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루

by 케빈

간밤에 꿈자리가 사나웠다. 습관처럼 충전 중인 핸드폰을 들었고 간밤에 회사에 별일은 없었나 확인했다. 네모난 어플들 사이로 빨간색 원 안에 숫자가 가득했다. 전국에서 밤새 출동이 많았던 날은 항상 그 숫자가 10을 넘었다. 날이 따듯하게 풀려 활동이 많아지는 계절이라 고립자, 익수자가 많아지는 시기였다. 대수롭지 않게 어플들 중 하나를 클릭하려다 부재중 통화가 눈에 띄었다.


이상했다. 회사 단체톡 방이 바쁜 건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었으나 전화가 걸려왔다는 건 큰일이 발생했음을 의미했다. 무슨 일이든 간에 집에서 쉬고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하는 경우는 없다. 게다가 어젯밤 1시까지 뒤척이다 잠들었으므로 그 전화는 새벽 1시 이후에 온 것일 것이다. 심상치가 않았다. 조심스럽게 회사 단체톡 방을 열어본 나는 한 줄도 안 되는 문장을 보고는 얼어버리고 말았다.


타청 상황 발생. S-92 해상 추락.


저 짧은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재빨리 스크롤을 위로 당겨 누가 그 항공기에 탑승했는지를 확인했다. 승무원 4명 모두 낯익은 이름이었다. 조종사 2명에 전탐사 1명, 그리고 정비사 1명. 나는 그 이름들을 확인하고는 또 한 번 얕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들과 함께 나누었던 대화와 시간들이 적막한 새벽을 깨고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그중 한 명과는 2주 전에 통화를 했다. 사소한 질문거리를 언제든 전화로 물어오던 분이었고 내가 주는 답변들이 언제나 명확하다며 항상 미안하게 내 이름을 부르던 분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1년 전 꽤 많이 통화를 했던 정비사다. 유류저장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2시간 이상 통화를 한 적도 있는 친구였다. 그리고 또 한 명은 곧 전화로 무언가를 물어봐야 하는 젊은 후배였다. 이 친구는 올해 벚꽃이 지면 오래 사귀던 여자 친구와 결혼 약속을 잡고 있었다.


뒤늦게 부재중 통화를 확인했다. 목포에 있는 동기생이자 친한 동생이었다.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그 친구의 이름을 눌렀다. “행님” 하며 울먹이는 놈을 겨우겨우 달래고 전화를 끊었다. 우선은 살아 있음에 기뻐하자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깨우고 밥을 먹였다. 아내는 새벽 출근이라 옆에 없었고 회사 일을 가족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등교 준비를 시키고 두 녀석을 학교에 데려다준 나는 홀린 듯이 대형마트로 갔다. 무얼 살게 있는 건 아니었고 그저 홀린 듯했다.


마트에 도착한 나는 평소 사고 싶었지만 가격 때문에 망설였던 것들을 주워 담았다. 계산기 두드려 가며 할부기간을 최장으로 해야 살 수 있는 것들을 두 개, 세 개 카트에 실었다. 결제금액을 보고 꽤 놀라기는 했지만 그날은 담담했다. 그저 담담했다. 그리고 살아 있음에 감사했다.


그리고는 평소 먹고 싶었던 음식점으로 갔다. 그리고 그 집에서 가장 비싼 메뉴를 시켰다. 웨이팅 30분이 기본인 맛집이었고 음식도 분명 맛있었지만 가슴이 계속해서 메어왔다. 가슴을 퍽퍽 치며 쓰디쓴 이름들을 삼켰다. 눈물 한 방울이 그릇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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