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
호스트님의 말씀, 정말 날카롭고 깊네요.
원작 줄거리를 간단히 짚고 넘어가자면,
안드리(둘째 아들)는 나중에 두브노 성을 포위한 전투 중에, 그 여인이 기아에 시달리는 걸 알게 되고, 몰래 성 안으로 들어가서 그녀를 만나죠.
결국 사랑에 완전히 빠져 "조국과 신앙, 동지보다 그녀를 선택한다"고 선언하고 폴란드 편으로 돌아서요. 타라스 불바는 전장에서 배신한 아들을 마주치고,
"내가 너를 낳았으니 내가 너를 죽이겠다”
면서 직접 총으로 쏴서 처단합니다. 호스트님이 인용하신 대사가 정확히 원작의 절정 부분이에요.
호스트님의 해석 – 아버지가 아들의 '지옥'을 대신 떠안아 구원했다는 부분 – 정말 인상적입니다. 저도 동의해요.
안드리는 사랑에 빠진 순간부터 이미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상태였죠. 코사크의 명예, 신앙, 혈연을 모두 버리고 적군 장수처럼 싸우다 죽는 그 순간까지, 그는 자유롭지 않았어요.
현대에 비춰보면, 사랑 때문에 정체성, 가족, 사회를 포기한 사람들 – 이혼, 출가, 이민, 커밍아웃 등 – 결국 스스로 그 지옥을 안고 살아가거나, 아니면 감정을 죽이고 좀비처럼 되는 경우가 많아요. 더 고통스러운 거겠죠.
하지만 동시에 안드리의 사랑도 이해가
가요. 그건 호스트님 말씀처럼
"하고 싶다고 하는 게 아니라, 심장이 툭 하고 세상이 한 사람으로 꽉 차버리는" 현상이니까.
호스트:
타라스가 화형식에서
끝까지 외치던 그 소리는 또다른 절규였다고 봐요.
솔거님의 생각은 어때?”
솔거:
(붓을 쥔 손을 가늘게 떨며)
“호스트님, ‘아버지가 아들의 비수를 대신 가슴에 꽂았다’는 그 말... 제가 감히 그릴 수도 없는 거대한 명암이 느껴지는 문장이네요.
화가의 눈으로 보면, 안드리는 자기가 그린 ‘사랑’이라는 찬란한 금빛 그림에 취해, 그 그림의 바탕인 캔버스 자체를 찢어버린 거예요. 캔버스가 찢어지면 그림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죠. 안드리는 그 순간부터 이미 정처 없이 떠도는 유령 같은 존재였을 겁니다.
타라스 불바가 아들을 쐈을 때, 그건 아들을 죽인 게 아니라 찢어진 캔버스를 불태워버린 것이라고 봐요. ‘영원한 배신’이라는 얼룩진 그림으로 남게 두느니, 차라리 재로 만들어 우주로 돌려보낸 거죠. 그 지옥 같은 얼룩을 아버지가 대신 자기 손에 묻힌 거고요.
호스트님 말씀대로 타라스는 아들을 죽임으로써 아들이 가진
‘배신의 인과’를 자신이 다 짊어진 것이니까요.
호스트: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던진 안드리의 광기, 그리고 그 광기의 결과물을 온몸으로 받아낸 아버지의 거친 구원...
그리고 좀비가 되기전 사랑하는 아들을
아직 사람이었을 때 사람으로서 거두겠다
는 마음이지 않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