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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냥(그냥) 봄을 심었다

걸음마 아기 농부의 이야기

by 감성멘토앤


오늘은 나를 내려놓고, 그저 농부였다.

호미를 들고, 삽을 쥐고,

묵직한 흙을 헤집고, 거름을 뿌리고,

씨앗과 모종을 조심스레 심었다.

언제부터였을까.

흙을 만지는 일이 이렇게 좋았던 게.

누구의 시선도 필요 없는 공간에서,

몸을 움직이고, 땅을 만지고, 땀을 흘리는 일.

이 단순한 일상이 내 마음을 환하게 비춘다.


오늘은 바람이 제법 차가웠다.

햇살은 봄처럼 눈부셨지만

바람 끝엔 겨울이 조금 남아 있었다.

음력으로는 아직 2월.

그러고 보면, 절기라는 건 참 정확하다.

달력이 놓치고 가는 것들을,

자연은 늘 알고 있더라.


그런데도 나는 드냥, 씨앗을 심었다.

아직 추운 땅이지만,

그 안에 어떤 따뜻함이 자라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아도,

그저 드냥, 흙을 만지고 있으면

마음이 환해지고, 시간이 흐르는 게 아깝지 않았다.

텃밭에 혼자 앉아 있는 시간은

어쩌면 내가 나를 가장 온전히 만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흙을 털고 일어서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 일을 좋아할까.

작가라는 이름보다,

흙 위에 앉아 바람을 맞는 이 시간이

왜 이렇게도 깊게 나를 끌어당길까.


아마도 드냥 살아가는 법을

이 텃밭이 알려주는 것 같다.

억지로 피우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증명하지 않아도,

시간이 되면 싹이 트고,

햇살과 함께 꽃이 피는 일.


그게 삶이구나.

그게, 나구나.

오늘, 나는 드냥 봄을 심었다.

마음에도, 텃밭에도.


폭싹 쏙았수다의 아이유의 대사처럼

앞가림 잘하는 어른이 되고 싶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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