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온의 그림자

by 황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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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도시는 화려했다. 전광판이 쏟아내는 빛, 가게 간판들이 내뿜는 네온, 그리고 그 불빛 아래 서 있는 사람들. 그러나 그날, 나는 빛보다 더 선명한 그림자를 보았다. 번화가의 중심,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에서

한 사람의 발걸음이 유독 가벼웠다. 그는 분명히 사람들 사이를 지나고 있었는데, 누구와도 부딪히지 않았다.

아무도 그를 보지 못하는 듯, 그는 빛에 드리워진 그림자처럼 미끄러지듯 걸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따라갔다.

그의 발자국이 닿는 곳마다 네온 불빛이 흔들렸다. 간판 글자가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 켜졌고, 불빛 사이로 낯선 문장이 스쳐 지나갔다. “자정 10분 전, 네온 아래에서 기다려라.” 심장이 멎는 듯했다. 그 문장은 카페 안에서만 들리던 신호였는데, 이제 도시의 심장부에도 스며들고 있었다. 그는 번화가 한복판에 멈춰 서더니, 갑자기 몸을 돌려 나를 바라봤다. 얼굴은 없었지만, 그 시선은 분명히 내게 닿았다. “당신도 보셨군요.” 그의 목소리는 사람들의 소음 속에서도 또렷했다. “여긴… 문턱이 아닙니다. 하지만, 문턱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 순간, 사람들 틈에 또 다른 그림자들이 보였다. 네온 불빛 아래 겹겹이 서 있는 존재들, 떠나지 못한 목소리들이었다. 나는 숨을 고르며 속삭였다. “도시 전체가 문턱이군요.” 그림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문턱은 장소가 아니라, 떠나지 못한 이들이 머무는 경계. 빛이 있으면 반드시 그림자가 생기듯, 문턱도 그렇게 존재합니다.” 그는 네온 불빛 속으로 천천히 사라졌다. 그러자 도시는 다시 평범한 밤거리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여전히 웃고 떠들었지만, 나는 그 웃음 뒤에 그림자가 겹쳐져 있는 걸 보았다. 나는 노트를 꺼내 적었다. “네온의 그림자 속에서, 문턱은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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