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들의 기록

by 황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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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밤거리는 고요했지만, 나는 분명 누군가의 속삭임을 듣고 있었다. 종소리는 울리지 않았는데, 골목 벽마다, 가로등 불빛마다, 낯선 문장들이 새겨지고 있었다. “돌려줘.” “미안해.” “기다렸어.” 흩어진 목소리들이 하나둘 모여 도시 전체를 울렸다. 나는 그 소리를 따라 버려진 도서관에 도착했다. 문은 닫혀 있었지만, 창문 틈새로 빛이 새어 나왔다. 안으로 들어가자, 수많은 책들이 흩어져 있었고, 책장마다 이름 없는 기록들이 빼곡했다. 글씨는 흐려져 있었지만, 모두 떠나지 못한 이들의 목소리였다. 그 순간, 낡은 책상 위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책이 저절로 펼쳐지며 한 장의 문장이 드러났다. “모든 목소리는 결국 하나의 기록으로 모인다.” 나는 숨을 죽였다. 그 문장은 내가 카페에서 써온 노트의 첫 장과 똑같은 울림을 가지고 있었다. 책장 사이에서 얼굴 없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모두 내게 펜을 건넸다. “우리를 기록해 주세요.” “사라지지 않게.” “남겨진 흔적이라도 좋으니.” 나는 떨리는 손으로 펜을 잡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내 노트가 아닌 이 도시의 기록에 한 문장을 남겼다. “나는 바리스타이자, 기록자다. 떠나지 못한 목소리를 끝까지 담아내겠다.” 순간, 도서관 전체가 밝아졌다. 유령들의 속삭임은 하나의 합창처럼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들은 잔잔히 사라졌다. 남은 것은 책장 가득 메워진 기록들, 그리고 내 손끝의 떨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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