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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빈 Jun 26. 2022

나는 바다로 출근합니다.

핑크색 튜브


 가족은 물놀이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다. 아빠는 오랜만에 만나는 형네 식구보다 둘째 연이가 설레어하는 모습에 더 기분이 좋아졌다. 엄마가 먹거리를 준비하는 동안 아빠는 딸아이의 물놀이를 준비했다. 디즈니의 캐릭터가 그려진 아동용 래시가드와 뜨거운 햇빛을 피하기 위한 귀를 덮는 모자를 챙겼다. 아쿠아 슈즈를 신겨보면서 내년에는 한 사이즈 더 큰 걸 사야겠구나 하며 짐을 꾸렸다. 튜브와 자외선 차단제도 잊지 않았다.


     

 

 수원에서 해수욕장까지는 차로 2시간 거리였다. 평소 멀미가 잦아 30분 이상 차를 타고 가는 여행은 아이들에게 무리였다. 하지만 이날은 여행이라는 기쁨에 온 가족이 들떴다. 아빠는 운전을 더욱 조심스럽게 했고 엄마는 아이들과 함께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를 따라 불렀다. 토요일이었고 날씨는 더없이 맑았다.


     

 

 사촌 간에 나누는 인사도 잠시, 아이들은 물을 보자마자 옷을 갈아입혀 달라고 재촉했다. 엄마들이 아이들의 옷을 갈아입히는 동안 아빠는 펜션에 준비된 공기압축기로 튜브에 바람을 넣었다. 마침 물이 빠지는 시간이라 해수욕장의 해변은 길게 바다 쪽으로 뻗어 있었다.


     

 

 살짝살짝 다가오는 파도에 핑크색 튜브는 박자에 맞춰 넘실거렸다. 아빠는 구명조끼를 입은 채로 아이를 더 깊숙한 바다로 데리고 갔다. 아빠의 키를 넘는 곳에 도착했을 때 부녀는 부력에 몸을 맡기며 둥실둥실 떠다녔다. 아이는 파도가 칠 때마다 깔깔거렸고, 아빠는 그런 아이를 보며 또 기뻐했다. 가까운 거리에서 아이의 사촌 언니, 오빠가 파도에 몸을 맡기며 놀고 있었다.



 

 

 해수욕장 바깥쪽으로 레저보트가 지나간 건 아이의 입술이 파랗게 질릴 때쯤이었다. 7월 초입의 뜨거운 날씨였지만 서해바다의 수온은 21도, 아이가 오래 놀기엔 아직 차가운 바다였다. 조금만 더 놀고 나가야지 하며 아이를 달래고 있을 때 레저보트가 일으킨 작은 파도가 아이를 덮쳤다.


 

 


 아이의 튜브는 폭이 좁아 작은 파도에도 쉽게 뒤집혔다. 당황한 아빠는 물속으로 손을 넣어 아이를 붙잡으려 했지만 아이의 흔적이 닿지 않았다. 아이를 삼킨 바다는 옅은 황색이었고 시야는 1m를 넘지 못했다. 손을 헤집어 아이가 손에 잡히기만을 바래야 했다. 주변에서 헤엄치던 사람들은 이들 부녀의 사정을 모르는 채 자신들의 놀이를 만끽하고 있었다.


     

 

 토요일 오후의 바다를 깨운 건 아빠의 처절한 비명 때문이었다. 아빠는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넋이 나간채로 물속을 헤집었다.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던 사람이 그 모습을 보고는 신고를 했다.

 

 “핑크색 튜브가 뒤집힌 채로 있고요. 아빠는 구명조끼를 입고 있어요. 아이를 찾는 거 같아요.”


     

 

 아이를 제일 먼저 발견한 건 해경파출소의 연안구조정이었다. 튜브가 뒤집힌 지점에서 바다 쪽으로 한참 떨어진 곳에서 아이는 발견되었다. 신고가 된 시간으로부터 1시간 30분이 지나있었다. 가족들은 해변에서 구조 장면을 보고 있었고 구조요원들은 자꾸만 바다로 들어가려는 엄마와 아빠를 말려야 했다.



 

 6살 연이의 이름은 익수자로 바뀌어 상황관리용 모니터에 올라왔다. 익수자는 발견 당시부터 호흡과 맥박이 없었다. 의료원으로 옮겨지는 시간 동안 구조대원들이 계속해서 심폐소생술을 반복했지만 의료원에서 결국 사망 판정이 내려졌다. 신고 시간부터 익수자가 발견되기까지 상황처리를 하던 요원들은 계속해서 표정이 어두웠다. 익수자가 바다에 빠져있던 1시간 30분은 너무나 긴 시간이었으며, 너무나 차가운 바다였다.


     

 

 황토색 바다 위에 핑크색 튜브가 주인을 잃은 채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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