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균열

by 황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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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역을 떠나 돌아온 밤, 나는 카페 시계를 바라보다가 숨이 멎는 듯한 순간을 맞았다. 시계 바늘이 멈춰 있던 11시 50분에서 천천히 흔들리더니, 갑자기 반대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틱, 톡—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떴을 때, 카페 안의 풍경이 달라져 있었다. 낡았던 벽지는 새것처럼 빛났고, 창가에는 처음 보는 화분이 놓여 있었다. 문턱 위 종도, 마치 막 달린 듯 반짝거리고 있었다. “여기는… 과거?” 나는 중얼거렸다. 그 순간, 카운터 너머에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낯익으면서도 낯선 얼굴. 사진 속 세 사람 중 가운데 여자의 얼굴이었다. 그녀는 잔잔히 웃으며 말했다. “이곳은 시간의 균열입니다. 당신은 지금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경계에 서 있지요.” 나는 손끝이 떨렸다. “당신이… 첫 번째 바리스타입니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저 기록의 일부일 뿐입니다. 문턱은 한 사람의 것이 아니에요. 시간이 갈라질 때마다, 새로운 바리스타가 불려올 뿐이죠.” 그녀가 잔을 들어 올리자, 내 노트가 스스로 펼쳐졌다. 빈 페이지마다 내가 기록한 문장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었다. “이건… 왜 지워지는 겁니까?” 그녀는 담담히 대답했다. “시간의 균열이 열리면, 모든 기록은 다시 쓰여야 합니다. 남는 건 단 하나, 당신이 마지막에 내리는 한 잔뿐.” 순간, 종소리가 울렸다. 문은 닫혀 있었지만, 균열 사이로 수많은 그림자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나는 깨달았다. 이제 선택은 나에게 달려 있었다. 시간이 지워지는가, 아니면 새로 기록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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