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에서 건진 기억 한 조각
따뜻한 김 속, 몸을 맡기는 시간
며칠 전이었습니다.
후끈한 온기가 가득한 목욕탕에 몸을 맡겼습니다. 간단히 샤워를 마친 후,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지친 몸의 피로를 풀었죠. 뜨끈한 온찜질방에서 땀을 흔건히 흘린 뒤,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때밀이 이모님께 제 몸을 맡기는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익숙한 비누 거품, 시원한 물줄기, 그리고 때 타월의 거침없는 감촉.
온몸의 세포들이 살아나는 듯했습니다.
항상 이 시간을 즐기면서도, 제 몸에서 하얗게 뿜어져 나오는 각질들을 볼 때면 문득 묘한 생각이 듭니다.
‘아니, 이렇게나 각질이 많이 나오다니! 매번 씻는데도 왜 이럴까?’
그 순간, 어이없게도 제 머릿속에 한 마리 생선이 떠오릅니다.
그것도 하필 ‘조기’.
조기 비늘, 시어머니의 미소, 그리고 서툴렀던 며느리의 사랑
왜 하필 조기였을까요?
아마도 돌아가신 시어머니 때문일 겁니다.
살아생전 시어머니는 조기를 참 좋아하셨습니다. 명절이나 제사가 아니어도, 집에 오신다 하면 저는 늘 시장에서 가장 통통하고 싱싱한 조기를 사왔습니다.
서툰 며느리였지만, 그날만큼은 시어머니께 맛있는 조기를 대접하고 싶었고,
조금이라도 더 잘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늘 정성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조기를 손질하는 일은 저에게 고된 노동이었습니다.
비늘이 어찌나 많던지!
칼로 벅벅 긁을 때마다 사방으로 튀는 비늘들.
싱크대는 물론, 벽과 바닥까지 조기 비늘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습니다.
한 마리를 손질하고 나면 꼭 전쟁을 치른 듯한 몰골이 되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가 조기를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상상하며
비늘을 벗기는 힘든 순간조차 잠시 잊혀지곤 했습니다.
그 기억들은 지금도 생생하게 마음 한켠에 남아 있습니다.
각질과 비늘, 몸의 정화가 건네는 추억
다시 목욕탕.
이모님의 시원한 손길 아래, 때 타월로 밀려나가는 각질들을 보며
저는 다시 조기를 손질하던 날들을 떠올립니다.
묘하게도 그 하얗게 떨어지는 각질들이
그 시절 싱크대 위로 흩뿌려지던 조기 비늘 같았습니다.
오래된 비늘을 벗겨내야 싱싱한 살이 드러나듯,
묵은 각질을 벗겨내야 새로운 피부가 숨을 쉬듯,
우리 인생에도 이런 ‘벗겨냄’이 필요한 순간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몸이 주기적으로 각질을 밀어내듯,
마음도 정기적으로 쓸모없는 감정과 피로를 털어내야 하는 것이겠지요.
조기 손질에 얽힌 시어머니와의 추억,
그리고 그 모든 시간들이 저라는 사람을 만들어왔음을
목욕탕 한복판에서 새삼 느낍니다.
몸과 마음, 그리고 기억의 순환
목욕탕에서의 시간은 단순히 몸을 씻는 행위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안에는 몸과 기억이 순환하며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 숨어 있었습니다.
조기 비늘에서 시작된 시어머니와의 추억은
한때 며느리로서 온 힘을 다했던 제 마음을 다시금 꺼내 보게 했고,
그 마음은 오늘의 저를 다독여주고 있었습니다.
몸은 솔직합니다.
쌓인 각질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묵은 피로를 땀으로 토해냅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무의식은 기억의 파편을 현재로 불러오죠.
묵은 각질과 조기 비늘이 만나 이끄는 이 기묘한 연결은,
몸의 정화가 곧 마음의 정화로 이어짐을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오늘도 저는 묵은 각질을 벗겨내듯
삶의 피로와 생각들을 하나씩 털어냅니다.
이모님의 시원한 손길처럼, 제 마음도 정갈하게 비워지는 시간.
그리고 그 빈 공간엔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했던 따뜻한 기억들이
다시 빛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은 일상의 어떤 순간에서 문득, 오래된 기억과 마주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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