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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빈 Jun 23. 2022

걱정거리

 또 새벽 4시다. 눈이 자연스레 떠지는 시간이다. 푹 자고 싶어서 늦게 잠들어 보기도 하고, 무리다 싶을 정도로 술을 마셔도 봤지만 항상 4시쯤에 눈이 떠진다. 희끄무레 밝아오는 창문 너머의 빛을 도움 삼아 여기저기 자고 있는 아이들을 살핀다. 아무리 덮어줘도 곧 차 버리겠지만 두 놈의 작은 몸을 이불을 당겨 덮는다. 아이들의 발끝에 잠들어 있는 아내의 머리를 살짝 들어 베개를 놓아준다. 


 알람시계 2개를 켜놓고 자야 할 정도로 아침잠이 많았고 과음이라도 한 날에는 씻지도 못한 채 출근을 한 날도 있었다. ‘아침형 인간’은 책 속에만 있는 것이고 새벽에 눈을 뜨는 것이 세상 무엇보다 힘든 나였다. 그런 나를 변하게 한 건 결혼이다. 

 

 결혼을 하면서 책임감이 생겼다. 한 집안의 가장이 되었고 절대 쓰러지지 않아야 하는 무적이 되어야 했다. 우리 집의 경제적 원천은 나였고 내가 벌지 않으면 생활을 유지하지 못했다. 9년간의 군 생활을 끝으로 세상에 돌아온 나는 어떻게든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원서를 내밀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28군데. 원서를 내고 떨어졌던 회사의 개수다. 사회는 서른 중반의 제대군인을 받아주지 않았고 경쟁자들은 나보다 높은 스펙으로 나를 밀어 넘어뜨렸다. 막 대학을 졸업한 취업 새내기들과 맞붙기에는 내 나이가 너무 많았다. 가진 거라고는 비행기를 조종할 수 있는 면장뿐이었고 이 면장만으로는 민간항공회사에 원서를 낼 수 없었다. 마지막 지원한 회사에서 낙방 문자가 왔을 때 아내는 괜찮다며 본인이 일을 찾는다 했다. 그리고 곧 생산직 공장에 일을 나가기 시작했다. 


 지금의 직장에 합격한 건 아내의 종아리가 12시간의 노동으로 퉁퉁 붓기 시작할 때였다. 그때부터 아침잠이 없어졌다. 아내에게 미안했고, 아내의 다리를 주무르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합격의 기쁨보다는 못난 내게 와준 아내에게 고마워서 펑펑 울었다. 


 아내가 일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지금도 나는 아침잠이 없다. 새벽이면 어려웠던 당시의 습관대로 눈이 번쩍번쩍 떠진다. 그리고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한다. 주택담보대출 이자 나가는 날이 언제지? 자동차 할부는 얼마가 남았지? 전세 시장이 위축된다는데 집주인이 제때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을까? 전세보증보험 청구하려면 조건이 어떻게 되지? 큰아들 열이 내리지 않는데 해열제를 언제까지 먹어야 하지? 큰 병은 아닐까? 둘째에게 옮거나 하진 않겠지? 두 놈다 밥 좀 잘 먹었으면 좋겠는데 뭘 먹여야 좋을까? 


 아니나 다를까 작은놈이 먼저 이불을 차 버렸다. 나는 그 이불을 다시 당겨다 작은 몸을 덮었다. 그리고 이마를 만지고 작은 발을 만지며 다시 아이의 냄새를 맡으러 몸을 숙였다. 아이에게서 좋은 냄새가 났다. 마음을 짓누르는 걱정거리가 어느새 눈 녹듯 사라졌다. 모든 걱정거리는 계획으로 바뀌었고 나는 출근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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