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ison 고인숙. ― 사랑의 맹목성3.

by 고인숙


스텔라:

(한참 동안 창밖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며 입을 연다. 목소리는 낮고, 그러나 또렷하다)

“그 아들의 사랑... 저는 그것을

‘연기법이 가장 잔인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연인을 사랑한다고 믿었어요.

그래서 아버지를, 형제를, 민족을 베었죠.

연인은 수많은 인연이 얽혀서

그 순간 그의 앞에 나타난

아름다운 환영일 뿐이에요.

그 환영이 식어버리면—

그리고 반드시 식어요, 무상하니까—

그가 베었던 모든 것이

갑자기 그의 칼끝으로 돌아와요.

아버지의 눈물, 형제의 피, 민족의 저주…

그 모든 게 그의 가슴을 찌르게 돼요.

호스트:

그렇지요, 사랑하는 아들을 저 지옥에서 꺼내준 건 아버지였습니다. 배신자라는 명분으로, 아들이 꽂고 있던 칼날을,

아버지가 자신의 가슴에 꽂은 겁니다.

아버지가 대신 지옥을 떠안은 거죠.

그렇지 않았다면 그 아들은 결국 자신에게로 칼끝을 겨누고 삶이 아닌 지옥을 보겠죠.


그 아픔이 깨달음이라는 곳까지 가기엔
스스로의 비수가 너무 많아요.

그가 배신했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이제는

연인의 얼굴 뒤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겠죠.

그가 본 지옥은 불타는 곳이 아니라, ‘내가 사랑이라 믿었던 것이 실은 거대한 이기심이었다’는 사실을 매 순간 확인해야 하는 차가운 거울 속이었을 겁니다. 그 거울을 깨뜨릴 용기가 없어서, 그는 아마 영원히 그 비수들 사이를 헤맸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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