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_ 혜화·명륜에서 만나는 600년의 이야기
수습편집위원 권려경
서울 성북구 혜화·명륜 성곽마을은 성균관과 함께 600년 이상의 시간을 견뎌낸 곳이다. 성균관대학교와 맞닿아 있는 이곳은 한양도성의 북동쪽 자락에 자리해, 조선 왕조의 흥망성쇠와 전쟁, 근대화의 물결, 그리고 오늘날의 도시화 속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왔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골목길과 담벼락, 그리고 주민들의 삶에 스며든 과거의 숨결은 여전히 선명하다.
이곳의 역사는 단지 과거의 유산으로 머물지 않고, 도시 서울이 품은 다층적 시간의 축으로 자리 잡았다. 성곽마을은 조선 왕조의 질서가 점차 해체되면서 새로운 도시의 모습을 맞이했고, 근대 교육과 산업화의 영향 아래 서민과 지식인이 뒤섞인 공간으로 거듭났다. 마을 사람들의 삶과 공간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성곽마을’이라는 이름 속에는 수백 년의 이야기가 녹아 있다.
혜화·명륜 성곽마을은 단순히 오래된 건물이 모여 있는 공간이 아니다. 600년의 시간이 마을 골목과 담벼락, 지붕선과 골목 사이에 살아 숨 쉬는 살아 있는 역사다. 이곳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주민들의 일상과 기억이 오롯이 담겨 있다.
후문을 나서 한양도성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경사진 골목길과 층층이 쌓인 지붕들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오래된 벽돌 담과 하얗게 칠해진 외벽, 낡은 기와와 반짝이는 금속 지붕이 어우러져 마을이 여전히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골목 끝 전깃줄이 바람에 살랑이면, 낮과 밤을 가르며 따뜻한 마을의 온기가 전해진다. 경사가 있는 골목길에는 집 사이 좁은 계단이 오르내린다. 손때 묻은 난간과 담벼락에는 세월의 흔적이 진하게 배어 있다. 창문 아래 작은 화분 속 식물들은 도시의 바쁜 일상과 무관하게 계절을 따라 조용히 자란다.
이른 아침 골목은 한산하다. 출근하는 사람들의 발걸음과 학생들의 가벼운 웃음소리만이 고요하게 울려 퍼진다. 햇살이 잘 드는 곳과 깊은 그늘이 어우러져, 여름에도 골목에는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점심 무렵에는 근처 학교에서 떠들고 노는 아이들의 소리가 동네 전체에 퍼진다. 공사장도 잠깐 장비 운행을 멈추고, 오랜 시간 같은 자리를 지켜온 가게 주인들은 작은 의자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이웃과 담소를 나누며 하루의 속도를 늦춘다. 해 질 녘 성곽 위로 붉은 노을이 퍼지고, 골목길은 가로등 불빛으로 은은하게 물든다. 멀리 종로의 불빛과 북악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순간, 시간이 잠시 멈춘 듯한 고요함이 마을을 감싼다. 이 풍경은 도시 속에서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특별한 감각을 선사한다.
도시의 빠른 변화 속에서도 성곽마을은 느리고도 깊게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골목마다 스며든 기억과 삶은 그 자체로 소중한 자산이다. 성곽마을의 풍경은, 저마다의 시간과 계절을 따라 흐르며, 그 안에 깃든 이야기들은 마을만의 특별한 아름다움을 만든다. 오래된 벽돌 담 너머로 들려오는 부엌 소리, 낮은 지붕 위 스치는 바람, 그리고 성벽을 타고 퍼지는 저녁 햇살은 이 마을의 하루를 완성하는 작은 풍경이다.
이 마을은 조선시대부터 성균관과 ‘반촌’이라 불리던 마을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성균관은 국가 최고 교육기관이자 공자를 모신 신성한 공간으로, 반촌은 유생과 관리, 그리고 그 가족들이 거주하던 곳이었다. 이곳은 특권이 많았던 곳으로, 백정을 제외하고 도축이 허용된 몇 안 되는 조선의 예외 구역이기도 했다.
반촌과 성균관이 있었음에도 1900년대 초까지 이 지역은 주로 논밭이었다. 사람이 모이기 시작한 건 갑오개혁 이후 서구식 근대 교육이 확산하면서였다. 1906년 경성공립보통학교, 1910년 혜화보통학교가 차례로 세워지면서 인구가 유입되었고, 1920년대에는 이미 만 명이 넘는 학교촌으로 성장했다. 급격한 인구의 증가로 인해 땅이 부족했기에 국가는 한양도성을 포함한 국유림을 경매에 부치게 되었고, 이때부터 성곽 자체도 민간의 소유가 되었다. 성과 성곽은 분해되어 학교나 가정의 담벼락 등에 쓰였다고 한다. 조용한 유생들의 마을이었지만, 근대화의 바람에 따라 점차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이다.
1960-70년대 서울은 급격한 도시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전쟁 후 복구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도시 외곽과 낙후 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가 시작되었다. 혜화·명륜 성곽마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서울시는 주거 환경을 개선하고 도로를 확충하며 낡고 좁은 골목들을 포장도로로 바꾸었고, 일부 한옥을 철거해 다세대주택과 연립주택을 지었다. 이는 주민들의 생활 편의를 위한 조치였지만, 그 탓에 마을의 옛 모습과 정서가 흐려지기도 하였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한양도성 복원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성곽 주변 일부 구역이 정비되었고, 2010년대에는 상하수도 교체, CCTV 설치, 공용 공간 확충 등이 포함된 재생 사업이 진행되었다. 이 사업들은 마을의 전통적인 골목 구조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주민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변화가 마냥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집값과 임대료 상승, 건물 보수 비용의 부담은 특히 고령 주민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해 이주와 공동체 해체를 부추겼다. 오랜 기간 마을에 뿌리내린 주민들이 떠나면서 마을 고유의 역사와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 개발과 보존 사이의 미묘한 균형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오래된 골목과 성곽, 그 안에 담긴 기억과 정체성은 쉽게 대체될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다. 이 자산을 보존하면서도 현재를 살아가는 주민들이 존중받고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마을의 기억을 지키고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나가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혜화·명륜 성곽마을이 앞으로도 지속 가능한 공간으로 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민들의 목소리와 참여가 중요하다. 주거 환경 개선과 역사적 경관 보존, 그리고 원주민 보호가 조화를 이루는 정책이 필요하다.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관건이며, 이는 단순한 물리적 공간 정비를 넘어 마을 정체성과 공동체를 지키는 길이다.
이러한 방향 속에서 현재 혜화·명륜 성곽마을의 개발 사업은 모두 ‘공동체’를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2016년 시작된 지구단위계획에 따른 사업이 있다. 2025년 6월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혜화·명륜 성곽마을에서 사업이 완료되었으며 혜화동에서는 총 229,447㎡ 규모의 구역에서 역사탐방로와 명륜길, 골목길 조성, 가로환경 개선, 보안등과 CCTV 설치 등 다양한 정비가 이루어졌다. 명륜마을에서도 유사한 사업이 진행되었으며, 그중 공동이용시설인 ‘안심주택마을’ 조성은 주민 안전과 편의를 높이는 중요한 성과로 꼽힌다. 추진 과정에서 여러 차례 주민워크숍과 설명회를 개최하여 공동체 중심의 사업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한 것이 보인다.
성곽마을 주민들 역시 자신이 사는 동네의 변화와 발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현재 한양도성 성곽마을 주민네트워크 사회적협동조합, 명륜혜화성곽마을의 유쾌한 동행, 혜화명륜 성곽마을 주민공동체운영회 등 다양한 주민 조직이 운영되고 있다. 다만 정기적으로 소식을 전하거나 활동을 공유하는 단체는 많지 않은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주민네트워크 사회적협동조합과 ‘유쾌한 동행’은 페이스북에 게시된 글이 수년째 업데이트되지 않았고, 협동조합이 사용하던 건물도 현재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공동체운영위원회는 여전히 활발히 활동하며 마을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종로 08번 버스 종점에서 내려 5분 남짓 걸으면 혜화·명륜 주민공동이용시설을 찾을 수 있으며, 항상 개방되어 있지는 않으나 신청을 통해 이용할 수 있다. 문 앞에는 주민 화원 모집 포스터와 각종 동네 행사 안내 책자가 붙어 있어 지역 공동체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도시의 빠른 변화와 경제적 압박 속에서, 마을 공동체를 유지하고 주민 삶을 보호하는 일이 왜 중요한지를 다시금 되새길 필요가 있다. 단순한 도시 재개발이 아니라, 마을의 시간과 기억, 그리고 주민들의 삶터를 존중하는 지속 가능한 개발이 필요하다. 성곽마을을 걸을 때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특별한 공간임을 절감하게 된다. 그 특별한 시간이 앞으로도 이 마을과 함께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