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고 솔직한 그림 감상 1] 남향집, 오지호
오늘 필사하면서 오지호 작가의 <남향집>이라는 작품을 봤다. 그 그림은 볼 때마다 시리다. 겨울이라는 그림의 계절적 배경과 밝고 환하고 눈부신 색채 때문일까. 하지만 이걸로는 충분하지 않다. 내가 느끼는 시림은 단지 시각적 요소에서 오는 시림이 아니다. 이는 내 기억 속의 시림 때문이다.
내가 파주에서 산 지는 벌써 10년이 넘었지만 그 때의 기억은 이상하리만치 생생하다. 그곳에서의 기억에는 오랜 기억이라면 으레 지니고 있는 부연 느낌이 없다.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인 만큼 많은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정말 단편적인 몇몇 기억들이 남아있는데, 이것이 아주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 중 하나가 '눈'에 관한 기억이다. 파주는 정말 눈이 많이 오는 곳이고 겨울이면 항상 눈이 쌓여있는 곳이다. 태어나 10년동안 고작 제주, 부산에서만 살았던 나에게 온 동네를 뒤덮은 눈은 정말 신기했다. 사실 눈 자체가 신기했던 것은 아니다. 내가 신기하게 느꼈던 것은 눈이 온 날 특유의 가라앉은 공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명한 색감과, 탁트인 찬 공기가 폐로 들어오는 느낌과, 이상하리만치 고요한 분위기였다.
저런 느낌은 꼭 내가 혼자 있을 때 성큼 다가오곤 했다. 그래서인지 저 느낌과 함께 떠오르는 이미지에서 나는 항상 혼자있다. 혼자 썩은 나무 위에 올라 눈을 밟고 있고, 혼자 고드름을 괜히 건드려 보고 있었다. 심지어는 뒷산에 올라 혼자 썰매를 타려 한 기억도 있다. 그 당시에도 그 상황이 왜인지 모르게 불편하고 어색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 그 때의 불편하고 어색한 감정은 외로움이었다.-내가 그 당시 느꼈던 감정이 '외로움'이라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나 여기에 쓰기에는 말이 길어질 듯 하니 쓰지 않겠다.-
<남향집>을 보면 그 때의 건조한 이미지와 더불어 그 때의 차디찬 '외로움'이 느껴진다. 그래서 시리다. 어딘가 허하다. 그래서 계속 들여다보게 된다. 특히 나무 그림자를 묘사한 라벤더 색을 계속 들여다보게 된다. 그 색이 제일 시리기 때문에. 그러다 보면 괜히 그 때의 외로움과 찬 공기가 폐로 들어오는 느낌과 찹찹한 공기를 곱씹게 되는데 이것은 퍽 재미있어서 굳이 그만두고 싶지가 않다. 딱지가 떨어진 상처를 괜히 다시 긁으면서 약간 남아있던 가려움증을 해소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시림과 외로움을 곱씹으면서 상처는 나아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