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바람에 벚꽃이 화들짝 놀라 이파리를 떨어뜨리던 계절. 그래도 햇살은 따듯해 사람들의 옷차림은 가벼웠던 5월. 큰애랑 시장에 가면서 애견가게 앞을 지났다. 찬이의 또래로 보이는 아이 하나가 엄마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강아지를 사달라며 조르고 있었다. 엄마는 한사코 똥은 누가 치우며, 산책은 누가 시킬 거냐는 논리로 아이를 설득하고 있었다. 아이도 물러남이 없었다. 똥은 자기가 치우고 산책은 동생이랑 돌아가면서 시킨다고 했다. 두 사람의 작은 전쟁을 보고 있자니 내 어린 시절도 떠올랐다. 그리고 품에 안겨 혀를 내밀고 있는 구름이를 쓰다듬어 줬다.
12년 전 구름이를 데려왔다. 가정 분양견을 찾을 생각으로 인터넷 카페에 6개월을 잠복했다. 모견 사진과 부견 사진을 모두 보고 싶어 분양하는 분에게 까다롭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개는 주인을 닮는다. 분양하는 분은 싫은 기색 없이 이것저것 알려주시며 오히려 이렇게 물어보는 분들이 더 좋다며 나를 반겼다. 그렇게 구름이는 우리 식구가 되었다.
개를 키우는 건 힘든 일이다. 산책을 주기적으로 시켜야 하며 먹는 것도 신경 써서 먹여야 한다. 생물체는 무언가를 먹으면 소화 작용을 거쳐 배설물을 만들어 낸다. 화장실에는 항상 오줌이 바닥에 깔려 있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냄새도 감당해야 한다. 제때 치워주지 않으면 지린내가 온 집안에 진동을 한다. 무심코 신었던 슬리퍼 안에 물컹 무언가가 밟히기라도 하는 날은 그야말로 낭패다. 훈련이 아무리 잘되었어도 가끔 이불 위나 매트리스에 실수를 하기도 한다.
제주도 여행이나 해외여행 한번 마음 편하게 못 간다. 비싼 비행기 표를 지불하고 한 5,6일 머무르다 오고 싶지만 집에 혼자 있을(혹은 애견호텔에서 밥도 안 먹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을) 구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해 일정을 오히려 앞당긴다.
집에 두는 게 마음 아파 한번은 중국엘 데리고 갔다. 기내 반입을 위해 케이지를 사야 했고, 구름이 비행기 표도 따로 발권해야 했다. 광견병 예방을 위해 예방접종을 맞혀야 했고, 항체가 잘 형성되었는지 항체가 검사도 받아야 했다. 이 모든 것을 위해 목에 인식표를 해야 했으며 이 또한 구청에 등록을 해야 했다. 수의사들마저 이 과정을 제대로 아는 이가 없어 관련 법령을 찾아가며 하나하나 설명을 하면서 모든 과정을 진행했다. 이 과정을 모두 해내는 데에는 약 100만 원의 돈이 필요했고 3주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서도 개를 키우는 건 좋은 일이다. 사람과 교감을 하는 몇 안 되는 동물이며,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친구가 되는 동물이다. 털북숭이 몸을 쓰다듬고 있으면 세상 모든 걱정을 사라지게 하는 마법도 지녔다. 아이도 학교에 가고 아내도 회사에 간 날 텅 빈 집에 돌아오는 나를 유일하게 반겨주는 건 구름이 뿐이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 중문을 밀치면 미리 앞에 나와서 정말 미친 듯이 안겨든다. 내일 세상이 끝날 거 같은데 왜 이제 왔냐는 기색으로 품으로 파고든다. 보잘것없는 나를 구름이는 12년째 그렇게 사랑해 주고 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지금 구름이가 자기 얘기를 하고 있는 걸 아는지 내 무릎 사이에서 고개를 들어 빤히 올려다본다. 까만 눈동자가 빛을 받아 잠깐 동안 반짝 빛났다. 이 녀석 배가 맞닿아 있는 허벅지가 따듯해지며 가슴까지 뜨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