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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감자밭

야속했던 엄마의 뒷모습,이제는 가장 그리운 풍경이 되었습니다


“엄마의 손길과 사랑이 스며든 감자밭에서의 기억은 내 마음에 오래도록 남아 있습니다.”


이른 봄의 시작은

늘 설렘과 함께 작은 고단함을 품고 있었습니다.


햇살은 따뜻했지만,

땅은 여전히 차가웠던 계절.


우리 집 밭고랑은

어느새 부산한 움직임으로 가득 찼지요.


아침 일찍부터 엄마는 바삐 움직이셨습니다.

파릇한 감자싹이 움트기를 기다리며 밭을 일구고,

고랑을 곱게 만들어 군데군데 소거름을 정성스레 뿌리셨죠.


호미로 땅을 적당히 파내면,

겨울을 이겨낸 싹 튼 감자들이 하나씩 심어졌습니다.


언젠가 파랗고 큼직한 싹을 틔울 꿈을 품은 채,

조용히 땅속으로 숨어들었지요.



시간이 흐르고,

파릇한 감자싹이 앙증맞은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연약해 보이던 새싹들이 무럭무럭 자라

파란 잎을 펼쳐낼 즈음이면,


밭은 금세 풀들로 뒤덮이곤 했습니다.


특히 감자밭은

유난히 풀이 억세고 키도 쑥쑥 자라서,

어린 제 눈에는 감자잎과 풀이 구분이 잘 안 될 만큼 복잡하고 벅차 보였죠.



그 뜨거운 여름날,

엄마는 늘 그 풀들 사이에서 홀로 분투하셨습니다.


"머리에는 하얀 수건 하나를 두르고, 호미 하나에 의지한 채 뜨거운 햇볕 아래 억센 풀들과 씨름하셨죠."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에 옷이 축축하게 젖어도,"


엄마는 좀처럼 힘들다는 내색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묵묵히,

오직 풀들과의 전쟁에만 몰두하는 듯 보였습니다.



어느 날,

저는 그늘에 앉아 멍하니 감자밭을 바라보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저 넓은 밭에서 엄마는

어떻게 감자잎과 풀을 구별하실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풀들 가득한 밭으로 조심스레 발을 디뎠고,

땀을 뻘뻘 흘리는 엄마에게 다가가

얇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습니다.


“엄마! 이거 왜 다 뽑아내?

감자잎이랑 풀이랑 어떻게 알아?

와, 울 엄마 최고!”


제 칭찬에

엄마는 고단했던 표정을 거두고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신기하게도

더 열심히, 더 신나게 감자밭 풀을 매기 시작하셨습니다.



어린 저는 그런 엄마가 마냥 신기했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지친 기색 없이 저토록 열심히 일할 수 있을까.


저를 바라보며 환히 웃던 엄마의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낯선 감동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야속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왜 엄마는 놀지도 않고,

밥만 드시면 감자밭으로, 논으로, 밭으로 가셔서

일만 하실까?


놀아달라고 졸라봐도,

일 좀 그만하라고 칭얼거려도

엄마는 늘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일을 해야 먹고 살지!”


그저 일밖에 모르는 엄마가,

그때의 저는 가끔은 싫었습니다.


엄마랑 놀고 싶은데,

늘 일에 매여 있는 엄마의 모습이

서운했던 거죠.


그 깊은 의미를 헤아릴 수 없었던

철부지 시절의 저는


엄마 삶이 지닌 무게를

감히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저 또한 삶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고되고 힘겨운 현실 앞에

묵묵히 맞서야 할 순간들.


그런 날이면 문득,

그 시절 감자밭에서 땀 흘리시던

엄마의 뒷모습이 떠오릅니다.


그 땀방울은

단지 농사가 아니라,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기 위한

뜨거운 사랑이었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일을 해야 먹고살지!”


그 말 속에는

가족을 향한 책임감과 헌신,

그리고 그 안에서 희망을 일구던

강인한 삶의 지혜가 담겨 있었음을

이제야 비로소 이해합니다.



엄마는 그 시절,

그저 땀 흘려 일하시는 모습만으로도

저에게 가장 큰 가르침을 주고 계셨습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단단한 풀뿌리처럼,

삶에 깊이 뿌리내려

어떤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던

엄마의 뒷모습은


이제 제 삶의 가장 큰 위안이자,

길을 밝혀주는 등대가 되었습니다.



야속했던 마음은

이제 진한 그리움으로 남아,


감자밭 가득하던 풀들처럼

무성히 자라난

엄마의 사랑을 곱씹는 오늘입니다.



“그리움과 사랑으로 가득한 엄마의 뒷모습은 나에게 늘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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