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의 행간

by 황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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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불빛은 노랗게 번졌고, 오늘따라 창밖의 그림자는 더 길게 드리워졌다. 문턱 위 종이 울릴 때, 나는 이미 그 자리가 누구의 차지가 될지 짐작하고 있었다. 들어온 이는 단정한 양복 차림의 남자였다. 손에는 두꺼운 노트 한 권이 들려 있었다. 겉표지는 낡아 있었지만, 모서리는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노트를 펼쳤다. 페이지마다 작은 글씨가 빼곡히 적혀 있었는데, 그 사이사이에 연필로 긋고 지운 흔적이 눈에 띄었다. 나는 커피를 내리며 조심스레 물었다. “무엇을 기록하신 건가요?” 그는 눈길을 내게 주지 않은 채 대답했다. “사람들의 마지막 말을요.” 그 한마디에 심장이 순간 멎는 듯했다. 그것은 내가 매일 해오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카운터 아래 노트를 꺼내 내 기록을 떠올렸다. 날짜, 잔의 모양, 손님이 남긴 마지막 문장. 그 역시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곳을 알고 오셨나요?” 그는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저는 오래전부터, 당신이 기록을 남긴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노트를 내밀었다. 내 노트에 적힌 문장들과 어딘가 닮아 있는 글귀가 그 안에 있었다. 마지막 문장이 특히 눈에 띄었다.


“자정 10분 전, 기록은 이어진다.”


나는 숨을 고르며 물었다. “누구에게서 이 기록을 받으신 겁니까?”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내 손목 위 멈춘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곧 알려줄 겁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고, 마치 오래전부터 준비된 대사 같았다. 커피 향이 퍼지는 동안, 그는 마지막 문장을 덧붙였다.


“모든 기록은 결국 한 곳에서 만난다.”

문턱 위 종이 울렸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노트 한 장이 찢겨 남아 있었다. 빈 종이였지만, 행간에는 분명 무언가가 적혀 있는 듯한 울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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