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통령의 업무계획 보고 영상이 핫합니다. 주변에서 인천공항공사장의 무능과 무지에 많은 화를 냅니다. 반면 일 잘하고 똑똑한 공무원에 대해 칭찬도 아끼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반응들은 공무원들이 민원처리만 하는 줄 알았는데 저렇게 큰(?) 업무도 한다는 것에 놀랍니다.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주간업무 회의를 합니다. 보통은 월요일 아침이나 금요일 저녁 각 과의 장들이 모여 장관 또는 청장에게 차주 또는 금주의 업무계획 중 무얼 하겠노라 보고하는 자리입니다. 중요한 사안들을 보고해야 하고 또 그 자리가 그 과를 PR 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안건을 어떻게 선택해야 하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보통 과의 주서무(한 개의 과에 3~4개의 계가 있는데 그중 가장 1번계에서 일하는 서무를 뜻합니다.)가 안건을 모읍니다. 그럼 3~4개의 계는 자신들이 다음 주에 할 일들 중 중요한 안건 하나를 제출합니다. 이 작업이 수요일 전에는 끝나야 합니다. 그래야 1번 계장에게 검토를 받고 과장에게 보고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과의 주서무로서 이 작업을 매주해야 했습니다. 이게 저에겐 지옥이었습니다.
3~4개의 계에서 모아진 안 건을 한 장으로 취합해 계장에게 검토를 받습니다. 계장은 회의자리로 이동하며 빠간색 플러스 펜을 가지고 옵니다. 계장은 글씨체와 줄간격, 문단 위 간격을 꼼꼼하게 보는 사람이기 때문에 계장의 문서 보는 성격에 따라 제가 미리 수정을 해 둔 상태입니다. 3~4개의 안건을 꼼꼼히 읽어본 계장은 내용을 하나하나 묻기 시작합니다. 보통 다른 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주서무가 잘 모르기 때문에 이것 또한 사전에 내용을 파악하고 회의자리에 참석합니다. 계장의 묻는 말에 대답이 쉬운 경우도 있지만 전문적인 것은 따로 해당 계원을 호출하기도 합니다.
이 주간업무 계획 검토가 한 번에 넘어가는 경우는 없습니다. 1년간의 주서무생활을 끝내고 A4용지를 모아보니 사과박스 3박스가 나오더군요. 그것도 중간중간 세 절 작업을 거친 후 남은 문서들이었습니다. 저는 계장의 빨간펜이 너무 무서웠습니다.
주간업무계획 검토 회의는 계장과 주서무가 주로 마주 앉은 상태에서 진행되는데 보통은 오전 한나절을 모두 소비합니다. 계장의 지시에 따라 고치고 반복하고 하는 일을 10여 회 정도 거칩니다. 이후 식사 시간이 되면 계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 친절한 사람으로 바뀝니다. 밥을 먹고 직장 내 교회를 가야 하는데 저를 그곳에 데려가기 위함입니다.
저는 계장과 최대한 친밀한 사이를 유지하기 위해 그가 시키는 모든 것을 해야 했습니다. 종교가 없는 제가 그 바람에 1년 간 교회를 다녔습니다.
월요일 아침은 직장인 누구에게나 싫지만 저에게 있어선 더 싫은 날이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계장에게 혼나는 사이지만 그 혼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계장과 친밀한 사이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계장은 주말이면 자신의 가족들이 있는 세종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월요일에 버스를 타고 출근합니다. 그럼 7시 반쯤 제게 전화가 옵니다. 출근하는 길에 자기를 픽업해 달라는 내용입니다.
저는 그전 시간에 미리 출근을 해야 해서 그 시간이 '출근하는 길'이 아님은 계장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회사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그곳으로 계장을 태우러 갑니다. 물론 제차를 이용해야 합니다.
그렇게 저는 그 계장에게 1년간 괴롭힘을 당했고, 그 계장은 그 후 한 계급 승진하는 영예까지 껴안았습니다.