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역

by 황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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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소리를 따라 도착한 곳은, 지하철 노선도 어디에도 표시되지 않은 폐역이었다. 낡은 출입문은 녹슬어 있었고, 승강장은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그러나 벽마다 희미한 글씨가 남아 있었다.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한다.” “자정 10분 전, 문은 열린다.” 나는 손목 위 시계를 바라봤다. 바늘은 여전히 11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승강장에는 아무도 없어 보였지만, 빈 벤치 위엔 누군가 두고 간 사진이 있었다. 사진 속 세 사람. 이번엔 웃지 않고,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지금까지 본 사진과는 달랐다. 마치 마지막 순간을 기록한 듯, 그들의 얼굴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때, 승강장 끝에서 기차의 불빛이 다가왔다. 그러나 소리는 없었다. 차량은 형체 없는 그림자처럼 미끄러져 들어왔다. 열차 문이 열리자, 빈 객차 안에 수많은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돌려줘.” “기다렸어.” “기록해줘.” 나는 발을 떼지 못했다. 문턱의 기운이 이곳에도 닿아 있었다. ‘사라진 역’은 단순한 폐역이 아니었다. 떠나지 못한 모든 기억들이 머물러 있던 종착역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오래전 떠난 단골 손님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가 창가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돌아오셨군요…” 내가 중얼거린 순간, 그는 잔을 들 듯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차창에 김이 서리며 글자가 새겨졌다. “문턱의 마지막 열쇠는, 여기서 찾을 것이다.” 열차 문이 닫히자, 모든 불빛이 꺼졌다. 승강장은 다시 어둠 속에 잠겼다. 나는 노트에 떨리는 손으로 적었다. “사라진 역은, 모든 퍼즐의 종착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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