후정치의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막상 투표가 다가오면 기성 정치의 논리로 후보를 선택하게 되는 현상도 극복되어야 할 문제다. 한편 기후 의제를 최우선 공약으로 내건 녹색정의당은 원내 진입에 실패했으며, 지역구 후보들은 탄소 감축을 저해하는 지역 개발 공약을 우후죽순 쏟아내 기후 유권자가 표를 던질 정치인이 현저히 부족했다. 개발 공약과 환경 악법 발의 등 반(反)기후적 행보에 가담했던 기후 당선인들도 있다. 기후 유권자와 기후 정치인 모두, 막 뗀 걸음에 이제는 박차를 가할 때다.
이제 당신은 무엇을 해야 할까. 이번 총선에서 당신은 기후 유권자였는가. 더 나아가 기후 시민이 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혹 손에 쥔 정보는 파편적이고 의지는 아직 그러모으질 못했나. 그렇다면 여기 『성균지』가 소개하는 두 인물이 있다. 기후위기를 ‘기회’로 바라보자며, 지금 이 순간에도 더 많은 이들을 기후위기 의제에 참여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번 22대 국회의 여당 대표 ‘기후 정치인’ 김소희 의원과, 기후정치바람을 통해 ‘기후 유권자’ 운동을 이어 나가는 녹색전환연구소 이유진 소장을 인터뷰로 만나보자.
“직접 만나서 설득해야죠. 그게 정치입니다.” 국민의힘 김소희 의원
2010년부터 15년간 비영리 재단법인 ‘기후변화센터’에서 일해온 김소희 의원. 센터의 사무총장이자 대통령 직속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국제협력분과 민간위원으로 일하던 중, 올해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의 기후 인재로 영입되어 비례대표 7번으로 당선되었다. 더불어민주당 박지혜 의원, 조국혁신당 서왕진 의원과 더불어 제22대 국회의 기후 전문가로 꼽히며, 개원 이후 환경노동위원회에 소속돼 여당의 기후 관련 굵직한 법안들을 대표발의하며 활발한 의정활동 중이다.
김소희 의원이 영국에서 유학 중이던 2008년, ‘기후변화법’[6]이 영국 의회를 통과하면서 온갖 매체의 관심이 ‘기후’에 집중됐다. 김 의원은 그때의 경험이 기후변화센터로 발걸음을 향하게 된 계기였다고 말한다. 시민 단체의 일원으로 의원실 문을 두드리던 그가, 이제는 더욱 빠른 속도로 필요한 법을 만들고 정부의 대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입법부의 일원이 됐다. 지난 8월 7일, 국회의원회관을 찾아 김소희 의원이 제시하는 ‘보수의 기후 정책’과 그가 기후 정치인으로서 가진 목표에 관해 물었다.
기후위기를 넘어 ‘기후 기회’, 감상적 접근은 피해야
‘지구를 구해요’, 이런 건 굉장히 감성적인 언어라고 봅니다. 지구는 알아서 살아남겠지만, 문제는 인류죠. ‘내가 지금 뭘 하든 어차피 지구는 멸망할 건데’ 같은 체념도 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인류는 지금까지 살아남기 위해서 꾸준히 도전해 왔어요. 기회는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거죠. 삶이 조금 어려워질지라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할 것이고, 그 과정 속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어요. 우리가 그 기회를 빨리 잡아서 선제적인 대응을 이루어내야죠.
기후위기를 ‘기후 기회’로 만들겠다는 것은 김 의원의 대표 메시지다. 그는 다만 기후 대응 과정에서 ‘국력’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기후위기에는 세계적인 역학관계와 분업구조가 얽혀 있다. “우리나라 포스코가 철강 안 만든다고 다른 나라들도 철강을 안 만들까요? 아마 더 에너지 효율이 안 좋은 철강이 만들어질 거예요.” 때문에 기후변화 이슈는 기존의 환경 문제를 다뤄왔듯 규제의 측면에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위기 속에서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으려면, ‘국격과 국익의 균형’을 맞추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선진국의 정책을 따라만 가기보다는 자국 산업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기후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김 의원은 설명했다.
김소희 의원은 총선 이전부터 전력망 확충의 필요성을 언급해 왔다. 재생에너지 발전을 늘리더라도, 그 전력을 필요한 곳에 배분하기 위한 송전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다면 소용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21대를 이어 22대 국회에서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발의되었으며 현재 통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저탄소 전환 과정에서 늘어나는 에너지 수요를 맞추기 위해서는 원자력 발전이 불가피하다는 것 역시 김 의원의 주요 입장이다. 에너지의 97%를 수입하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특정 에너지원에만 의존하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는 것이다. 전기 요금과 일자리, 탄소 감축을 한데 고려한 최적의 ‘에너지 믹스’를 만들어 나가야 하며, 나아가 원전 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하기 위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특별법’의 조속한 통과가 필요하다고도 덧붙였다.
이제는 젊은 세대들이 국가를 상대로 구체적인 요구를 해야 합니다. ‘왜 기후 대응 안 하냐’ 같은 대전제적인 메시지는 이제 무의미해요. ‘우리 산업을 위한 전력망을 확충해라’, ‘재생에너지와 저탄소 에너지로 전환해라’ 하고 실질적인 정책을 외쳐야 합니다.
김소희 의원의 기후 법안 - 해상풍력과 기후금융
김소희 의원이 발의한 1호 법안은 ‘해상풍력 계획입지 및 산업육성에 관한 특별법안’이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해상풍력발전은 과연 기대가 높은 재생에너지원이다. 그러나 현재 국내 발전단지 조성 현황은 지지부진하다. 그 까닭은 해상풍력과 관련한 다양한 규제들, 그리고 얽히고설킨 이해관계다. 발전단지 부지의 선정을 위해서는 풍황 계측 외에도 체계적인 해양 생태계 조사가 필요하며, 그 후 지자체, 근처의 어업 종사자, 군사 보호시설 등 부지에 얽혀 있는 다수 이해관계자와의 의견 조율이 필요하다. 조율이 끝나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넉넉잡아 5년이 넘는다. 해상풍력발전 사업에 뛰어든 개인 사업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다. 이에 김 의원은 개별 사업자에 의존하던 기존의 방식을 정부 주도의 안정적인 계획 입지 방식으로 전환하고자 법안을 발의했다. 발전 지구와 사업자를 직접 지정하고, 각종 인허가 및 의견 조율 과정에 정부가 참여해 개별 사업자들의 준비 과정을 한층 간소화시키고자 한 방안이다.
설득해야 할 사람이 정말 많아요. 법안 하나를 진행할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죠. 다음 주부터는 어업 종사자분들을 직접 만나서 (해상풍력 특별법에 관한) 의견을 들어야 해요. 모든 법안마다 그렇게 이해관계자가 서로 상충해요. 그 안에서 조율을 해야죠.
재생에너지원 확대와 함께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부문은 바로 산업이다. 철강, 조선, 석유화학, 자동차 그리고 반도체까지, 국내 산업을 지탱하는 5대 제조업 군의 공장들은 모두 화석연료 기반이다. 해당 산업군의 에너지원을 저탄소 기반으로 돌리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탄소중립은 불가능하다. 지금까지는 재생에너지 설비, 무탄소 수소 및 전기자동차 생산을 포함한 ‘녹색 산업’ 육성의 중요성이 주로 논의되어 왔다면, 김소희 의원이 주목한 쪽은 이른바 ‘회색 산업’ 전환의 필요성이었다.
우리나라는 제조업으로 여기까지 왔어요. 제조업에 엮여 있는 일자리가 어마어마하죠. 그 제조업 분야에서 국내 온실가스 배출의 70%를 차지해요. 우리는 지금 이 산업을 버릴 것인지 그 기로에 서 있는 거예요. 우리가 다른 선진국들처럼 관광이나 금융으로 산업 방향을 아예 돌릴 수 있다면야 감축이 훨씬 쉽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민주당 박지혜 의원이 발의했으며 ‘한국형 IRA’라고도 불리는 ‘탄소중립산업 육성 및 경쟁력 강화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은 국가 예산으로 녹색 산업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법안이다. 이와 달리 김소희 의원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금융의 촉진 등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하여, 산업계의 기후 대응에 필요한 자금을 금융기관이 투자 형태로 지원할 수 있도록 촉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특별법의 핵심이 되는 ‘기후금융’은 단순히 녹색 산업에 투자하는 것뿐 아니라, 탄소 다배출 산업의 저탄소 전환을 지원하기 위한 ‘전환금융’을 포함한다. 녹색 산업과 전환금융, 결국 정책과 정책이 서로 잘 맞물려야만 산업계가 효과적으로 변화해 나갈 수 있다.
22대 국회, 기후 국회가 될 수 있을까
21대 국회는 말만 많았지 정작 법안은 하나도 통과되지 않았어요. 이미 우리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너무 늦었어요. 정쟁을 거듭할 시간에 법안을 빨리 통과시켜야 해요. 기후 법안들이 곧 국민들을 위한 법이고 민생 법안이에요.
기후위기 대응이 중대하고 시급한 문제라는 점은 보편적인 명제로 자리 잡았다. 이제는 구체적인 법안을 통해 실행에 속도를 가할 때다. 빠르고 체계적인 입법을 위해서는 국회 내 상설 위원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이에 국회 기후특별위원회 상설화는 22대 ‘기후 국회’의 첫걸음이 될 전망이다.
기후특위가 상설화되면 다른 상임위보다 우선적으로 기후 법안을 심사할 수 있겠죠. 법을 만드는 데 있어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거예요.
‘기후특위 상설화’는 총선 시기 여야에서 공통으로 제시된 공약이다. 선거가 끝나고 22대 국회가 문을 열기 전, 거대 여야를 포함한 원내 8개 정당의 국회의원 당선인 10인이 함께 기후특위 상설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주목을 받기도 했다. 개원 이후에는 관련 국회법 개정안이 양측 모두에서 발의된 상황이다. 김소희 의원은 지난 7월 30일 기후특위 상설화 관련 조항을 포함하여 국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김 의원의 기후특위는 「탄소중립기본법」과 「배출권거래법」 관련 법률안 심사와 ‘기후대응기금’ 예산안 및 결산의 예비심사를 담당한다.
정부를 움직이게 하려면 기후특위에 법안이나 예산을 심사하는 권한이 있어야 해요. 21대의 비상설 기후특위에는 그게 없었어요. 기후위기가 전 부처에 걸려 있는 의제는 맞지만, 그 법률들을 모두 심사하겠다고 하면 상임위들이 크게 반대할 거예요. 제가 발의한 개정안은 탄소중립기본법과 기후대응기금에 관한 권한만이라도 가지고 빨리 첫걸음을 떼자는 내용이에요.
김소희 의원의 국회법 개정안에는 55인의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 공동발의로 참여했다. 국민의힘 소속 105명의 국회의원 중 과반수의 인원이다. 김 의원은 그만큼 정당과 국회 내부에서 기후위기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지역구 의원들은 수해와 폭염 등 지역에서 발생하는 재해에 심각성을 느끼고 있다며, 농수산물 피해, 석탄발전소 폐쇄 등의 지역 이슈 역시 기후 의제와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짚었다. 앞으로 기후 법안을 발의하는 데 더 많은 정치인이 동참할 수 있도록, 같은 당에서 함께하는 105인의 의원들부터 설득해 나가겠다는 것이 김소희 의원의 포부다.
기후 정치의 소명, ‘기후위기를 가운데 의제로’
‘기후 위기를 손에 와닿는 이슈로 만드는 것’, 김소희 의원이 보수계 정치인으로서 해 나가고자 하는 역할이다. 김 의원은 그동안 한쪽으로 쏠려 있었던‘기후’의 정치적 위치를 이제는 가운데로 옮겨 오고 싶다며, 그래야 더 많은 시민들이 기후 정책을 지지하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렇기에 그는 기후 정책이 결코 진보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너무 과격한 정책은 오히려 국민들의 저항을 가져와요. 국민들은 굉장히 다양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후위기가 자기 의식주와 일자리에 직결되는 문제임을 더 많은 시민들에게 알리는 것, 그리하여 더욱 많은 이들을 기후 의제에 끌어들이는 것이 그가 믿는 기후 정치의 소명이다.
이제 그는 ‘기후 물가’, ‘기후 일자리’에 관련한 의정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먼저 ‘금사과’ 이슈 등 기후 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물가 파동의 대책을 마련하고자 한다. 경북 문경에서 유명했던 사과가 오늘날에는 강원 철원에서 재배되듯, 농산물의 재배지가 변화하더라도 지역의 경제와 먹거리의 공급이 원활하게 계속되기 위해서는 종자 개발이나 유통 구조 개편 등 방안을 고안해야 한다는 것이다.[7] 기후 일자리의 경우 ‘기후 테크’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지속가능성을 위해 기존의 산업을 개편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종류의 기술과 이에 관한 일자리들이 만들어질 수 있으며, 그 일자리를 잡는 것은 다름 아닌 청년들이 될 것이라고 김 의원은 말한다.
여러분들의 일자리에 ‘기후’를 붙여서 생각하세요. 그게 지속 가능한 기후 대응 방법입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기후 의제를 꾸준히 강조하고 기성세대를 설득하는 것이야말로 젊은 세대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인터뷰에 참여하는 동안, 김소희 의원은 『성균지』 주 독자인 청년 세대의 역할을 몇 번이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기후위기 대책을 말하는 정치인이 누구인지 꼼꼼히 살피는 일. 기후위기가 앞으로 미칠 영향에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 공부하는 일. 기후와 관련한 직업을 찾아 해결 방안을 직접 모색하는 일까지, 모두 청년이 해낼 수 있는 일이라며 격려를 넘어선 요구를 전했다.
기후 정치인이 말한다. 이제는 당신이 응답할 차례라고. 당신이 기후위기와 ‘나’의 미래가 연결되어 있음을 직면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기후 정치의 꿈이며 당신의 목소리에 무게를 실어 줄 힘이다.
“기후위기를 계기로 더 나은 사회를 상상하기” 녹색전환연구소 이유진 소장
2023년 한 해, 지구는 이미 산업화 이전보다 평균 1.45℃만큼 더 뜨거웠다. 1.5℃라는 마지노선마저도 향후 5년 안에 깨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세계기상기구(WMO)의 예측이다. 날씨와 계절은 분명 전보다 더 거칠고 혹독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닥쳐올 것이다.
기후가 자연의 영역이라면, 이제는 사회로 시선을 옮길 때다. 국가와 지역, 경제, 삶 모두가 기후의 변화에 발맞춰 ‘전환’할 차례다. “‘위기’를 다른 언어로 바꿔 보고 싶어요. 기후위기 대응이 오히려 바로 지금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고 말이에요.” 녹색전환연구소 이유진 소장은 기후위기 속 ‘좋은 사회’를 위한 정책과 대안 연구에 몸담아 왔다. 시민단체 ‘녹색연합’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2021년 대통령 소속 2050탄소중립위원회 위원으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다. 에너지 전환과 그린뉴딜 연구를 바탕으로 다방면의 정책 자문을 맡아왔을 뿐 아니라 정당 활동을 통한 정치참여에도 도전했던 바 있다.
“기후위기 시대 오늘을 위한 전환”, 이 소장이 이끄는 녹색전환연구소의 비전은 막연한 미래가 아닌 오늘을 겨냥한다. 기후위기 속에서도 여전히 삶의 터전으로 기능할 ‘지역’, 그 현장 곳곳에 밀착해 내일의 일과 생활을 이어 나갈 방법을 모색 중이다.
이 소장이 속한 녹색전환연구소와 로컬에너지랩은 기후 정치 프로젝트 ‘기후정치바람’에 함께하고 있다. 기후정치바람은 올해 총선을 앞두고 대규모 여론조사를 비롯해 토론회와 행진 개최, 기후 공약 전수조사 등 ‘기후 유권자’를 의제화하는 다양한 움직임을 만들어 왔다. 8월 15일, 이유진 소장을 화상으로 만나 기후 유권자, 더 나아가 기후 시민으로서 정치에 참여하는 법을 물었다.
대전환을 위한 22대 국회의 과업
한국과 세계가 바라보는 이정표, ‘탄소중립’은 화석에너지에 기반한 기존의 산업과 경제 시스템을 완전히 재편하는 일이다. 그야말로 전에 없던 ‘대전환’이다. 이유진 소장은 우리나라가 탄소중립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EU의 ‘그린딜’, 미국의 ‘IRA’, 중국의 ‘1+N’과 같이 정부 주도의 대규모 전환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부의 정책 비전과 ▲세부 정책, ▲재원 마련 방안이 갖춰져야만 탈탄소 산업 전환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다. 한국 역시 2020년에 탄소중립 선언과 그린뉴딜 정책을 동시에 발표함으로써 그 토대를 마련했으니, 이제는 구체적인 법안으로 다음 단계를 밟을 때다.
그런 의미에서 국회는 전환을 위한 정책의 바탕이자 법안의 요람이다. 이 소장은 이번 국회에서 발의된 박지혜 의원의 ‘탄소중립산업 육성 및 경쟁력 강화에 관한 특별조치법안’과 김소희 의원의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금융의 촉진 등에 관한 특별법안’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법안이라고 설명했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되었으나 사장된 ‘중소기업 탄소중립 촉진을 위한 특별조치법안’도 마찬가지다. 법안마다 미치는 영향력이 산업계 내 하나의 시너지로 작용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22대 국회가 반드시 논의해야 할 의제로, 이유진 소장은 ‘에너지 전환’을 지목했다. 석탄의 퇴출과 재생에너지의 확대, 어느 하나 할 것 없이 빠른 속도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탈석탄법’을 제정해 석탄 발전 폐쇄 시점을 명확하게 해야 할 뿐 아니라, 폐쇄 후 해당 지역의 경제 및 일자리 대책을 모색하여 ‘탈석탄 지역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까지가 탈석탄 정책의 완성이다. 석탄을 대체할 에너지원 개발을 위해, 영농형 태양광과 해상풍력을 지원하는 법이 동반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 소장은 더 나아가 전기 및 에너지 요금 체계 개편에 대해서도 논의되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8]
기후 총선 그 이후, ‘기후정치바람’의 다음 여정은
저는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아깝고 안타까워요. 기후위기 대응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이라서, 하루라도 빨리 기후위기 대응을 정책과 정치의 우선순위로 올려놓고 싶었습니다.
지난 총선은 여정의 출발점이었다. 이유진 소장은 기후정치바람의 총선 활동을 계기로 ‘기후 유권자’가 한국 사회에 자리 잡은 것은 다행이라면서도, 그 과정에서 느꼈던 몇 가지 아쉬움을 드러냈다.
막상 제가 속한 지역구 후보들의 공약 자료집을 들춰보니, 기후 공약이 없더라고요. 참 난감하죠. 나는 기후위기에 관심 있는 정치인을 뽑고자 했는데 우리 지역에는 그런 사람이 안 나온 거예요.
이 소장은 기후 공약을 제시하는 정치인들이 더욱 늘어나야 한다며, 그 방법을 강구하는 데 고민을 쏟고 있다고 전했다. 이를 위해 기후 정책을 실행에 옮길 정치인을 직접 양성하고 이들과 지역의 기후 시민이 함께 모여 학습하는 프로그램을 고안 중이다. 기후 유권자의 목소리도 더욱 선명해져야 한다. 이 소장은 ‘기후위기비상행동’과 같은 활동가 중심의 지역 모임 말고도, 투표나 행동을 통해 기후 정치에 참여하고자 하는 시민들이 모여들 공간을 조성하고 싶다고 밝혔다.
기후정치바람은 이제 선거가 없는 2025년, 나아가 지방선거가 있는 2026년을 바라보고 있다. 2년 뒤 6월 3일 진행될 지방선거는 기초와 광역 지방자치단체장, 시·군·구·도의원을 선출하는 자리로, 이유진 소장에 따르면 “기후 의제를 정책화하고 실현하기에 안성맞춤인 공간”이다. 그는 한국이 현재 탄소중립 목표 달성과 더불어 ▲기후 재난 적응, ▲에너지 전환, ▲인구 위기와 지역 소멸, ▲재정 악화라는 네 가지 과제를 동시에 풀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풀이했다. 이에 녹색전환연구소는 2026년 지방선거에서 해법으로 제시할 만한 대안 정책을 만들어 25년에 발간 예정이다. 이렇게 정치인 후보와 유권자의 플랫폼, 대안 정책이라는 삼요소를 갖춰나갈 계획이다.
청년들과의 만남도 앞두고 있다.[9] 이유진 소장은 내년 실행을 바라보며 기획 중인 프로그램으로 ‘과일정치학교’를 소개했다. 과일이 비싸 사 먹지 못하는 ‘청년’과 과일 재배에 어려움을 겪는 ‘농민’, 이들을 문제의 핵심인 ‘기후위기’ 앞으로 안내하자는 착상이다. 기후정치바람은 청년과 농민이 서로 만날 수 있도록 지역들을 순회하며 강연과 토론회를 열고자 한다. 기후와 먹거리, 물가, 지역 문제를 함께 의논하고 정치적 대안을 만들어가는 대화의 장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 이들의 소망이다.
함께 그리는 다음 세상, ‘정치’를 향하는 이유
2050년, 우리는 어떤 세상에서 살아가게 될까? 과연 화력발전이 완전히 중단되고, 제조업은 재생 가능한 원료와 연료로 굴러가게 될까? 에너지 효율이 높은 주택에서 깨끗한 전기를 사용하거나, 전기차나 수소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게 될까? 2021년 정부의 주도하에 만들어진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이렇듯 탄소중립이 실현될 2050년 한국의 미래상을 담는다. 당시 이유진 소장도 작업에 함께했다. 이후 그는 끊임없이, ‘함께 그리는 탄소중립’을 강조해 왔다.
우리가 2050년까지 만들기로 한 세상에 대해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면, 그 사회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해요. 시간이 지나면 다른 시나리오가 더욱 적합했을 수 있겠다는 판단을 내릴 수도 있겠죠.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더 많은 사람들이 시나리오를 읽고, 시나리오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또 다음 시나리오를 써가는 것입니다.
지금은 가상에 불과한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실제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모든 부문에서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와 에너지, 산업, 지역과 삶까지 전부 바뀌어야 한다. 몇 사람만이 완성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탄소중립은 각각의 주체들이 목표를 똑똑히 바라보고, 저마다 변화의 궤도를 그려봐야 가능한 일이라고 이 소장은 말한다. 그리고 그 변화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지 공적으로 정하는 영역이 바로 정치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어떤 자원을 얼마나, 어떻게 쓸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정치죠. 정치의 지향과 제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정치를 통해 ‘모두를 살리는 결정’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하려면, 기후위기에 대응하면서도 아무도 배제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정치에 참여하고 관여해야 합니다.
‘정치에는 희망이 없다’라고 생각한다면 실제로도 그렇게 되어버린다. 그러나 정치를 통해 더 나은 사회,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늘어나 그런 이들이 실제 정치에 뛰어들면, 정말 사회를 그렇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이 소장의 신념이다.
기후위기로 인해 어떤 사회를 향한 염원이 떠오른다면, 이 위기가 염원을 향해 나아갈 힘을 절박하게 북돋워 준다면. 어쩌면 기후는, 기꺼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유진 소장과 녹색전환연구소는 기후에 대응하면서도 안전한 사회와 충만한 삶을 구현하기 위해, 그 해법을 찾아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연구한다. 이 소장은 기후 의제를 통해 사회를 새롭게 구성하는 과정으로 하나의 예시를 든다.
현재 한국의 자동차 등록 대수는 2,500만 대를 넘어섰습니다. 도심을 자동차 중심에서 도보와 자전거 중심으로 바꾸고, 승용차와 대중교통을 전기차로 전환하는 등 기후 정책을 펼 수 있겠죠. 그러면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할 수 있습니다. 도시의 공기를 맑게 하고 교통사고를 줄이며, 운전에 쓰던 시간을 활동적인 일로 돌릴 수 있는 거죠.
“기후위기에 대응하면서도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안전하며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좋은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이유진 소장이 지향하는 비전을 달성하려면 ▲온실가스 감축과 적응, ▲사회적 약자 보호와 불평등 해소, ▲녹색 일자리와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가의 확보가 이루어져야 한다. ‘어떤 정치’인지를 이야기한 다음 따라 나오는 것이 정책 수단이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는 강한 규제 정책과 지원 정책을 병행할 수 있으며, 공적인 가치를 지향하면서도 공공과 기업에 각각 알맞은 역할을 배분할 수 있어야 한다.
해결해야 하는 문제의 특성과 이해당사자들을 살펴봐야 하죠. 정책은 단지 ‘둘 중의 하나’가 아니라 조합하고 조율해서 적용할 수 있어요.
더 많은 이들이 기후위기 속 세상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러니 마주한 위기 앞에서 자신이 바라는 삶과 사회를 떠올려 보라. 한 문장으로도 좋고, 구체적인 장면을 떠올려도 좋다. 그것이 당신의 ‘기후 정치’ 지향이 될 것이다. 이렇듯 기후 시민은 기후 문제를 자신과 밀접하게 받아들여, 고민하고 발화하며 행동하는 사람을 말한다. 다름 아닌, 고민의 첫 단추를 끼운 당신이다.
기후 시민으로 살아가는 법
선거는 지나갔고, 유권자라는 이름이 더는 호명되지 않는 시기가 찾아왔다. 투표라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뒤 돌아온 시민들이 이제는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역할을 통해 움직일 때다. 이유진 소장은 기후 시민으로 활동하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고 표현했다.
여기 한 가지 예시가 있다. 지난 7월, 녹색전환연구소는 『한겨레21』과 ‘1.5도 라이프스타일 한 달 살기’ 실험을 진행했다. 23명의 시민들이 한 달 동안 일상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일일이 기록하고, 이를 저감하기 위한 시도를 함께한 과정이다. 많은 이들이 인당 목표 수치 ’연평균 5.9t’[10]을 달성하는 데 실패했는데, 그 어려움 속에서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실천을 가로막는 시스템이었다. 긴 출퇴근 시간에 지쳐 배달 음식을 시켜 먹게 됐다. 공공 교통을 이용하고 싶어도 인프라가 부족했다. 노동시간 단축과 버스노선 확충, 나아가 체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견해까지, 실천의 경험으로부터 생생한 정책 의제가 자라 나왔다. 이 소장이 소개하는 기후 시민의 한 가지 표상이다.
실천하고 고민하며 토론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데까지, 기후 시민의 역량은 어느 하나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이 소장이 제안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 ‘말 걸기’가 있다.
정치와 행정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권한을 위임받은 존재들이에요. 우리가 함께 마주한 문제들을 풀어가야 하는 사람들이죠. 그런데 우리는 생각보다 이들을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지자체장에게 말을 건네본 적 있나요? 공식적인 자리에서 발언하거나 전화를 걸거나 편지를 쓰거나, 아니면 게시판에 글을 쓸 수도 있겠죠. 생각보다 그게 잘 작동할 수 있어요.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아주 강력한 수단으로 ‘정치’를 활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유진 소장은 프랑스, 영국 등 해외에서 조직된 ‘기후시민의회’의 사례를 언급하며, 기후 대응 결정에 시민의 의견을 직접 반영할 수 있는 논의 기구가 더욱 늘어나면 좋겠다고도 강조했다. 기후위기 대응에는 특히 각자의 역할을 조율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는 당장 석탄 발전 폐쇄 시점과 그 대책을 수립하는 데에도 시민을 포함한 관련 당사자들이 폭넓게 참여하는 논의 기구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전체적인 하나의 장도 좋지만, 작고 작은 다양한 공론장이 곳곳에 많아지면 좋겠다는 것이 이 소장의 바람이다.
은평구 같은 경우 동 단위로 모여서 ‘우리 동네의 탄소중립’을 논의하는 자리도 있었거든요. 국가가 탄소중립을 선포했으니 그 안에 있는 기업과 개인, 각각의 공동체도 탄소중립을 해야 하는 거잖아요. 예를 들어 성균관대 안에 탄소중립 공론장을 만들어서 대안과 행동을 논의할 수도 있죠. 그렇게 내가 살고 있는 공간에서 가까운 공론장이 많이 열리면 좋겠다는 게 제 의견입니다.
이유진 소장에게도 ‘기후위기’는 때로 막막하고, 한탄스럽고, 실망하고, 분노하는 마음이 가득 눌러 담긴 말이다. 비관적인 목소리가 가득하다. 탄소중립은 분명 불가능하게도 느껴지는 길이다. 이 지경까지 오게 만든 ‘인간’을 탓할 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정말 개인은 무력할까? ‘22대 기후 총선’이 가능했던 결정적 이유에 대해, 이 소장은 이렇게 답한다.
2022년 신림동 반지하 세 식구 사망 사건이 모두에게 각인되어 있고, 2023년에도 오송 지하차로에서 목숨을 잃은 분들이 계세요. 기후위기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가혹하면서도, 동시에 누구에게든 닥칠 수 있는 재난이라는 인식이 생긴 것 같습니다.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기후위기를 초래한 원인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시민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고 느껴요.
이어지는 물줄기는 실재한다. 시민이 정치를 만들고, 또 정치는 사회를 향한다. 지긋지긋하게도 변화의 씨앗은 분명 무력한 개인의 손아귀 안에 있다. 말 걸고 시끄럽게 떠들 ‘우리’가 절실하다. 그렇기에, 이 무성한 비관과 낙관을 헤집어 간신히 또 손을 뻗는다. 손을 뻗는 방향에는 당신이 있다.
[1]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하 ‘탄소중립기본법’)의 정의에 따르면, 탄소중립은 대기 중에 배출ㆍ방출 또는 누출되는 온실가스의 양에서 온실가스 흡수의 양을 상쇄한 순배출량이 영(零)이 되는 상태를 말한다.
[2] 이는 우리나라가 유엔기후변화협약에 공식적으로 제출한 2030 NDC에 따른 것이다. 파리협정의 각 당사국이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책임과 역량을 고려해 자발적으로 제출하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NDC(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라고 부른다.
[3] ‘기후’를 선거 결과를 좌우할 수 있을 정도의 핵심 정치 의제로 부상시키겠다는 목적 아래 만들어졌다. 로컬에너지랩과 더가능연구소, 녹색전환연구소가 함께 결성했으며, 2024년 총선부터 2026년 지방선거, 나아가 2027년 대통령 선거까지 매년 대규모의 기후위기 인식조사, 선거캠페인, 일상 캠페인을 진행할 계획이다.
[4] 더나은미래가 만난 ‘기후 당선자’ 8인은 김소희,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 김성환, 박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종민 새로운미래 의원,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서왕진 조국혁신당 의원,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이다.
[5] 「“기후유권자 등장, 이번 총선 기후정치의 성과”」(김기범 기자, 2024.04.01.)
[6] 영국에서 2008년 의회 통과 후 발효된 ‘Climate Change Act 2008’,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국내법으로 규정한 세계 최초의 법안이다.
[7] 얼마 지나지 않아 8월 14일, 김소희 의원 주도 하에 ‘기후 물가’ 국민의힘 당정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토론회를 통해 정부 관계자와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 논의가 이루어졌고, 김 의원은 이날 ‘기후 물가 패키징법’ 대표 발의를 예고하기도 했다. 기후 정치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8]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원가를 감당하지 못하는 수준의 요금을 ‘현실화’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정부가 민심과 산업계를 의식해 전기 요금을 올리지 못하는 현재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독립된 에너지 요금 결정기구가 들어설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유진 소장의 설명이다.
[9] 한편, 기후정치바람이 실시한 국민인식조사에 의하면 18-29세의 기후 유권자 비율은 30.8%로, 모든 연령별 집단 중 가장 낮았다. 이 소장은 이에 청년들이 너무 많은 경쟁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견해를 표했다.
[10] 2018년 기준 한국인의 연평균 탄소배출량 13.6t에서 공공 부문의 인프라에서 나오는 배출량을 제외하면 9.8t이다. 이에 2030년 목표인 40% 감축을 반영하면5.9t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